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제작 선언, 그리고 접근성의 확대
반다이의 새로운 도전: 웹툰 제작 선언
2023년 2월 31일, 반다이남코엔터테인먼트(이하 반다이)는 반다이필름웍스(구 선라이즈)와 연계하여 웹툰 사업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웹툰 레이블 ‘반다나코믹’을 설립하여 여름 이후 공식 사이트를 런칭하고, 연말에는 작품 오픈을 예정하고 있다고 한다. 반다이는 건담을 비롯하여 드래곤볼, 세일러문, 원피스 등의 이른바 ‘IP(Intellectual Property)’를 다수 보유한 회사로, 일본의 대표적인 캐릭터 프랜차이즈 업체 중 하나이다.
반다이 실적 보고서(2022년 회계연도, 2022년 4월 1일~2023년 3월 31일)에 따르면 9900억 엔(약 9조 8000억 원) 매출을 올렸다. 이는 전년동기 대비 11.3%가 증가한 수치이다. 가장 큰 매출이 발생한 부문은 4474억 엔(약 4조 4270억 원)의 매출 성과를 기록하며 19.8% 성장한 완구 부문이다.
그러나 건담 시리즈는 근 10년 동안 발표하였던 3편의 신작이 흥행에 연달아 실패한 참이었다. 저작권 산업의 다양한 파생 범위와 일본 내 최다 IP를 보유했다는 내용을 고려한다면 지나친 비약이 될 수도 있으나, 콘텐츠의 생명력을 위해 이전과는 다른 사업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임은 분명하다.
건담, 7년 만의 설욕: <수성의 마녀>
반다이의 IP 중 건담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가고자 한다. 1979년 방영되었던 <기동전사 건담>에서 건담 시리즈는 일본 만화의 대표작 중 하나이자 로봇 애니메이션의 시초로 대중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기동전사 건담>은 여타 장르물과는 다른 접근법을 선보였던 작품이다. 먼 미래, 과도하게 늘어난 인구를 우주공간으로 이주시키고 반세기가 흐른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지구와 거리가 있는 어느 우주 도시 사이드3는 스스로 공국임을 내세우며 지구연방정부에 대항해 독립 전쟁을 벌이게 되는데, 이때 등장하는 거대로봇이 건담이다.
건담이 처음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은 아니다. 방영 당시 평균 시청률은 일본의 서쪽 나고야 지역이 9.1%, 동쪽인 관동 지역이 5.3%를 기록했다. 그러나 후반쯤, 애니메이션 전문 잡지를 통해 특집 기사가 다뤄지고 중·고등학생들을 중심으로 팬층이 형성되면서 재방송 요청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이에 1981년 재방송 당시, 관동 지역 시청률이 17.9%였으며 1982년 재방송의 나고야 지역 최고 시청률은 무려 29.1%까지 상승했다. 첫 시리즈 종영 6개월 뒤부터 판매했던 건담 프라모델(건프라)은 애니메이션과 함께 인기가 급상승하였다. 이후 후속 시리즈 제작을 거듭하며 지금의 건담 시리즈가 된 것이다.
하지만 미디어믹스로서의 성장 과정에서 쌓인 방대한 서사는 일반 대중들에게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수많은 시리즈의 내용과 맥락에 대한 논의는 작품을 막는 요소로 자리 잡았다. 건프라의 등급표(PG/ MG/ RG/ HG/ SD 등) 또한 기존의 코어 팬층과 신규 유입 팬층의 차이를 두드러지도록 하며, 커스터마이징의 호환성 및 다양성은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들 뿐이었다. 원판이 잔뜩 쌓여 있음에도 퍼스트 건담 시리즈의 바리에이션 시리즈는 매번 내놓는 행보 또한 환호와 비아냥이라는 극단의 평가를 받는다.
