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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득원 Nov 27. 2022

<푸쉬오프>:
‘변화를 위한 여정’의 지난함

어디로 가야 할까, 이게 맞을까.

허5파6, <푸쉬오프>, 네이버 웹툰

허물고 짓는 과정의 반복     


팬데믹 이후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일은 직장에서, 교육은 면대면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일상적인 관념이 허물어지고 재택근무와 비대면 교육의 활성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뉴 노멀(New-normal)은 더 이상 낯선 개념이 아니다. 우리는 어느새 적응하고 성장했으며 변화하였다. 이렇듯 변화는 개인의 의지뿐 아니라 현실과의 타협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변화란 결국 붕괴와 창조의 준말이다. 이전의 것들을 무너뜨려 비운 후에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푸쉬오프>는 새로운 것을 마주하며 느끼는 불안과 설렘, 이전의 것들에게서 찾게 되는 편안함과 아늑함을 묘사하며 변화를 위한 여정을 치밀하게 그려내는 작품이다. 변화의 서사가 가지는 오해 중 하나는 작중 인물의 변화 과정을 곧 ‘성장기’라고 전제하는 것이다. 물론 본인에게 주어진 제약과 시련을 이겨내고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눈물겨운 성장의 요소가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건이나 상황에 휩쓸려 본인도 모르는 새에 전혀 다른 곳에 놓여 변화에 발맞춰야 하는, 혹은 성장을 위한 방황의 ‘적응기’도 있다. 변화의 과정은 지난하다. 변화는 단숨에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푸쉬오프>의 주인공 ‘다혜’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사이비 종교인 생생교의 거주 시설에서 자랐다. 학교에 제대로 가지 않았고 교단 내부의 사람들 외에 소통다운 소통도 없었다. 그런 다혜에게 사회는 ‘너무도 당연했던 규칙’을 부정해야 하는 낯선 환경이었다. 무너진 세상을 뒤로한 채, 새로운 세상으로 떠밀리게 된 다혜의 미래(未來)는 막막하기만 하다.          


허5파6, <푸쉬오프>, 네이버 웹툰

낯선 세상 받아들이기     


사이비 종교 생생교(生生敎)의 만행이 뉴스를 통해 세상에 퍼진다. 교단이 와해되고 교주는 체포되었으며 독실한 신자였던 다혜의 엄마마저 연행되었다. 스물두 살의 나이에 사회에 던져진 다혜를 챙긴 건 이혼 후 새로운 가정을 꾸린 아빠였다. 아빠는 읊조린다. 이미 다 설명해놨다고, 앞으로 너도 살 집이니까 주소를 외워두라고. 이제 그냥 네 인생 열심히 살아보라고. 그런 아빠의 말에 다혜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어색하게 들어선 집에는 새엄마, 같은 나이의 ‘윤서’가 있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다혜를 응원하고 걱정한다. 뿐만 아니라 윤서의 소개로 만나게 된 보드 크루원들 또한 다혜를 이해하고 배려한다. 그럼에도 다혜의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하기만 하다.     


보드 크루원들과 함께 하면서도 다혜는 생(生)신님의 징표(일종의 펜던트)를 만지작거린다. 대화를 나누다가 홀로 어색함을 느낀다. 교주님과 사탄을 운운하며 상처를 돌보려 하는 등 현상을 이해하는 사고방식의 간극을 쉽게 메우지 못한다. 본인 명의의 핸드폰을 개통하고 새로운 타인과 어울리며 이전과 달라지는가 싶다가도 16화의 대화 중 “생(生)신님만이 진짜 신이시거든요”와 같은 대사는 변화의 어려움을 오롯하게 보여준다.          



끝나지 않은 변화의 여정     


다혜는 알바를 시작한다. 사고 싶은 보드가 생겼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자리 잡고 싶은 마음도 있다. 앞서 변화는 적응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변화는 단지 개인만의 사건이 아니다. 상호작용하며 발생하는 복잡한 이해관계의 총체적 결과다. 우리는 작품을 탐닉하며 문제에 대한 유일한 방안, 최상의 결론만이 있기를 바라기도 한다. 현실의 지지부진함에 지쳐 허구의 단순 명쾌함에 열광하는 걸지도 모른다.     


언제나 일정한 속도로 흐르는 현실의 시간을 사는 동시에 종교적 색채를 지우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다혜의 답답한 모습과 ‘나’가 겹쳐 보이는 건 당연하다. 비슷한 연약함에게 위로받으며 용기마저 얻게 되는 건 인간의 본성이 변화를 겁내면서도 뿌리치지 못하는, 감추면서도 동시에 드러내기를 원하는 모순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시간을 보내더라도 어제와 똑같은 오늘은 없을 테다. 새로움은 도처에 있다. 변화 역시 새로움의 끄트머리에 머물러 있다. <푸쉬오프>는 연약한 개인을 내세워 변화의 방향성을 묻는다. 변화를 꿈꾸는 과정에서 내면의 갈등은 당연하다고, 중요한 건 현재의 위치가 아닌 방향이라고 독려하는 것이다. 푸쉬오프(PUSH OFF), 보드를 탈 때 발을 땅에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를 뜻하는 말이다. 다혜는 이제 막 나아가기 시작했다. 외면하던 진실을 마주하고 변화를 결심했다. 우리의 미래 또한 마찬가지,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나아가면 될 일이다.



* 본 글은 만화규장각 > 웹진 > 만화리뷰에 수록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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