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 공감
'지킬 앤 하이드' 까지는 아니더라도 낮과 밤 심리 상태가 다르긴 하다. 아침과 점심때는 딱히 문제가 될 일이 없는데 해가 지면 좀 난감해진다. 감성지수가 높아지면서 이성적인 판단 능력보다 기분대로 보고 듣고 느끼고 판단하는 경우가 잦다.
감정의 과잉 상태에서 쓴 글들은 치기 어리기 쉽고 자기 연민에 빠져 뭔가 질척거린다. 그 함정을 뻔히 알면서도
홀로 집에 앉아 스탠드 켜놓고 꾸역꾸역 뭔가 자판을 두드리는 이유는 감성지수가 높아지고 이성의 통제에서 벗어난 상황 자체가 주는 ‘말랑말랑 촉촉함’에 취하기 위해서다.
사람들이 겉으로는 이성을 내새워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척 애를 쓰지만 사실 ‘감정’이 삶의 여러 부분에 동기를 부여하거나 혹은 이것저것들을 결정한다. 감정이 누군가를, 어떤 일을 판단하고 그 판단이 감정적이지 않은 것이라 애써 언어를 통해 변호할 뿐이다.
그 숱한 감정 중에서도 ‘말랑말랑 촉촉촉’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한 의태어다. 이것은 타인에 대해 느끼는 게 아니라 내 스스로에 대해 느끼는 정서다.
가령 심장이 뛰는 이유는 심장이 딱딱한 칼슘덩어리 뼈가 아니라 말랑말랑 신축력을 가진 근육으로 이뤄져 있어서다. '말랑말랑'은 내 심장이 뛰고 있다는 그 자각에서 연원한다.
'촉촉촉'은 눈가의 느낌. 눈이 뭔가 시큰해지는 순간. 거기서 비롯한다. 눈가가 촉촉촉 해질 때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아니라면 그 순간의 사람은 악하지 않다. 이해관계에서, 경쟁에서 가진 자가 되고 승자가 되려는 그 피곤함과 냉엄함을 순간이나마 벗어나 있을 때 눈가가 촉촉촉 해질 수 있다. 슬픈 상황이 아니라면 이는 이성의 통제를 벗어나고 감성지수가 높아졌을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현상’이다.
혼자 사는 삶이 어려운 것은 우선 내 DNA에 각인되어 있는 짝짓기의 본능 탓이 크다. 정서와 감정을 교류하고 나누어 그 자체만으로도 삶의 의미 내지 격려 혹은 책임감, 동기부여가 가능한 대상. 그 대상과 공개적으로 평생 관계를 맺으며 그 관계에 충실하겠다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다짐하기 전에 그저 난 종족 번식을 위한 DNA로 만들어진 존재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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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나이를 먹으면 그 본능이 희석되기도 하고 또 다른 것들이 그 본능을 억압하거나 대체한다. 그 과정에서 감정은 남에 대한 호불호로만 굳어지고 정작 자신에 대한 감정들이 남지 않는다. 게다가 밥벌이를 위한 업무는 내 감정이 없는 상황을 전제로 진행되고 이뤄진다. 나는 딱딱해지고 화석처럼 굳어진다.
그나마 다행으로 해가지면 별이 뜨고 ‘말랑말랑 촉촉촉’이 어둠의 마법을 빌어 내 몸에서 스물 거린다. 그 느낌이 실은 내가 살면서 가장 놓치고 싶지 않은 ‘감정’이다. 어차피 인간은 감정적 존재. 그 감정에서 가장 순한 게 ‘말랑말랑 촉촉촉’이 아닐까. 내 심장에서, 눈물에서 비롯된 원초적이고 내재된 영혼의 항생제, 소독제, 충전제. 원상태를 표현하는 단어.
잠들 기 전. 오늘 하루 또 난 얼마나 굳어지고 메말랐을까.
타인의 성마름과 건조함을 탓하기 전에 일단 나부터 점검한다. 이것 역시 밤이 주는 철 없는 난감함 중 하나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난감함을 나 홀로 감당하지 않고 있을 거라는 확신도 있다. 심장과 눈물은 이 세상에서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