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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영 May 06. 2016

지리산,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지리산 종주기 '하'

늦었다. 천왕봉의 일출을 여유롭게 보기 위해서는 오전 3시에는 출발해야 했다. 세석에서 천왕봉까지 약 5.7킬로미터. 전날 노고단에서 일출을 본 시간은 오전 6시 38분. 2분 정도 일출이 늦는다 해도 6시 40분에는 천왕봉에서 해가 떠오를 것이다.


산길에서 허기는 곧 탈진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밥을 차려먹다 보니 예정시간보다 40분 늦었다. 3시간 안에 천왕봉까지 가야 한다. 산에서는 보통 시간당 2킬로미터를 가는 것을 기준으로 놓는다. 빠듯했지만 일출을 보기까지 불가능한 시간은 아닌 듯했다.


새벽 3시 40분. 세석을 출발했다. 영신봉에 오르니 멀리 구례와 하동의 불빛이 보였다. 지리산의 별들은 한 층 더 초롱거렸다. 부지런히 걸었다. 뒤에서 보이던 불빛들이 더 이상 좇아오지 않았다. 앞을 봐도 뒤를 돌아봐도 아무런 불빛이 보이지 않는다. 멀리 천왕봉 즈음에 빛줄기가 이어지는 게 보였다. 잠깐 앉아 보온병에서 커피를 꺼내 마셨다. 


망설였다.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 가다간 천왕봉 일출을 보기가 어려울 듯 싶었다. 이럴 바에 차라리 천천히 완상 하며 갈까? 다시 배낭을 메며 발 간격을 좁혔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 밤공기는 투명했고 별빛을 가리는 구름은 없었다. 반쪽 짜리 달 마저 환해 랜턴을 잠시 꺼놓고 걸어도 될 정도였다.


장터목에서 천왕봉으로 오르기 전 이미 사위가 환해지고 있다ⓒ월영


새벽 5시 20분. 장터목에 도착했다. 벌써부터 어둠이 동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게 감지됐다. 천왕봉에서 제석봉으로 치고 올라가는 가파른 산 길. 이 곳 만 넘어가면 천왕봉까지 평탄하다. 속으로 보챘지만 길 중턱에서 코피가 터졌다. 지혈을 하느라 5분 정도 멈췄다. 아슬했다.


제석봉 전망대에는 사람들이 일출을 찍기 위해 자리 잡고 있었다. 새벽 5시 40분. 한 시간 내에 천왕봉까지 갈 수 있으리라. 심장의 박동수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하지만 랜턴을 꺼도 될 만큼 사위가 환해졌다. 오전 6시 30분. 통천문 계단에 닿았다. 코피만 나지 않았으면 산행 최대의 속도와 폐활량으로 치고 올랐다. 천왕봉이 지척이었다. 약 100미터 앞. 그때 야트막한 함성이 들렸다. 해가 지평선 위에서 솟아오른 것이다. 30여 미터 앞. 이미 하산하는 사람과 마주쳤다. 


천왕봉 정상에 오른 시간은 6시 43분. 해는 오롯이 운해 위로 떠올라 하늘로 솟구치기 전이었다. 온전한 일출은 보지 못한 셈이다. 그러나 일출은 일출이었다. 뒤돌아보니 노고단까지 지리산의 장대한 줄기가 보였다. 저 산 아래부터 올라와 여기까지 내 발로 디뎌 왔구나. 천왕봉에 오른 것은 세 번째지만 일출을 보기 위한 산행은 처음. 장터목도 아닌 세석에서 출발해 이 정도의 일출을 본 것만으로도 복 받은 일이란 생각이 들어 아쉬움이 가셨다.


간발의 차이로 천왕봉 정상에서 일출을 놓쳤다. 한 발 늦은 일출이었지만 그래도 황홀했다ⓒ월영


주변 분들께 사진을 부탁했다. 새로 입고 간 등산복은 꽤나 사진발을 잘 받았다. 등산 장비의 끝은 등산 의류라는 말이 있다. 양복 한 벌 제대로 없으면서도 등산 의류는 아끼지 않았다. 신부님들이 제의를 입고 미사를 드리듯 등산복도 일종의 제의와 같은 옷이란 생각으로 합리화했다. 등산복은 산에 간 경험을 살려 만든 옷이다. 일상에서는 느낄 수 없지만 산에서는 그 기능에 감탄할 때가 있다. 무릎 이하 부분을 분리할 수 있는 바지 덕에 덥지 않게 잤다. 자크를 끝까지 올리면 옷깃은 얼굴 뺨까지 덮었다. 모자에는 창이 달려 햇볕을 가릴 수 있었다. 산에서 유용했다.


