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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영 Mar 12. 2017

'독신으로 산다는 것' 외전
2017년 3월 10일

독신 공감

1.

10일 오후. 사무실에서 짜장면 배달시켜 점심을 먹었다. 화제는 탄핵 인용. 박 전 대통령이 언제 청와대에서 나오느냐가 관심이었다. 삼성동 사저와 경기도 모처란 이야기가 나왔다. 부장에게 “혹시 대통령이 뻗치기 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모두들 설마 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니까 내일 탄핵찬성 집회에 참석하시는 분들이 청와대까지 진격하면 나올 거 같은데요. 아니 아예 문 잠그고 안 나올 수도 있죠 뭐.”


농담이 섞였지만 진담이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가장 큰 이유는 결과적으로 자신에 대한 쓴 소리나 비판적인 뉴스나 고언을 귀담아듣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 전 대통령이 과연 성장과정에서 남으로부터 혼나거나 야단을 맞거나 아니면 쓰디쓴 비판에 스스로 반성을 하고 자성을 해본 경험이 있을지에 대해 늘 의심이었다. 


성인이 되어 자신을 비판하는 기사들을 접했겠지만 어차피 ‘반대편의 의견’이라며 스스로 무시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주변인들도 그렇게 분위기를 몰아갔을 것이다. 


“저쪽 사람들은 무조건 반대입니다. 상관하지 마세요.”라고.


당연히 정보의 취사선택에 왜곡이 일어났고 이는 인식으로 굳어졌을 것이다. 이에 대해 확신을 한 게 지난번 정규재 TV와의 인터뷰였다. 촛불시민보다 더 많은 시민들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고 의심 없이 말하는 장면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그때 느꼈다. 정말 대통령 주변에 직언을 하는 이도 없고 본인 스스로 그걸 바라지도 않는구나. 


청와대에서는 각하나 기각에 더 기울어져 있던 듯하다. 국민의 80%가 탄핵을 바랐음에도 청와대는 그 반대편 20%의 의견에 더 의지했다. 특검 수사에서 범죄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무시했다. 설사 심정적으로 탄핵당하지 않으리라 믿었을지라도 일은 그렇게 하면 안 되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준비를 했어야 했다. 


아마도 누구 하나 박 전 대통령에게 “인용 시에는 삼성동 사저로 가셔야 하니 그래도 미리 점검은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라고 건의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건 주변인들의 잘못이 아니다. 본인의 잘못이다. 민주주의 공화국의 지도자로서 해야 할 일 중에 하나는 주변인들이 편하게 말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삶 자체에서 타인과의 관계에 민주성이 없었고 지도자가 되어 더 강화됐다. 


민주주의 철학의 근간에는 자유 외에 평등도 있다. 평등은 별거 아니다. 너나 나나 다 같이 불완전한 인간이니 서로 비슷한 눈높이에서 보다 나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편하게 소통하자는 것이다. 그런 보편적 인식이 결여된 인물이 독재주의 국가가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의 최고 권력자가 됐다. 실은 이것이 박근혜 정권의 가장 큰 비극이고 한국의 퇴보를 가져온 원인이다.     


하여 박 전 대통령이 쉽게 청와대를 나오지 않을 것으로 봤다. 정말로 기각이나 각하만을 생각했을 수도 있고 법의 엄정성이 어떤지 개념도 없던 것이다. 끝까지 수습할 기회를 놓쳤다. 박 전 대통령을 옹호하던 저쪽 편의 사람들조차 이에 대해서는 시쳇말로 ‘쉴드’를 쳐줄 수 없는 상황을 자초했다. 


2.

오늘 아침 ‘박 전 대통령’을 주어로 하는 글들을 미리 작성하면서 느꼈던 일말의 불안은 경험에서 비롯됐다. 상식적이고 법률적으로 따져보면 탄핵 인용은 ‘무난한 일’이었다. 또 일부 학자들이나 정치인들은 탄핵 확실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당연하고 상식적인 일들이 어긋나고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을 많이 봐왔다. 일단 박근혜 정부만 해도 국정원과 기무사 등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해 당선이 됐다. 법원에서 해당 사건의 주모자들에 대해 유죄가 내려졌지만 정작 박 전 대통령에게는 아무런 징벌이 가해지지 않았다. 


