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공감
바쁘고 고되고 또 가끔은 승부욕도 불타고 좌절도 하고 스트레스도 받고 그러면서도 드물게 얻어지는 성취감과 통장에 꽂히는 월급. 혹은 명함 한 장에 담긴 뭔가 자신감. 조직에 속해 있다는 든든함, 남들보다 뛰어나고 싶다는, 내 능력을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 등등이 뒤엉키는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사실 연애나 결혼은 삶의 앞 순위에서 점점 밀려나곤 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심리적으로 버거워지는 게 부담스럽다. 연애나 결혼 같은 애착관계를 일대일로 유지하는 일은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 일을 하는 데 쓰는 체력이 아니라 정신적인 에너지. 업무는 몸으로 때우다 보면 결국 하게 되고 마무리를 한다. 연애나 결혼은 다르다. 단순히 몸으로, 시간으로 때울 수 있는 없는 영역이 분명히 있다.
연애나 결혼생활에는 명시적인 업무와 명확한 매뉴얼도 없다. 업무는 대개 그 직급에 맞게 일이 주어지고 매뉴얼도 있다. 연애나 결혼은 그렇지 않다. 또 경험자들마다 하는 말도 다르다. 통일된 매뉴얼이 없는 상황에서 혼란만 는다. 내가 맞았다고 생각했는데 틀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시행착오를 통해 뭔가 경험이 쌓인다고 생각하지만 케이스 바이 케이스. 상대마다 다르기에 어느 장단에 맞춰 줘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이면 ‘그래. 내가 무슨’ 또 다시 회피 모드.
게다가 우리는 애정관계에 놓인 상황에서만큼은 직감이 예민하게 작동한다. 저 사람이 내게 성심 성의껏 마음을 주고 있는지, 아닌지. 그 여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종종 심리적 내상들을 입는다. 차라리 애정관계에 놓여 있지 않다면 허허로울지언정 ‘내상’은 없다.
내상의 특징은 외상과 달리 아프다고 말하기도 멋쩍음. 혼자서 속앓이. 자연스럽게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 ‘아. 역시 내게 연애나 결혼은 어울리지 않나봐 내가 무슨’ 스스로 자학과 반성. 시니컬해지며 일의 세계로 돌아간다. 너는 나를 배신하지 않을거야 하면서.
문제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작동하는 불굴의 ‘본능’이다.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대다수의 남자와 여자는 이성에 대한 애정관계를 갈망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애초에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났다.
이것을 끊어내는 분들은 종교의 길로 가지만 현실에서 사는 우리 같은 장삼이사들은 온갖 시니컬한 상황을 겪음에도! 또 밤늦게 홀로 집에 앉아 있다 보면, 혹은 주변 지인들이 달달한 애정관계를 목격하면 ‘내가 뭔 영화를 누리자고 이렇게 살고 있나’ 회환에 빠진다.
그래서 혹시나 또 나에게 인연은 없을까. 궁리를 하게 되고 은근히 남몰래 찾아보려고 한다. 허나 여기에서 또 작동하는 ‘이성’. 아무나 만나면 안 돼. 그래도 이 정도는 돼야해. 또 목록을 쭈욱 나열한다.
때문에 이런 사람들일수록 알랭 드 보통의 책 제목처럼 ‘낭만적 연애’에 대한 환상이 크다. ‘낭만적 연애’의 핵심은 우연한 만남. 첫 눈에 철렁거리는 직감. 이런 프로세스 안에서 깊어지는 서로 ‘좋아함’이다.
겉으론 아니라 해도 속으론 그렇다. 그렇게 거역할 수 없는 뭔가의 인연으로 애정관계가 만들어져야지만 본인의 ‘일’에서 자신을 놓아버릴 수 있어서다. 즉. 내 운명의 어떤 이를 만났기에 내 일상을 잠식한 ‘일’과 ‘업무’에서 나를 자연스럽게 분리시킬 ‘명분’을 찾고 또 심리적 버거움을 극복해낼 수 있는 내적 동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허나 그것은 말 그대로 ‘낭만’ 혹은 유치한 바람일 수 있다. 해서 사람들은 또 인위적으로 이성을 만나 애정관계 형성을 위한 나름의 언행들을 한다.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자연스러운 일이 또 누구에게는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걸. 남에게 말 못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이 세상 자연스러운 현상 중에 하나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