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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영 May 06. 2016

홀로 지리산을 걸으시거든

지리산 종주기 '중'

노고단대피소에서 세석대피소까지 대략 20킬로미터. 반야봉을 휘돌아 토끼봉, 형제봉, 칠선봉 등 지리산의 주요 봉우리들을 넘고 가는 길. 시간당 2킬로미터 속도와 휴식 등을 감안해 세석에 도착하려면 늦어도 오전 6시 무렵에는 대피소를 나와야 했다. 커피 탓인지 깊게 잠들지 못했다. 게다가 늦게 일어나면 안 된다는 긴장감 때문에 자다가 몇 번 깼다. 코를 고는 사람들 탓도 있다. 허나 나 역시 코를 골았을 테니 불평할 일은 아니었다.


아침을 든든히 차려먹고 지리산 주능선 종주에 나섰다. 대피소를 출발한 시간은 계획보다 30여분 늦은 오전 6시 30분. 아직 해가 뜨지 않았지만 사위는 환해져 랜턴을 배낭에 집어넣었다. 행여 일출을 보지 못할까 염려에 노고단대피소에서 노고단까지 오르막길을 바삐 치고 올랐다. 노고단 능선부는 일출의 기운이 번져 아궁이처럼 활활 타오르듯 번들거렸다. 멀리 능선 끝 천왕봉에는 그새 해가 올라왔고 순식간에 어둠은 자취를 감췄다. 서둘러 카메라로 일출의 빛줄기를 담았다. 종일 날이 화창할 듯 싶었다. 노고단에 오른 것이 세 번째였지만 그곳에서 천왕봉까지 한 눈에 본 것은 처음이었다.


지리산 서북능선. 호젓함으로 치면 서북능선이 가장 좋다는 데 아직 가보진 못했다ⓒ월영


노고단에서 반야봉, 노고단에서 피아골. 이번에는 노고단에서 천왕봉. 삼 세 번 만에 비로소 제대로 된 종주를 한다는 게 실감 났다. 반야봉 갈림길까지 익숙한 풍경 왼쪽으로 서북능선이 보였다. 지리산 종주를 마치면 다음은 서북능선 종주. 겨울과 봄이 교차될 무렵 도전할 것을 기약하며 직진했다.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이 짧은 러닝 팬츠에 가벼운 배낭만 매고 추월해 갔다.


산은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재력을 평가하지 않는다. 오직 그 사람의 체력만을 볼뿐이다. 체력은 꼼수를 쓸 수 없어 정직하다. 종아리 근육이 내 두 배는 되어 보이는 어르신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먼저 앞질러 갔다. 산악마라톤을 하는 어르신의 뒷모습을 멈춰 서 한참을 봤다. 체력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체력을 기르기가 본래 의미로서 힘들다. 속일 수 없으니 온전히 몸으로 정직하게 채워야 해서다. 저 어르신은 얼마나 몸으로 부딪혀 세월을 채우셨을까. 단단한 허벅지 근육과 거침없는 폐활량. 평소의 꾸준함 덕일 테다. 내가 평소에 꾸준한 것 과연 무엇이 있나?


피아골 갈림길 이정표가 보였다. 몇 년 전 5월에 피아골로 내려갔다. 서울은 봄이 농익어 갔지만 산은 이제 막 봄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녹색의 농도 차이를 그때 제대로 봤다. 진한 연두, 연한 연두, 맑은 연두, 시커먼 녹색. 붉은 녹색. 색이야말로 수치가 필요할 거 아닐까 98% 연둣빛, 99% 연둣빛. 세세하게 다른 녹색에 눈이 멀 듯 무척 쉬엄쉬엄 길을 내려갔었다. 그때 들리던 물소리는 또 어찌나 넋을 뺐던지.


지리산의 주능선 ⓒ월영


반야봉 갈림길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 반야봉은 6월인가 갔을 것이다. 철쭉은 그때까지 나를 위해 봉우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시야는 트이지 않아 답답했지만 철쭉을 보며 마음을 돌렸다. 철쭉에 몸에서 나온 물을 주며 괜히 뿌듯해하기도 했다. 사람이 없기에 가능했다. 자연의 순환에 한몫 보탰다 생각했다. 


