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으로 산다는 것 11
'메리지 블루'

독신 공감

by 월영

몇 주 전. 결국 마흔 살 넘어 장가가는 선배가 청첩장을 돌리기 위해 술자리를 마련했다. 그 선배는 남자에게도 ‘메리지 블루’가 있다고 털어놨다. 통상 신부들이 결혼을 앞두고 우울증 증세를 겪는데 남자도 마찬가지란 것이다.


이십 대 초반이나 중반, 혹은 후반에 장가간 남정네들에게는 남자가 서른 중반을 넘어 사회적, 경제적으로 안정되었을 때 오는 편안함과 자유로움은 끝내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신세계 같은 것일 게다. 그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만끽하다 보면 서른 후반은 금방이다. 그리고 어느덧 나이가 4자로 접어든다. 그때부터는 상황이 다소 역전된다. 결혼을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게 되는 시기기 때문이다.


사실 서른 중반 이후 마흔 초반까지 싱글남의 인생은 이렇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사지 멀쩡하고 4대 보험 확실한 정규직에 적어도 전셋값 정도는 마련해 놓은 월급쟁이 정도라는 것) 이성 관계에서 이런저런 시행착오도 겪어봤기에 감정으로 인해 불필요한 열정을 소모할 일도 없다. 최적화된 안전운행 모드에서 적당히 과속도 하고 급커브도 하며 살짝 자극적으로 사는데 큰 문제가 없는 상황에 놓인다. 게다가 취미생활에도 눈치 보지 않고 돈을 쓸 수 있고. 딱히 책임 저야할 누군가가 없다. 주변의 끊임없는 관심까지 더 해진다.


그런 면에서 서른 중·후반의 싱글 남들은 동갑내기 여성들에 비해 혜택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남자 서른 중·후반에는 누구라도 부담 없이 왜 장가를 안 가냐며 편히 물을 수 있지만 여자 서른 후반의 싱글이면 왜 미혼이냐고, 결혼 아니할 거라고 묻는 거 자체가 무례한 질문이 되고 상대방에게는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보니 그렇다.


술자리에서는 종종 농반진반으로 '밤이 외롭지 않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남자 서른 중·후반이면 이미 회사에서 녹초가 되어 집에 온다. 이십 대 때야 샤워하고 잠깐 쉬면 금세 회복됐지만 이제는 오직 잠이 ‘보약’이다.


이런 상황에서 장가를 가려니 얻는 게 있겠지만 포기할 자유와 기타 등등이 보여 결혼식을 앞둘수록 생각보다 우울해진다는 게 선배의 말이었다.


앞으로 인생에서 이른바 메리지 블루를 언제 겪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름 증세가 확연한 결혼참석후정서장애 같은 것은 요즘 들어 종종 앓고 있다. 가령 결혼식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괜히 과속을 한다던가 혹은 집에서 손자 소맥을 말아 마시거나 라면을 청양고추 대 여섯 개를 넣어 끓여먹는 등 평소 안 하던 행동을 한다. 또 괜히 옛 처자들의 싸이나 인터넷 흔적들을 뒤적이며 청승 모드에 젖어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한다.


다행히 선배의 결혼식은 다녀와도 결혼참석후정서장애와는 무관할 듯 싶다. 좋은 배필을 만났고 말은 "우울해" 어쩌고 해도 이미 체넘(?)과 적응으로 운명에 순종하는 선배의 모습에서 딱히 부러운 감정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자 사는 사람들은 또 알 것이다.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 내가 만약 단상에서 신부를 맞이하면 혹은 신랑과 손 맞잡고 서 있으면 어떤 기분일까? 그리고 누가 내 옆에서 결혼서약을 함께 읽을까? 하고 상상하는 순간들의 미묘한 섭섭함과 자괴감에 문득 집에 돌아가는 길이 허허롭고 발걸음은 너털거린다는 것을.


모처럼 잘 차려입은 옷이지만 그 옷을 걸친 누군가는 괜히 더 초라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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