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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영 Jul 27. 2017

'세상의 중심' 델피  신의 목소리가 들렸을까?

그리스 여행기 2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거창한 브랜드였다. '바람이고 싶어. 강물이고 싶어. 그대 기억 속에 그리움으로 남고 싶어"라는 씨엠송과 함께 1990년대 초반 캐주얼 붐이 일었을 때 나온 의류 브랜드 바로 '옴파로스'였다. 사실 '옴파로스'라는 이름이 그리스 신화, 아니 역사에서 나왔다는 것을 그리스 여행을 위해 1박 2일 간 현지 한인 가이드 투어를 신청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그리스 신화를 읽었었으니 기억에 남았을 법도 했지만 내 머릿속을 아무리 되돌러 봐도 '옴파로스'는 1990년대 의류 브랜드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델포이(Delphoe) 그리스에서는 델피라고 지칭한다. 가이드가 천직인 듯 한 젊은 한국인 처자 가이드는 아테네에서 델포이로 가는 버스 안에서 그리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면서 말했다. 미국 사람들이 델포이라고 해서 그리스 사람들은 싫어하니 나중에 여행기를 쓰실 대라도 꼭 델피라고 적어달란다. 그리스 중부의 포키스 지방. 2000미터가 넘는 산들이 즐비한 파르나소스 산군의 중턱에 자리 잡은 델피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기던 곳이다. 이는 중국인들이 과거에 산둥반도에 해발 1900미터가 안 되는 태산을 일컬어 하늘 아래 가장 큰 산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비슷하다.


 

델피로 가는 길에는 그리스 신화에서 익숙했던 지명이 종종 나왔다. 그리스 신화가 대개 그리스 내 도시국가들에서 일어난 일들을 중심으로 해서다. 가이드가 창밖을 보라며 일컬은 곳은 테베였다. 분명히 읽고 들어 아는 내용이었지만 가이드의 설명은 또 새로웠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으로 유명한 '오이디푸스 왕'의 주무대가 바로 테베였기 때문이다. 테베의 왕 라이오스와 왕비 이오카스테. 그의 아들 오이디푸스에 얽힌 운명의 장난과 저주. 프로이트를 통해 심리학적 용어로 자리 잡은 오이디푸스 콤플랙스를 수용하고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일은 사춘기 소년이 이십 대 성인으로 넘어가기 위해 한번은 거쳐야 하는 관문이기도 했다.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소포클레스를 통해 활자화되고 연극으로 올려졌지만 그 이전부터 전승되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집트 피라미드 앞에 서 있는 스핑크스가 바로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창 너머로 보이는 테베의 풍경은  그 이름이 지닌 상징성이나 파급력과 달리 평범하고도 조용해 보였다. 그리스의 여행은 그런 면에서 다른 곳을 여행하는 것과 차별점이 뚜렷했다. 오이디푸스의 내용을 알기 전에 스핑크스의 전설을 먼저 알았다. 스핑크스가 테베 시민들을 잡아억기 위해 낸 수수께끼와 이를 푼 왕자님의 이야기는 유년시절 동화책에서 숱하게 봤던 내용 이라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IQ84'에서 자신이 기억하는 첫 순간, 즉 기억의 기원을 상기하는 장면을 담았을 때 속으로 아! 나만 그리 그걸 궁금해하는 것은 아니구나 싶어 묘한 동질감과 함께 또 시샘이 일기도 했다. 언젠가 내가 쓸 글에서 써먹으려 했던 일종의 '아이템'이어서다. 그런 맥락에서 그리스 여행이 주는 각별함이 있었다. 스핑크스의 전설이나 수수께끼는 어머니가 읽어주시던 아동용 동화책에서 처음 접했다. 그 이야기의 출발점이었던 테베를 비록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길에 창으로 본 것만으로도 그 기분이 묘했다.


내가 알고 있는 숱한 지식은 허구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실제 역사 안에서 전승되고 문자화 되어 이어진 내 조상의 조상의 조상들의 목소리와 지혜란 생각에 아득했다. 그리고 수천 년 전에 테베가 아직도 테베로 불린다는 사실도 새삼스러웠다. 우리나라의 지명 중에 수천 년 전 이름을 계속 간직한 곳이 몇 곳이나 있나 싶어서였다. 그리스의 역사도 부침이 많았지만 적어도 지명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영속성과 일관성의 측면에서 그리스가 지닌 저력 혹은 유럽을 토대로 한 서양 근대문화 시발점으로서 그리스의 깊이가 경이롭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직선적인 시간의 흐름과 일관성은 음과 양, 변화와 윤회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기 어려웠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한 가지 버전이 지속되는 사회. 그래서 순환이란 개념이 그리스에서는 자리잡기 어려웠을 듯싶었다.    