삼도봉에 와서 뒤를 보니 반야봉의 뒤태가 보였다. 노고단도 십리쯤 멀어졌다. 반야봉 갈림길에서 화개재까지 구간은 노고산에서 천왕봉까지 주능선 종주길 중에 못 가본 길이었다. 뭔가 마무리하지 못했던 일을 채웠다는 생각에 괜히 뿌듯했다. 시야에는 하늘과 지리산 주능선이 온전히 들어왔다. 사진을 찍고 간식을 챙겨 먹었다. 햇살은 뜨거웠고 바람은 차가웠다. 300여 미터가 깔린 계단을 내려오자 화개재였다. 


화개재는 뱀사골과 갈림길이다. 2년 전쯤 지리산 종주를 하려다 노고단대피소만 여유가 있어 노고단대피소를 예약하고 당일 역종주를 시도한 적이 있다. 천왕봉은 두 어차례 올랐고 장터목에서 세석도 걸어봤기에 나머지 구간을 역종주하겠다는 생각에서다. 동서울에서 심야버스를 타고 백무동에 내려 깜깜한 한신계곡을 거슬러 올라 세석에서 노고단까지 당일 주파. 그러나 세석에 오르자 비바람이 치기 시작했고 계속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화개재 공터ⓒ월영


오후 6시쯤 토끼봉에서 노고단대피소로 전화를 했더니 늦었다며 다시 연하천으로 돌아가란다. 난감했다. 그때 벽소령에서 밥해 먹을 때 뱀사골대피소가 있다는 말을 기억하고 화개재에서 뱀사골로 내려갔다. 대피소는 대피소였는데 무인 대피소였다. 문에는 번호를 눌러야 하는 도어록으로 잠겨 있었다. 황망한 마음에 국립공원관리공단으로 전화를 했지만 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때 안에서 부스럭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 무모한 일이었다. 체력을 고려하지 않고 지리산에서 험한 코스로 꼽히는 한신계곡을 새벽에 거슬러 올라간 뒤 노고단까지 하루 만에 가겠다는 것 자체가 위험을 자초한 일이었다. 게다가 우비는 챙겼지만 갈아입을 옷 등은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


그때 문을 열고 나온 이들은 비박산행을 하는 동호회 분들이었다. 그날 비가 많이 와서 비박산행을 포기하고 무인 대피소인 뱀사골 대피소에서 하룻밤 묵던 중이라고 했다. 직원인 줄 알고 그분들도 놀랐단다. 하지만 전화하는 소리를 들으니 직원이 아니고 오히려 조난을 당할 것으로 보이는 산행객이라 문을 열었단다. 


다음날 뱀사골로 내려오면서 마음을 쓸어내렸다. 얼추 4시간 걸리는 길이었다. 랜턴이 있었지만 비가 내리는 계곡 옆으로 밤에 하산하는 것 역시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었다. 자칫 저체온증으로 생사의 고비를 겪을 수도 있었던 상황. 천만다행으로 그분들을 만났고 따뜻한 식사와 빌려주신 옷으로 한기를 면했다. 사실 생명의 은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부모님 기도 덕에 가능했을 것이다.


지리산 종주 능선에서 본 풍경 ⓒ월영


뱀사골을 지나 연하천대피소까지. 안개와 빗속을 헤치고 지났던 길들은 풍성한 가을빛과 절정을 막 지나버린 단풍을 만끽하며 걸었다. 토끼봉을 내려오며 숨을 돌렸던 길가의 바위가 예전 역종주할 때도 쉬었던 곳이란 생각은 길을 나서면서 들었다. 그때 토끼 한 마리가 뿌연 안개 속에서 사면을 뛰어 올라갔던 풍경도 기억났다.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조금 넘어서였다. 도착하자마자 젖은 내의를 벗고 땀을 닦았다. 평일임에도 대피소에는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로 산행에 나선 사람들이 많았다. 겨우 빈 탁자를 찾아 배낭을 풀었다. 옆 자리에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시는 일행이 한 가득 김치찌개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역시나 아주머니 한 분이 말을 걸어주셨다. 혼자 왔느냐면서 찌개 드릴 테니 먹겠느냐는 것이다. 한 번의 사양도 없이 넙죽 인사를 하고 그릇을 드렸다.


