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 공감
설날. 부모님 댁에 가서 또 이런저런 잔소리를 들었다.
부모님께서 결혼에 대한 압박이 강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결혼을 아니 하란 말씀도 없으시다. 또 허허실실 하면서 하고 싶으면 할 테니 걱정 마시라 했다. 결혼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니 두 분 걱정하실 일 아니라고. 이제 세상이 달라져 나이 먹어서도 충분히 결혼할 수 있다고 되레 큰소리쳤다.
결혼은 가족을 만드는 시작점이다. 그리고 가족은 인생의 힘이고 짐이다. 인생에서 가족이 힘이었던 사람도 있고 가족이 짐이었던 사람이 있다. 가족이 힘이었던 경험이 많은 사람과 반대로 가족이 짐이었던 경우가 많은 사람은 가족이란 단어에서 떠올리는 정감 역시 다르다.
가족이 주로 힘이었던 사람은 가족이 짐이었던 사람의 그 험난했던 마음의 항로와 양가감정을 제대로 짐작하지 못한다. 가족이 삶의 짐이었던 사람은 가족이 힘이었다고 하는 이들을 동경하면서도 은근히 냉랭한 시선으로 그들을 본다. 그러나 대개 많은 사람들은 가족이 힘이었고 동시에 짐이다.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가족이 주는 힘과 짐 양쪽에서 모두 벗어나겠다는 심리가 깔려있다.
가족을 통해 힘을 얻는 것을 포기하는 것만큼 가족이 내게 짐이 되는 상황도 막겠다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정서적 보살핌을 받고 나누는 것. 안타깝게도 이런 가족의 테두리를 지키는 데 갈수록 경제적인 능력이 중요해진다. 가족을 만들지 않으려는 심리의 또 다른 이면에는 가족을 부양하는 삶에 대한 거부감 내지 지레 겁먹음도 있을 것이다. 가족이 짐이 되는 대부분의 경우의 발단은 바로 경제적인 문제에서 오곤 한다.
여하간 명절은 가족이 짐인지 힘인지를 가늠하는 가늠좌이기 때문에 실은 만감이 교차한다. 설령 내 가족이 힘이 된다 하더라도 주위를 둘러보면 가족이 짐인 지인이 적지 않다. 그 모습에 은근한 자부심. 비교우위에 있는 스스로를 보며 약간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가족이 짐인 사람은 가족이 내 삶의 힘이 된다는 지인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며 자신의 처지와 대비하며 우울이나 비관에 빠진다. 둘을 오가는 게 그간 내 명절의 마음 풍경이었다.
이제 이러한 만감조차 딱히 느껴지지도 않는 설 연휴. 부모님 댁에 다녀와 빈둥거리며 하루를 소일했다. 어머니께서 챙겨주신 설음식으로 끼니를 채우고 그야말로 할 일없이 집안에서 꾸물거렸다. 어느새 이런 홀로 있음에 익숙해지다 보니 딱히 외롭거나 적적하다는 정서적으로 부정적인 느낌은 없다. 오히려 어디에도 얽매여있지 않았다는 홀가분함에 그저 담담하고 덤덤할 뿐이다.
이런 상황이 뭔가 삶의 이상한 징후는 아닐까 궁리하다가 끼적거린 글이 여기까지 이르렀다. 적어놓고 보니 역시나 별 문제 없다. 결국엔 자기 인생 타고난 팔자대로 살기 마련. 그저 내 팔자가 어떨지 미리 조심스럽게 성찰하며 오늘 하루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는 걸로 마무리한다.
조상에게 고마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내가 어찌 살지 점검해보는 게 어쩌면 명절에 더 필요한 일인지도 모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