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공감
섭씨 99도에서 1도가 더 올라야 물이 끓는다. 그래서 99도를 임계점이라 한다. 물리교과서에 있던 단어가 최근 기성세대들의 훈계에서 자주 등장한다. "1도가 부족해" 하며 계속' 노오력'하라고 부추긴다. 정작 내가 몇 도인지 정확히 알려주는 기성세대들은 드물다. 게다가 요즘은 온도계가 과연 정확하게 온도를 재는지도 의심스럽다.
남녀의 연애에도 임계점이 있다.(비슷한 의미로 비등점도 있다) 그러니까 요즘 말하는 ‘썸’의 단계에서 저 사람에 대한 감정이 연애라는 세포들을 기화시켜 심장에서 열정을 뿜어낼 수 있게 하는 적정 온도. 문제는 물은 정상적인 상황에서 100도에서 끓기 시작하는데 감정의 임계점은 상대적이고 개별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감정의 온도를 객관적으로 잴 수 있는 온도계 역시 없다. 난감하다.
감정이 임계점을 넘어 끓기 시작해야 서로 물불 없어진다. 그 상태에서 오는 희열과 일체감. 열정은 연애의 본질이고 유혹이고 마취이며 열락이다. 하나 우리는 모두 100도에서 물이 끓는다고 배웠는데 감정은 그렇지 않다.
어떤 이는 80도에서 어떤 이는 50도에서 또 어떤 사람은 110도에서 끓어오른다. 설사 서로 임계점이 같아도 그 감정을 담고 있는 용기가 다르다. 어떤 이는 알루미늄 냄비처럼 가열이 쉽고 어떤 이는 뚝배기 인양 한참을 가열해야 한다.
남녀가 만나 '감정'이 약간 생긴 상황. 같은 용기에 같은 물을 넣고 같은 불의 세기로 가열해 함께 100도에서 끓는다면 별 문제없을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의 감정은 물도 아니고 용기도 다르고 각자 올라와 있는 가열기구도 다르다. 이를 인지하지 않고 무턱대고 가열하다 보면 사달이 난다.
사람을 많이 만나 보거나 연애를 많이 해보면 이런 각각 다른 비등점들을 넌지시 체크해보는 계기가 된다. 이런 경험치가 적은 사람들은 물은 100도에 끓는다고 배웠는데 왜 너는 그렇지 않으냐고 타박할 수 있다. 그리고 비등점이 다를 땐 화력을 조절해야 함께 끓어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여기서 종종 남녀 간의 여러 가지 불상사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뻔한 말씀. 연애에도 당신에 대한 뜨거운 감정만 있으면 절로 되는 게 아니다. 슬기로움과 또 과학적인 노력. 저 사람의 비등점은 어떤지 내 비등점은 또 어떠한지. 찬찬히 살피고 서로 감지할 수 있게끔 정보를 많이 주고받아야 한다.
대화는 그 과정에서 꼭 필요한 수단이자 혹은 무기이자 아님 그 자체가 목적이다. 대화란 그저 의례적인 말을 주고받는 것에 머물지 않고 내 생각과 감정을 당신의 생각과 감정을 찬찬히! 언어로 주고받는 상당히 지난한 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말로 하기에 쉬워 보여도 실은 제대로 하기 어려운 게 대화다. 카톡이나 메신저, 문자는 대화의 본질은 아니다. 직접 만나 얼굴을 보며 서로의 육성으로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무의식적으로 편하고 불편하고를 테스트하고 감내하고 체화하는 과정.
감정의 임계점은 바로 그 대화가 ‘통했다’는 순간을 지나서야 비로소 마주칠 수 있고 그 임계점을 넘어야 또 남녀 간 영혼과 육체가 온전히 결합한 대화가 가능할 수 있다. 문제는 여성들은 이를 태생적으로 아는 경우가 많은 반면 남성들은 가르쳐 줘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물론 '대화'가 통한다는 이유만으로 남녀 사이에 '연애'의 다리가 놓이진 않는다는 점 역시도 남자들은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설사 이런 사실을 다 알았다 싶었을 때 이미 청춘은 지나가버렸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