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걷지 않고는

가볍게 진지한 상념의 흔적 4

by 월영

혼자 살아 좋은 점이 여행을 떠날 때다. 누구를 챙기거나 고려해야 한다는 부담도 없다. 오직 내 취향대로 맞춰 결정하고 일정을 짤 수 있다.


혼자 다니면 외롭지 않냐고 묻지만 거기에는 함정이 있다. 둘이 숙식을 함께 하는 여정을 다녀 본적 없어 함께 다닐 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는 점이다. 여기서 둘은 당연히 연인이나 아내 등 이성를 의미하고 혹은 식구나 친구를 뜻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전자다.


여기에 은근한 기대감을 함께 다니는 이들은 외면해야 한다. 여행지에서의 로맨스. 물론 영화나 소설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아니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그럼에도 행여 어딘가에서 운명적인 누구를 만나 '비포 선 라이즈'를 찍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함은 싱글만이 가진 떳떳한 상상이다.


무엇보다 한 가지. 믿지 않겠지만 혼자 가면 종교적인 무엇을 느끼기 좋다. 종교의 본질 중 하나는 우리가 결국 단독자이고 개별적이고 인간 누구와도 일치를 이루지 못하는 불완전하고 불안한 사람임을 상기시켜 주는 일이다. 그 불완전과 불안을 거치지 않고서는 인간은 섭리와 순리가 주는 평정과 무상함과 마주칠 수 없다.


그 평정과 무상이 지나고 나면 어설프나마 '자유'가 단어의 틀에서 벗어나 아니라 삶의 한 형태로 다가온다.


인간은 서로 얽혀 있으되 신 안에서 그저 하나의 작은 존재. 그러므로 너와 나로 인해 행복해야 하고 감읍해야 하고 우리를 추하게 하는 여러 탁한 욕망을 경계해야 한다는 다짐이 생긴다.


홀로 여행지에 가서 음미하고 오는 그 무엇들이다. 더러 여럿이 있던 여행길에서는 감지하지 못했던.


허나 일상에서 이런 저런 이해관계 속 이기적인 존재인 나는 단지 여행지에서만 살짝 숭고한 척 자아도취에 빠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당장 밥벌이를 하는 삶의 현장에서는 오히려 야차처럼 거침없이 욕망을 드러내며 일희일비하고 조삼모사하는 장삼이사에 불과하다.


다만 그런 장삼이사들의 하루 하루가 쌓여서 문명이 되었고 그 문명 덕에 홀로 편하게 여행을 다니며 내면의 충족도 느낄 수 있다는 것 또한 홀로 다닐수록 새록새록한 것들이다.


홀로 여행이란 결국 오늘의 이 똑같은 나날이 실은 큰 축복이고 소중한 시간임을 다시 한 번 떠올려주는 조금은 긴 산책과도 같을 것이다. 그 산책에 필요한 건 사색.


'홀로 걷지 않고는 사색의 그윽함을 보기 어렵다'.

이 한 문장을 쓰기 위해 혼자 살아 좋은 점을 굳이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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