독신의 소소함에 대하여
대학 2학년 봄 여성학 수업을 들었다. 그때 혼전순결이 4월 중간고사 문제로 나왔다. 지켜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두 가지를 놓고 의견을 쓰라는 문제였다. 강사는 사전에 고지 했다.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문제를 통해 각자의 성가치관을 다시금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환경보호에 대해 나름 의식이 있다고 자부하는 편이었다. 주변 지인들이 차 살 때 소형차 사라고 주제넘게 조언을 많이 했다. 중형차 사는 사람들을 보고 속으로 못마땅하게 여겼다. 유럽 사람들처럼 작은 차를 타고 다니는 게 환경도 보호하고 실속을 차리는 일이라 생각했다. 면허를 따기 전, 뚜벅이로 다닐 때였다.
혼전순결. 그게 남자든 여자든 간에 당연히 지켜야 한다고 썼다. 스무 살에는 그랬다. 결혼이란 얼마나 신성한 것이더냐. '그런 언약을 위해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 있다' 적었다. 서로에게 ‘처음’이 되는 것만큼 의미 있는 것이 어디 있냐고 강조했다. 성의 타락이 결국 문명의 타락을 가져왔다며 어줍지 않게 로마 역사까지 끌어들였던 듯싶다. 성에 대해 보수적인 종교의 영양도 컸을 것이다.
면허를 따고 생애 첫 차로 300만 원짜리 중고차를 사면서 1500cc 소형차를 골랐다. 주변에서는 큰 차가 안전하니 돈 더 보태 큰 차를 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 가진 돈에 맞춰 그 차를 살 수밖에 없었지만 짐짓 허세를 부렸다. 경차를 사려고 했는데 중고차가 더 싸더라고.
혼전순결. 지금 다시 답안지를 적어 보라 하면 그때와는 다른 답을 쓸 것이다. 결혼이란 성경험의 유무로 재단할 수 없을 만큼 더 넓고 깊은 의미를 지닌 관계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실은 그 시절에는 남녀 간의 운우지정이 무엇인지 몰랐고 지금은 알기에(?) 다른 답을 쓸 수밖에 없기도 하다.
환경보호. 경차를 이야기했지만 어느새 내가 모는 차는 중고 2000cc SUV. 게다가 경유차다. 이십 대의 내가 생각했던 차와는 완전히 다른 차종. 막상 타보니 큰 차가 가지는 장점들이 있다. 큰 차를 타는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때는 이랬지만 지금은 저러해진 것들. 더 많을 것이다. 불과 20여 년 만에 생각과 가치관이 달라진 것들이 제법 많다. 그만큼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이고 삶의 경험을 통해 섣부른 치기가 가라앉은 덕분이다. 어른들은 이런 걸 두고 철든다고 했던가. 한편으로는 세속화되고 속물화되면서 자기합리화에만 능해지는 듯싶어 스스로에게 씁쓸하다.
퇴근을 하는 데 피었던 봄꽃들이 속절없이 흩날리기에 잠시 멈칫거리다 떠오른 상념이 여기까지 이르렀다. 청춘이었던 그 시절과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은 또 무엇이 있을까. 봄바람 따라 까닭 없이 설레고 울렁거리고 몸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던 그 마음은 이렇게 여전히 여전하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