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공감
1.
늦게 들어가도 집에서 전화가 오지 않는다. 그러니 언제 퇴근할지 내 자유다. 밤 10시 사무실에 홀로 남아 머리도 속도 텅 빈 상황에서 자판을 두드려도 아무도 걱정해주지 않는다.
서럽지 않냐고 물으면 "글쎄요"하련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유부남들 여럿 봤다. 애들 시험기간이라 저녁 먹고 늦게 들어오란 전화가 왔다며 애꿎은 총각들을 붙잡고 하소연. 그러면서 하는 말.
"네가 제일 부럽다."
내가 유부남들 보고 부럽다고 한 적보다 그들이 나를 부럽다고 한 적이 적어도 열 배는 많다. 그러면서도 또 끝내 한마디.
"결혼하면 다 거기서 거기다. 그냥 눈 낮춰서 결혼해라. 그러다 영영 장가 못 간다."
독신도 자존심 있다. 결혼을 못하고 있는 게 아니라 안 하고 있는 거라고요.
2.
눈이 높은 거 아니냐.
식상하지만 늘 반복되는 질문. 눈이 높다는 건 대개 외모가 기준이다. 그저 최소한의 기준이 있을 뿐이다. 그 기준이 조금 어처구니없긴 하다. 최소한 나보단 비슷해야지. (그러나 대부분 나보다 외모가 나은 사람을 원하는 게 속셈)
일하면서 예쁘다는 처자들 많이 봤다. 정서적으로 끌린 이는 극히 드물었다. 눈이 높은 게 아니라 까다롭다고 하면 인정한다. 취향이 확실해서다. 안타까운 건 좋은 것에 대한 취향이 아니라 나쁜 것에 대한 취향이 확고하다는 점이다.
활발한 것과 공격적인 것과 경계가 애매하신 분들. 너무 솔직해 온통 경제적으로만 사고하시는 분들. 고주알미주알 친구들에게 모든 걸 다 오픈하시는 분들. 술을 마시면 내면의 남성이 폭발하시는 분들. 읽는 책이 없거나 TV 드라마의 판타지와 현실의 구분을 명확히 하지 못하시는 분들. 등등등 많고도 많다. 이런 잣대로 이성을 스캐닝한다. 나이를 먹으니 이제 상대의 가족과 사회적 위치도 본다. 낮추고 낮춘다지만 어쩌겠는가. 안 되는 걸.(여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
3.
그러다 보니 도피한다.
처자들은 강동원, 원빈, 장동건, 아이돌 그룹. 남자들은 걸그룹 혹은 야동. 어차피 현실에 없으니 화면 안에서 펼쳐지는 저 멋진 분들에게 마음을 주련다. 게다가 그들은 나를 버리지 않는다. 내가 당신들을 고르고 버리고 또 고를 뿐. 세계는 넓고 연예인과 스타들은 많다.
4.
실은 사람에 대해서 기대치가 높은 것이다.
삶의 구원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보다 낫거나 나를 위로해주거나 내가 의지하거나 내가 뿌듯하거나. 나를 보살펴주거나. 나를 으슥하게 해주거나. 나를 빛나게 해주는 그런 당신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그럼 나도 너를 위해 다 해 줄텐데. 어찌 보면 자기애가 강한 사람들. 손해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다.
내가 로또에 당첨 안 되는 건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며 쉽게 잊겠지만 내게 그런 인연이 없다고 포기하는 건 다르다. '그렇다면 인생에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가' 순간 밀려드는 허무함과 허탈함 자괴감 우울함을 인정하기 싫어 그럴 바에야 혼자 산다.
5
세월은 흘렀고 점점 초연해진다.
'그래 누굴 만난다고 내가 행복해지나? 오히려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아. 봐봐 주변에 행복한 부부가 더 많나 불행한 부부가 더 많나?'
실은 시시 때대로 힘들고 가끔 행복하고 대부분은 덤덤한 부부가 가장 많다. 평균 분포의 진리다. 독신의 또 다른 진실은 그거다. 삶의 덤덤함과 담담함 그것을 내 삶의 중심으로 놓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이 랜덤 하게 엄습한다는 거.
6.
사람에 대한 눈높이가 아니라 실은 삶에 대한 눈높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타인으로 인해 혹은 타인이 나로 인해 삶의 질이 나빠지길 원하지 않아요. 적어도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에요. 선택으로 인해 나빠진다면 되돌릴 수 없을 테니(요즘은 되돌리는 것도 흠이 아니지만) 신중하고 신중할 뿐이에요."
7,
둘이 사는 것도 사전에 준비를 해야 할 것이 많지만 혼자 사는 것도 그렇다.
독신도 무방비로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습득해야 할 스킬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것에 대한 담론들이 많지 않다는 걸 혼자 살다 보니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