그렇게 테베를 지나 아테네에서 출발한 지 두세 시간 만에 델피에 닿았다. 델피로 가는 길에서 비로소 그리스의 국토 가운데 산지가 70% 애 달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코린토스만을 끼고 파르나소스 산군의 허리를 구비 구비 돌아 올라가는 길은 극적인 감흥을 주기 충분했다. 육산으로 숲을 품고 있는 한국의 산과 달리 그리스의 산들은 대리석이 많은 돌산이 대부분이었다.



돌산이다 보니 자연히 식생이 풍부할 수 없었고 은거할 수 없었다. 한국의 산들이 대개 인간을 품어주는 산이고 인간에게 곁을 내주는 산이었다면 그리스의 산들은 그 자체로서 권위를 휘두르고 있었다. 경외의 대상으로서 장엄함과 웅장함을 선사했지만 인간의 삶과 어울리지 않았다. 한국의 산들이 모성을 지니고 있었다면 그리스의 산들은 늙은 거인들처럼 두려우면서도 비의감이 있었다. 이는 전적으로 한국에서 40여 년을 살면서 체화된 나만의 한국적 프레임으로 그곳의 풍경들을 봤기 때문이겠지만.


델피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크레타 문명이 발흥하던 BC 1000 무렵부터 사람의 흔적이 나왔고 BC 500년 무렵 그리스의 신탁 장소로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델피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고고학적인 가치도 있지만 그리스 신화를 관통하는 '신탁'의 주무대가 바로 델피였다는 사실에 있다. 신탁이란 델피에 있는 여사제가 신의 목소리를 점치러 온 이들에게 들려주는 일이다. 동양에서 거북이 등에 점을 봤듯이 그리스 신화에서는 델피 신전에서 여제사장에게 신탁을 듣고 가부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델피가 유명해진 이유는 그곳의 신탁 적중률이 꽤 높아서다. 하지만 델피는 그리스가 로마에 점령당하면서 무너졌고 이후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쇠락했다. 델피 유적지의 모습은 18세기 후반, 고고학적인 발굴을 진행하면서부터 다시 역사에 모습을 나타냈다.



수천 년 전에 이곳에서 신탁이 오갔고 근동 지역의 온갖 금은보화가 넘쳐났다. 그리스 도시국가의 왕들은 중요한 국사를 신탁에 의지해 처리했다. 인간은 운명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도 그보다 운명 자체를 더 궁금해했다. 델피의 유적들은 로마 시대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들의 잔해로 지어졌다고 한다. 문명이 무너지고 또 다른 문명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델피의 신탁 또한 점차 그 신성을 잃어갔다. 르네상스 이후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의 과정에서 인간은 비과학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합리와 이성의 세계로 진입했다. 그렇다고 우리는 매사 합리적이로 이성적이며 또 세상에 신비한 일이란 없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세상의 중심. 세상의 배꼽. 옴파로스는 그런 뜻이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가 2마리의 독수리를 날려 2마리는 세계를 가로질러 날아 세상의 중심에서 만난다. 옴파로스는 이 위치를 나타내는 것으로 주로 돌로 만들었다. 지중해 각지에 세워져 있으며, 델포이의 옴파로스가 가장 유명하다. 델피 박물관으로 옮겨놓은 옴파로스를 보면서 유구한 역사 속에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두 가지를 곱씹어봤다. 바로 '운명'과 '염원'이다. 옴파로스는 지리적인 의미에서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어저면 인간의 의식 속에 있는 궁극의 중심을 뜻한 것은 아니었을까? 바로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운명과 그리 사여 그 운명을 어떻게라도 변화시켜보겠다는 '염원' 사람에게는 두 개의 무의식이 있고 그것이 마주쳐 균형을 이루면 비로소 인생의 중심을 잡는다. 중심이 잡혀야 온전히 움직일 수 있다. 능동적으로 몸을 혹은 삶을 움직일 수 있다.


델피에서 떠오른 상념들은 그런 것들이었다. 인간사의 덧없음, 폐허가 된 유적의 아련함.  허무함 아니면 비애나 비감의 정서를 넘어 세상의 중심. 인간의 중심에 대한 신화적 해석. 이렇게 형이상학적인 사고는 기어이 신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신은 종교라는 프레임을 통해 인간사에 들어왔다. 그 프레임 안에서 평생을 살았을 사람들이 과거에는 부지기수였다. 그들 중에서도 특별한 이들의 자취가 남아있는 곳으로 버스가 향하기 시작했다. 바로 공중의 수도원. 메테오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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