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 공감
부모님 세대에 독신은 유별난 일이었다. 설령 못 배우고 가난해도 다들 짝을 찾아갔다. 혼자 산다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혼자 사는 자식은 부모에게 ‘수치’였다. 그 탓에 불가피하게 결혼을 한 남녀도 적지 않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정해준 짝을 만나 부모의 의사대로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일부는 그 인연에서 일탈을 감행했겠지만 대부분은 운명이겠거니 서로 체념하고 자식을 낳아 그야말로 ‘정’으로 한 평생 살았다. 그런 부부들의 모습이 실은 내 부모님의 결혼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외려 결혼에 대해 크게 압박하지 않으신다. 본인 스스로 결혼이란 제도가 자신의 삶에서 큰 굴레임을 평생 동안 절감하셨다.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로 본인의 재능은 한 번 꽃 피워보지도 못했고 이제 칠순의 할머니로 늙어버리셨다. 반면 아버지는 장가를 가라고 계속 재촉하신다. 아버지도 결혼 생활을 통해 책임감에 허우적거리고 하루하루 고단하게 사셨겠지만. 결과적으론 현명한 배우자를 만난 덕에 상대적으로 노년이 평온하심을 당신께서 알고 계신다.
훗날 늙고 외로울 때 나를 찾아올 피붙이가 없다는 상상은 독신의 삶에서 큰 걱정 중 하나다. 자신이 죽을 때 내 시신 하나 수습할 누군가가 없단 막막함을 떠올려보면 과연 혼자 사는 삶이 그렇게 고집할 무엇인가 싶기도 하다. 괜한 자존심으로 홀로 기고만장하다 결국 ‘자식 하난 있었어야 하는데’ 혹은 ‘서방이라도’,‘마누라라도’ 한탄하며 죽었던 독신들의 후회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진행 중인 일이다.
결코 다정한 부부는 아니었음에도 부모님은 반평생 서로의 반려로 가정을 일구었고 자식들을 무탈하게 키웠다.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두 남녀가 노년에 서로 티격태격하며 한집에서 보이지 않게 의지하며 사신다. 본인들의 자유로운 삶을 포기한 데 따른 보상이다. 지금의 평온을 얻기 위해 부모님이 서로 견디고 버티고 싸워야 했던 그 무수한 시간들이 이제는 다르게 보인다.
독신의 본질은 관계의 자유로움이다.. 나 아닌 타인을 내 삶의 경계선 안으로 않는데 따르는. 나 아닌 모든 것에 무책임하려는. 그 자유로움은 훗날 늙고 초라할 때 조건 없는 인간관계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런 가능성 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하여 오늘도 퇴근 전 카페에 앉아 하릴없이 이런저런 상념들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누구나 다 아는 금언을 괜히 곱씹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