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신 공감

독신으로 산다는 것 35
'한참을 쳐다보다'

독신 공감

by 월영

건너편 자리에 아리따운 처자가 홀로 앉아 골몰히 책을 읽고 있다. 짧은 치마 탓에 매끈한 다리가 보인다. 시선을 거두려고 애를 쓰지만 쉽지 않다. 공공의 장소에서 젊은 처자를 남몰래 보는 것은 윤리적으로 제어해야 하는 행위다. 상대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쳐다보는 것은 일종의 범죄. 본능과의 갈등이 생긴다.


‘힐끔’이란 단어는 아마도 이런 상황에서 생긴 것일 게다. 다시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앉은 방향을 바꿔 아예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지 않도록 했다.


눈길이 갔던 이유는 단순히 매력적인 외모 때문은 아니다. 멀지 않은 자리라 또렷이 들려오는 통화 음성에서 사뭇 놀랐다.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목소리. ‘닮았다’는 말은 과거의 어떤 상황을 순식간에 열어주는 요술 같은 단어. 여기에 그리움이 붙으면 문제다. 뇌 속에 남아있던 막연한 이미지에 시각과 청각이 과거로 되돌아가 지금은 만나지 못하는 인연을 꺼내온다.


이어지는 상념. 그 사람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혹은 왜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 것일까. 하던 일의 속도가 천천히 줄어들고 카페의 소음과 별개로 내 주변에 진공관이 생기며 격리된다. 1초, 1분, 반나절, 한나절, 하루, 일주일, 그리고 그 기간. 시간의 상대성은 물리학 이론서에서 빠져나와 내 기억 속에서 울렁거린다. 보고 싶다 보고 싶지 않다. 갈팡질팡.


연인의 부제는 시선이 자유로울 수 있는 시공간의 부제와도 이어진다. 남녀 사이에 ‘사귄다’는 상황은 체온의 교감 여부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보다 서로를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다는 시선의 자유가 선행한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시선의 경계가 있다. 연인이 된다는 것은 내 신체를 향한 시선의 경계를 없애는 일이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는 대상. 그리고 그 눈길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상대. 숱한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도 연인들의 여부를 감지할 수 있는 방법은 서로를 향한 눈길에 장애가 없는 이들을 찾아내면 된다.


하여 보기만 해도 좋은 그대. 내 시선이 윤리적으로 죄가 되지 않는 그대. 시선이 자연스럽게 향하는 본능을 그대로 놔두어도 거리낌 없을 그대의 존재. 우리가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눈으로 발산하는 무언의 신호들.


둘러보니 카페에는 그런 신호로 교감하는 이들이 사람들이 적지 않다. 다행히 아리따운 처자는 책에 눈길을 거두지 않은 채 골똘히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다. 기시감이 일어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자리를 정리한다. 맞은편 카페 문이 열리고 싱그럽게 생긴 청년 한 명이 들어온다. 잠시 두리번거리다 표정이 환해진다. 그 처자 앞에 가서 앉는다.


문 앞으로 나서며 어쩔 수 없이 ‘힐끗’ 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눈길이 보였다. 둘만의 시선 교환. 그 무구함과 자유가 느껴져 이유가 정확하지 않은 아쉬움은 잠시. 흐뭇함에 괜히 웃음이 지어졌다.


카페 밖으로 나오니 가로등 불빛 아래 목련이 한창. 한참을 쳐다보다 발길을 돌렸다. 그 목련 향기 아래 오랫동안 서로 쳐다보며 말이 없던 사람이 한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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