푸짐한 김치찌개. 밥도 주신다 했으나 그건 사양했다. 50대 후반의 남자분께서 어디서 왔느냐 묻기에 서울에서 왔다고 했다. 서울 어디냐고 궁금해하시기에 답을 했더니 자신도 서울 근무할 때 그곳에서 사셨다고 한다. 우리 동네 아파트 단지였다. 소주를 권해드렸더니 흔쾌히 받으시곤 베트남에서 가져왔다는 술을 주셨다. 광주 사람들이니 인심이 좋은 거라고. 맞는 말이다. 산에 다녀보면 전라도 분들이 음식 인심이 후했다. 종주를 한다니 부러워하신다. 젊을 때 많이 다니라고. 총각일 때 다니라고. 굳이 총각이라고 말하지 않았음에도 총각이라고 부르셨다. 이제 마흔을 앞두고 배도 나오고 머리도 빠지는 노총각 아저씨가 도시에서의 보통 내 모습이건만.


지리산 벽소령대피소 벽소령에 뜬 달빛은 아직 보지 못했다@월영


세석까지 가기 위해 길을 서둘렀다. 옆 자리 분들께 인사하고 벽소령대피소로 향했다. 오후 3시 조금 넘어 벽소령에 도착했다. 국립공원의 여러 대피소 중 가장 낭만적인 이름의 대피소. 운무에 휩싸인 모습만 기억하고 있었기에 화창한 벽소령대피소의 모습은 반갑고 신기했다. 간식을 꺼내먹는데 앞 테이블에는 외국에서 온 손님과 함께 온 회사 직원들로 보이는 일행들이 영어로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스웨덴 사람들이었다. ‘제가 이번에 새로 입고 온 신상 등산복이 바로 스웨덴 브랜드입니다’.라고 속으로만 말을 붙였다. 알프스에 갔는데 외국 사람이 국산 아웃도어 브랜드 옷을 입고 있다면 반갑지 않을까? 괜히 그 앞에서 신발끈을 묶으며 몇 분 얼쩡거렸다. 그들은 내게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았다.


벽소령에서 세석까지 가는 길은 예전에 운탄고도를 걸을 때와 비슷한 풍경이었다. 오른편으로 지리산의 줄기가 뻗어 있었고 길은 수직이 아니라 수평으로 내달았다. 하염없이 길을 걷고 싶어 지는 상태가 지속됐다.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이 아깝고 아쉬워 절로 걸음이 느려지는 순간들. 


멀리 보이는 천왕봉ⓒ월영 


덕평봉과 칠선봉을 지날 때쯤 산은 어둠을 맞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멀리 뒤 반야봉이 어둠과 노을을 함께 감싸는 이 보였다. 일몰이 자아내는 색의 순결함을 보았다. 오늘 하루 연소된 하늘빛이 티 없어 그랬을 것이다. 어둠은 우주에서 내려오고 지면에서 피어올라 하늘의 중간에서 맞닿았다. 끝내 어둠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온종일 뿌려진 빛들은 서로 경계를 허물고 연대했다. 그리고 이내 함께 사멸했다. 빛들의 혼은 사방으로 퍼져 밤하늘에 흩뿌려졌다 사금파리처럼 반짝이기 시작했다.


헤드랜턴의 빛은 궤도가 없는 유성처럼 오르고 내려오고 좌우로 횡보를 거듭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루의 해가 뜨고 지는 한나절을 단순하지만 깊게 지냈다. 세석대피소의 불빛이 보였다. 허기는 더했지만 걸음은 더디어졌다. 천천히 꾹꾹 산길을 누르듯 발걸음을 옮겼다. 오던 길의 고됨과 오던 길의 숨참도 가라앉았다. 아무런 상념이 떠오르지 않고 그저 다 왔구나 안도감만 꽉 찼다. 하루는 원래 이처럼 안도해야 저무는 것이었다.


지리산 반야봉과 노고단의 석양ⓒ월영




지리산 종주기 '상'

https://brunch.co.kr/@doksin/21

지리산 종주기 '하'

https://brunch.co.kr/@doksin/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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