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시키지 않아도 하는 일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산에 가는 일이다. 서른 중반 무렵 건강검진 때 4대 성인병 초기 진단을 받은 이후부터 산행을 본격적으로 나섰다. 누가 나가라고 등 떠밀지 않았지만 주말이면 산에 갔다. 어느새 산행은 그냥 밥 먹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 됐다. 어느덧 회사 사람들이 월요일 오전에 “어제는 어느 산에 갔다 왔냐?”고 습관적으로 물을 정도다.
그렇다고 백두대간 종주를 하고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나거나 혹은 암벽을 탈 만큼 산행에 빠져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산에 가는 일이 일상이 된 것은 집에서 산이 가깝끼 때문이다. 마을버스로 5분 남짓이면 북한산 우이동동 입구에 닿는다. 집에서 도봉산 원통사까지 문을 열고 나서 걸어 두시간이면 간다. 북한산국립공원에 대한 접근성이 좋다 보니 다른 지역에 사는 것보단 산에 가기가 수월하다.
그 다음은 책을 읽는 일이다. 취직 후 업무상 불가피하게 읽는 경우도 많지만 어렸을 적부터 자발적으로 책을 읽었다. 약간의 활자중독 탓이다. 활자중독이 된 데에는 유년시절 부모님의 맞벌이 영향이 컸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가 안 계셨다.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뛰어 노는 것에도 소질이 없던 터라 책을 읽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책 사는 비용에 있어서만큼은 가난한 살림에도 돈을 아끼지 않으셨다. 책을 다 읽었다고 하면 무척 대견스러워 하셨다. 그 칭찬을 듣고 싶어 책을 더 읽고, 부모님은 또 책 살 돈을 주시고. 이런 선순환이 책 읽는 습관을 들였다. 방학마다 전집 한 질을 사주셨다. 허나 나이가 드니 책 읽는 습관은 점차 약해지고 책 사는 습관만 남았다. 이것도 남이 시키지 않는 일이다.
읽다보면 쓰고 싶어진다. 매일 매일 일기를 쓰지는 않았지만 일기를 줄곧 써 왔다. 이제 어느 정도 글쓰기가 몸에 익어 원고지 10장 정도를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읽고 쓴다. 습관이고 취미. 생업이면 생업이 됐다.
또 있다면 일요일에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는 일이다. 신앙심이 깊다기보다 집에서 성당이 가까워 빠지지 않는 편이다. 성당에 다녀오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찝찝하다. 워낙 사는 게 죄이다 보니 성당에 들어가 앉아 있는 게 곤혹스럽고 짐짓 경건한 척 기도하는 폼을 잡고 있는 게 가증스럽기도 하다. 그나마도 아니하면 이 속세의 삶에서 점점 찌들어가는 영혼을 어디 행굴 기회조차 없을 것이란 생각에 성당에 아는 사람 없고 오라는 사람 없지만 간다.
날이 덥고 습해 산에 가지 않았지만 남이 시키지 않은 일을 하며 일요일 오후를 소일하고 있다. 밥벌이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긴 해도 모처럼 몸과 마음에 적당히 긴장감을 불어 넣고 휴식이라면 휴식, 재충전이라면 재충전을 하고 있다.
저녁에 미사만 가면 내가 스스로 하는 일 3가지를 이루는 셈이다. 딱히 아쉬운 게 없고 내가 아닌 남에 대해 신경쓸일 없어 마음이 잔잔하다. 아마도 홀로 살아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를 옛 사람들은 ‘독락’이라 불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