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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신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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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영 Jan 05. 2024

[독신공감] 이런 하루가 쌓이는 것 만큼


송이와 단 둘이 있으면 나는 나이를 잊는다. 


내 물리적, 사회적 나이를 잊고 유년시절 호기심 어린 눈으로 동물들을 보았던 그 시절로 퇴행한다. 


그 퇴행은 남이 보지 못하기에 은밀하지만 유치할 수 있고 그 유치함 덕에 나는, 어른이라는 시간이 축적되어 쌓인 캐캐묵은 허울과 가면을 벗어던질 수 있다. 


소년이전의 더 무구한 아이의 언어와 몸짓으로 송이와 마주 앉아 논다. 


혀 짧은 소리로 송아. 송아. 야아아. 하며. 


덕분에 애써 이성으로 제어된 언어를 통해 긴장하는 시간이 그 순간만큼은 소멸하거나 정지한다.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오는 아이와 고양이간의 맥락없는 의성어와 단순한 촉감의 교류. 


여기에 눈을 마주친 존재들끼리만 느낄 수 있는 눈동자 너머의 그 심장의 온기와 부드러운 박동. 


송이와 함께 살면서 나는 24시간 중 단 몇 분이라도 기꺼이 퇴행하고 그것을 즐긴다.


때로는 같이 뒹굴거나 손장난을 치면서 송이을 어르고 놀리고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고 날리는 털에 야아 하며 콧소리로 악의 없는 짜증도 낸다. 


반려동물은 그래서 반려가 아니라 실은 내 삶의 순수했던 순간으로 잠시 잠시 데려다 주는 시간의 마법사일지도 모른다.  


그런 마법사와 사는 건 영화나 소설 같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를 통한 감정들보다 신기하다. 


하지만  송이는 나의 어린 시절을 모를테고 알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저 지금 이 순간 곁에서 부비적 거리고 눈을 맞춰주고 끼니를 챙겨주는 나를 그저 친밀한 무엇 외에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주고 그 이외의 것을 바라지 않는 송이와 나는 오늘 하루를 무탈히 같은 공간에서 마무리한다. 


이런 하루가 쌓이는 것 만큼 삶에서 중요한 게 또 얼마나 있을까?

페르시안 친칠라. 송이 ⓒ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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