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 공감
취중이었다. 을지로 입구 어딘가에서 술을 마시다가 홀로 갔다. 줄은 길었다. 30여분 서 있었다. 찬바람에 얼굴이 빨개져 취기를 가려주었다. 그렇게 살짝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는 처음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라틴어 성가는 성스러웠다. 명동성당의 파이프오르간 연주에 맞춰 성가대는 상투스, 글로리아 인 엑첼시스 데오. 찬미의 노래를 계속했다. 괜히 눈물이 날 정도였다. 미사 중에 분심이 들기 마련이었지만 그날은 달랐다. 진심을 다해 미사에 집중했다. 뜨겁게 치미는 마음속 무언가 때문에 내 탓이오 가슴을 칠 때는 힘이 더 들어갔다. 나중에 샤워할 때 보니 가슴에 멍이 들어 있었다.
성당에서 나와 걸었다. 버스와 지하철은 이미 끊겼고 택시 잡기도 더욱 어려웠다.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술은 깼지만 미사 중에 뭔가 홀린 듯한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던 탓이다. 탑골공원과 인사동 입구가 있는 종로 2가 사거리 버거킹 앞에서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에서 잠깐 서 있었다. 그때 누군가 내 팔을 잡았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중년의 남자였다. 눈빛은 살짝 풀려 있었고 술 냄새가 났다. 손아귀의 힘이 아주 우악스럽지는 않았다. 놀라서 쳐다봤다. 남자는 말했다. “술 한 잔 같이 먹어요.” 목소리는 낮았지만 힘이 없었고 애절했다.
손길을 뿌리치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창경궁 담길을 끼고 혜화동으로 가기 위해 낙원상가를 지났다. 그때 또 한 번 낯선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똑같았다.
“술 한 잔 먹을 수 있나요.”
이후에도 수 십 번 수 백 번 밤늦게 그 길을 걸어봤지만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길에서 낯선 사람에게 말을 붙여 행여 운 좋게 술을 마시고 외로움을 해소하려던 그 남자들에 대해 지금도 전혀 궁금하지 않다. 다만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무모하게 했는지 왜 그렇게 외로워했는지 이맘때가 되면 다시 생각이나 씁쓸하게 혼자 웃곤 한다.
그때 내 손을 잡았던 남자들의 말 뒤에는 한 마디가 더 있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