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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영 Mar 20. 2024

그럼에도 내가 남들보다 가지지 못했다고 생각치 않으려면

[독신공감]


집에서 동부간선을 타고 성수대교 합수부까지 나간 다음 거기서 다시 강변북로를 타고 영동대교 방향으로 가거나, 아니면 반대 한강대교 방향으로 차를 몰고 가면, 즉 한강변의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를 타고 서울의 중심부를 횡단하면서 강남쪽이나 강북 쪽, 혹은 여의도 쪽이나 잠실 쪽 스카이라인을 보면, 새삼 서울의 스펙터클에 감탄사가 나온다. 


오늘 오전에 장한평에 있는 동물병원에 송이 진료와 미용을 맡기고 강변북로를 타고 여의도까지 와서 마포를 거쳐 공덕로터리를 지나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가서 후배 부친상 조문을 했다. 돌아올 때는 다시 내부순환을 타고 북부간선을 이용해 동부간선을 다시 타고 장한평 동물병원에 들러 송이를 찾아 북한한과 도봉산이 그야말로 수묵화처럼 펼쳐진 강북의 산등성이를 보며 집으로 돌아왔고. 


운전을 하면서 도시의 스펙터클이 내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모처럼 다시 궁리를 했다. 사람들이 수백만 명 이상 모여 있는 서울.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인간의 인지능력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어 일정 범위를 넘어서면 그 숫자와 규모를 구체적으로 인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뇌는 백만이나 천만이나 그 다름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고 했던가. 


얼마 전, 술자리에서 자산 10억 정도면 대한민국의 상위 10% 안에 든다고. 그리고 자산 상위 20% 안에 드는 사람들이 내가 서민이라고 가난하다고 하면 안 된다고 주변 지인들에게 꽤나 격양된 목소리로 떠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10억의 자산이 있거나 혹은 그 이상의 자산이 있다고 하더라도 서울의 간선도로를 운전하면서 보는 서울의 스펙터클과 비교를 하면 내가 가진 무엇들이 왜소하고 초라하게 느껴질 수 있겠구나 싶었다. 즉 당장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규모 앞에서 인간의 인지가 과연 객관적으로 자신의 좌표를 확인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서울의 면적은 605.2 km²로 대한민국 남한 전체 면적의 0.6%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2022년 기준으로 서울에 960만 명 정도가 살고 있는데 1인 가구도 많아서 서울의 경우 412만 가구 정도 된다. 그렇다면 상위 10%라면 41만 가구, 20%라면 82만 가구, 30%라면 140여만 가구, 정도 될 것이다. 2019년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아파트를 소유한 가구는 120만 가구 정도가 된다고 하는데. 


왜 자꾸 나는 어떤 사회적, 경제적 좌표에 골몰할까? 그 이유는 아마도 행복의 기준이 궁금해서인 듯싶다. 주변 기혼자들이 자주 지적하듯 나야 1인 가구로 홀로 살다 보니 세대원이 있는 세대주들의 고민을 잘 모른다. 만약 내가 결혼해서 지금 수준의 연봉을 벌고 애를 키우고 있다면 과연 나도 내가 한국사회에서 그래도 내가 서민, 혹은 가난하진 않다.라고 생각했을지는 자신이 없긴 하다.


그럼에도 나마저 내가 남들보다 가지지 못했다고, 어떤 물질적 기준과 비교해 보면 상대적 서민이라고 말하고 다닐 수는 없다. 나의 주관적 평가와 별개로 한국에서는 내가 최소 상위 20~30% 안의 소득과 물질적 풍요와 안정을 누리며 살고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그 보다 높은 지점도 있다. 하지만 눈앞의 스펙터클, 경제적 풍요가 낳은 구조물들. 도시의 거대한 시스템들 앞에서 무언가 소외되고 내가 덜 가졌다는 느낌 앞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리하여 송이 진찰을 위해 오가는 길에 본 풍경, 그렇게 황망히 돌아가실 줄 몰랐다며 따뜻한 말 한마디 여행 한 번 제대로 같이 가드리지 못했다고 후회하는 상주에게 건넨 위로의 말들. 주일 미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본 밤하늘과 별. 그리고 딸기에 술 한잔 놓여 있는 책상을 보며 다시금 찬찬히 생각을 하고 오늘 하루를 떠올려본다. 


이런 시간을 잃어가며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세상 무엇이고 그것이 행복이거나 의미일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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