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 공감
평양냉면을 좋아한다. 서울시내 유명하다는 평양냉면집은 대부분 가봤다. 지금도 퇴근길에 평래옥이나 을지면옥에 들러 홀로 평양냉면을 먹는 일이 드물지 않다. 의정부의 평양면옥도 자주 간다. 합정동 살 때는 마포의 을밀대도 종종 갔다. 부모님 사시는 경기도 북부의 조그만 도시에는 꿩고기를 쓰는 평양냉면집이 있는데 그곳도 일 년에 서너 번은 가는 편이다.
평양냉면의 가장 큰 특징은 밋밋하니 심심한 맛이다. 밍밍하다는 말로 표현되는 그 모호한 담백함. 메밀로 만든 면은 슴슴하고 육수 역시 자극적이지 않다. 뭐랄까 그저 공기처럼 덤덤한 맛이라고나 할까.(허나 공기도 언제 어디서 어떤 날에 접했는지에 따라 각각의 차이가 있고 미각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 맛에 중독된 이유는 아마도 세상의 잡미들에 질리고 나서부터였던 듯 싶다. 자극적인 맛이 한두 번은 좋아도 꾸준히 땡기지는 않는다. 나중에는 역하다. 내 신체의 가장 여리고 예민한 곳으로 만나야 하는 음식들이 온갖 교태를 부리고 본질을 기만하는 것에 어느 순간 질렸다. 그때가 아마 서른 중반부터였고 그전까지는 몰랐던 평양냉면의 그 무색한 맛에 빠지기 시작했다. 역설적으로 무색한 맛을 느끼게 된 건 그만큼 입맛이 극도로 예민해졌기 때문일 수도.
평양냉면처럼 담담하고 심심한 인연과 삶을 같이 버티어 나가고 싶다는 바람이 간혹 든다. 질리지 않고 물리지 않는 그런 담백하고 심도가 깊은 관계. 물론 그런 관계는 지루하고 권태로워 위험하다는 충고도 듣는다. 그러나 평양냉면도 식초와 겨자가 있는 것처럼 관계에도 예외적인 첨가물들이 있겠지.
어느덧 벌써 2월의 시작. 찬바람에 언 손을 녹이며 식당에 들어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평양냉면에 수육 한 접시 그리고 따뜻한 면수로 입맛을 챙길 수 있는 겨울이 얼마 남지 않았다.
평양냉면 한 그릇 먹고 싶은 마음을 글로써나마 풀려다 보니 객쩍은 말들만 끼적였다. 홀로 사는 이의 여유로움은 이렇게 가끔 엉뚱하면서 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