국민들이 상식이고 정의라 생각했던 일들이 법원에서 뒤집힌 역사가 한국사에서는 드물지 않았다. 뻔히 범죄를 저지른 게 확실하지만 일부 권력자나 재벌들은 재판만 받으면 집행유예였다. 박 전 대통령의 아버지 대통령 시절엔 더 했다. 인혁당 사건만 해도 사형 선고 다음날 사형을 집행했다. 우리나라 사법부가 그런 곳이었다. 


여기에 대통령 변호인단의 화려한 스펙들도 괜히 불안했다. 하는 말들은 앞뒤가 맞지 않거나 궤변, 혹은 아전인수가 대부분. 그렇지만 그들의 스펙은 한국사회 엘리트의 표본보다도 높았다. 그들은 목소리를 높여 탄핵은 기각되거나 각하된다며 사람들을 선동했다. 구체적인 이유도 없이 가짜 뉴스를 근거로 목소리를 높였다. 


또 있다. 약간 다른 맥락이지만 올해 미국 슈퍼볼이나 하다못해 어제 FC바르셀로나의 경기만 해도 모두가 이길 거라 생각했던 팀이 결국 엄청난 역전패를 당했다. 즉 결과가 날 때까지 안심할 수 있는 게 없다 교훈을 되새기게 했다. 탄핵심판 역시 그런 맥락에서 시간이 다가올수록 왠지 불안한 마음이었다. 


탄핵선고를 읽는 와중에도 설마설마했었다. 세월호 사건도 탄핵의 사유가 되지 않는다 했을 때 혹시나 하는 불길함도 돌았다. ‘그러나’ 반전이었다. 아니 순리대로 풀렸다. 박 전 대통령은 헌법을 수호해야 하는 대통령이라는 직무와 책임과 의무를 전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그 헌법을 무시하고 능멸하려 했다. 그 지점을 정확히 짚어가며 결국 파면시켰다. 민주주의 공화정의 존재 의미와 가치를 확인했다. 역설적으로 내가 헌법에 대해 그리 확신이 없었나 싶어 잠깐 반성했다. 훗날 역사는 최순실 국정농단이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헌법유린으로 이 사건을 기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 지도자가 헌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곳은 한 군데 있다. 북조선이다. 박 전 대통령이 북조선으로 망명을 신청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엉뚱한 생각은 혼자만 하기로 했다.  


3.

세월호 사건 당일도 그랬지만 오늘 역시 퇴근길은 평범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는 듯했다. 하지만 그냥 어제나 그제나 같은 퇴근길이었다. 세월호 사건 당일의 퇴근길도 그러했다. 지하철의 분위기에서는 아무것도 감지할 수 없었다. 그게 어쩌면 우리의 일상이고 그 일상들의 견고함과 무미건조함이 또 현실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일 수 있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이 양식 있는 이들의 영혼에 상처를 남겼듯이 오늘 박근혜 대통령 파면은 민주주의 공화정에 살고 있다는 자의식을 가진 이들에게는 뭔가 값진 보람과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으로 남았을 것이다. 


더욱이 헬조선이라 스스로 자학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우리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근거 하나를 만들어냈다. 모순과 불의와 부정의가 아직도 만연하고 점점 더 각박해지고 살기 어려워진다고 아우성인 현실이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조금씩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여기까지 왔다. 평화시위로 헌법을 능멸한 권력을 끌어내렸고 그 과정에서 집단의 슬기를 보여주었다. 어느덧 우리 사회도 성숙했고 우리 스스로 잘 인지하지 못하는 균형감각을, 자정능력을 갖추게 됐다. 


미시적인 관점에서 불만스러운 일도 많고 종종 미래가 암울하지만 그럼에도 이 나라가 과거보다 계속 나아지고 있으며 이 민족이 뭔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려 한다는 확신이 있다. 바로 그런 확신이 바로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들의 교집합 영역이다. 그 확신 없이 그저 스스로를 자학하고 자존감을 버리고 패배의식에 빠지는 일이 실은 위험한 일이고 이 사회의 적폐다.


탄핵 인용이 기쁜 건 그래서다. 미약하나마 촛불을 들어 힘을 모았고 탄핵이 결정됨에도 또 큰 흥분 없이 찬찬히 내 일상을 완수하고 만끽하고 하루를 성실히 보냈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훨씬 더 많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아마도 이제부터가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민주주의 공화국의 출발점일 것이다. 그 역사의 하루를 조금은 길게 남겨본다. 


2017년 3월 10일 CNN 홈페이지 메인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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