대원사로 하산하려던 마음은 바꿨다. 회사에 일이 생겼다는 연락이 와 있었다. 게다가 오른쪽 무릎에 통증이 왔다. 화대종주를 하려면 대원사로 가야 했다. 아마 대원사로 하산한 적이 없었다면 그리로 갔을 수도 있다. 허나 지난해 여름 대원사로 하산한 경험에 비춰봤을 때 무릎도 무리고 서울로 올라올 교통편도 만만치 않았ㅊ다.


천왕봉에서 본 2박3일간 종주한 지리산 주능선을 저 멀리 노고단까지 보인다ⓒ월영


중산리로 하산하는 길.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이 거친 숨을 몰아붙이며 오르고 있었다. 저 나이에 천왕봉을 오르는 게 기특해 보였다. 등산복 대신 가벼운 트레이닝복을 입고 온 녀석들도 많았다. 


청춘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중산리까지 걸어내려 와 보니 그 학생들이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더 새삼스러웠다. 앞으로의 네들 인생엔 더 힘든 일들과 고비가 남아 있겠지만 결국 한 걸음 씩 오르다 보면 지금의 산행처럼 끝이 보일 게다. 또 산에서 본 풍경처럼 또 다른 세상이 보일 테고.


법계사에서 순두류로 가 버스를 타는 대신 칼바위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겨 하산한 시간은 11시쯤이었다. 천왕봉에서 7시 30분쯤부터 하산했으니 얼추 3시간 30여분 걸린 셈이다. 중산리 야영장의 취사장에서 옷을 갈아입고 씻었다. 다행히 햇볕은 따스했고 물은 딱 차갑기 직전의 시원함을 주었다. 중산리 정류장까지 택시를 타고 내려오는데 길 양옆에는 단풍객들이 세워놓은 차들로 틈이 없었다.


중산리로 하산하는 길에 본 풍경ⓒ월영


식당의 TV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회사일 때문에 유심히 지켜봤다. 부산 금정산에 희귀 식물 발견, 지리산 단풍이 메인뉴스였다. 서울과 지방. 관심사가 다를 수밖에.


원지로 나와 어탕국수를 먹고 서울 행 버스에 올랐다. 창밖에 덕유산 능선이 보일 때까지만 눈을 감지 않았다. 겨울 덕유산의 능선을 탔던 기억에 덕유 능선을 다시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나름 먼길을 걸어 종주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지리산 종주도 그러할 것이다. 2박 3일 30여 킬로미터가 넘는 산길. 도시에서는 과연 그렇게 하염없이 마음을 비우고 온전히 걸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지리산은 한결 편한 산이 됐다. 종주를 했기에 종주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 혹은 알 수 없는 부채의식을 벗었다. 다시 종주를 할지 아니할지 아직 모르겠지만 지리산 어디를 가더라도 이제 보다 여유롭게 산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지리산 종주로 몇 해전 스스로에게 약속했던 산행 목표를 일차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 


중산리로 내려와 다시 뒤돌아본 지리산의 모습ⓒ월영


서울로 돌아온 일상은 여전했다. 여러 가면을 골라 쓰며 악다구니를 써야 했고 비굴하게 웃기도 해야 했다. 그런 와중에 한 가지 달라진 게 있었다. 


새벽 4시 산 속에서 하현달 빛을 컵 속에 담아 마셨던 커피라던가 하루가 눈을 감을 때의 처연하고 순결한 빛들을 종종 떠올릴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마음속에 담가놓았던 그 커다란 산의 고요를 심란하고 복잡할 때 차분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세속의 번잡함에 휘둘릴 때 잠시 숨을 돌리면 떠올릴 수 있는 무념무상한 침묵의 풍경이 새겨진 덕이다. 삶은 그렇게 한층 더 깊어졌다. 


지리산에 다녀온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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