이런 흐름에서 반다이 후지와라 타카시 건담 수석 책임자는 ‘제3회 건담 컨퍼런스’를 통해 7년 만의 신작 <수성의 마녀>을 언급하며 “기존 건담의 메시지와 정신은 그대로 계승한다. 그러면서도 여주인공의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의지를 밝혔다. 국가 간의 전쟁이나 정치적 갈등이 담긴 주 내용과 악역에 대한 입체적인 접근이라는 건담 시리즈 서사의 고유한 정체성은 유지하면서도, “지금까지의 팬들과 새로운 건담 팬도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며 자신감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후 반다이는 유튜브 플랫폼을 통한 전 회차 무료 공개, 한국어와 영어를 포함한 9개의 언어 자막 지원 등 외부적으로도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 준다. <수성의 마녀>는 주, 조연 캐릭터들의 건프라 디자인에 대한 관심으로 국내 품절은 물론, 현지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 되었다. 작품은 입소문을 통해 빠르게 전파되어 이전 건담의 코어 팬층부터 신규 유입 팬층을 모두 아우르며 화제가 되었다.
또 22년 10월에서 11월까지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운영되었던 ‘기동전사 건담 수성의 마녀’ 콜라보레이션 카페의 한정 메뉴(르브리스 컨프라+에이드 세트)는 오픈 당일 3시간 만에 조기 소진되며 그 인기를 증명했다. 카페의 고객 웨이팅 예상 시간이 최장 6시간 30분까지 부여되기도 했다는 점 또한 눈여겨볼 부분이다.
콘텐츠 접근성의 확대: 웹툰과의 연결성
상기의 흐름과 세계 시장 내 웹툰의 존재감을 생각한다면 반다이의 웹툰 사업 참여는 유의미한 시도일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웹툰은 출판 만화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컷 간 공백이나 배치를 통해 연출의 폭을 넓혔고, 회차별 주간 연재 시스템을 비롯한 모바일 접근성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하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웹툰 시장의 규모는 지난 21년 기준 1조 538억 원으로 일본 만화의 시장 규모에 비해 작은 편이었으나, 성장세 측면에서 앞서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웹툰 콘텐츠의 특장점과 가능성은 건담 IP의 변모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한다. 그러나 풍부한 서사를 간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웹툰을 단순한 확장의 수단으로 지정해서는 안 된다. 바라트 아난드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콘텐츠의 미래(리더스북, 2017)』에서 IP 비즈니스를 확장이 아닌 연결에 중점을 두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21세기의 콘텐츠 비즈니스의 핵심은 바로 “연결”’이라는 것이다.
거대한 북미 시장을 기반으로 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 MCU), 트랜스포머 시네마틱 유니버스(Transformers Cinematic Universe), DC 확장 유니버스(DC Extended Universe, DCEU) 등은 모두 연결성에 기반을 둔 수익 극대화 전략에 속한다. 독립적인 각각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최종적으로는 하나의 세계관을 완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플랫폼(Platform)이란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게임, 웹툰 등 다양한 ‘콘텐츠(Contents)’의 결정체로 볼 수 있다. 전체 서사를 아우르는 여러 콘텐츠가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하나의 IP로 구축된 세계관을 더 촘촘하게 엮을 수 있는 수단으로써 웹툰이 추가된 것이다. 새로운 콘텐츠 유입은 플랫폼 내 문화적 연결성 확충에 그 의미가 있다.
근래 콘텐츠 업계는 검증된 인기와 구체화된 서사를 가진 오리지널 IP라는 이유로 웹툰을 단순히 OSMU 사업의 자원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자본력을 가진 기업이 상업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IP를 전략적으로 개발하고, 재가공된 콘텐츠를 대중들에게 전파함으로써 웹툰이 고부가가치 산업의 원천 IP로 조명된 것이다.
콘텐츠 시장의 현황: 웹툰의 가능성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는 플랫폼 인프라를 바탕으로 소비자와 창작자, 자본이 모여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나, 웹툰은 웹툰 그 자체로 충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시장조사 기관 스페리컬 인사이트&컨설팅이 2022년도에 공개한 글로벌 웹툰 시장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웹툰 시장은 2030년까지 연평균 40.8%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2021년 47억 달러(약 6조 2500억 원)였던 시장 규모가 2030년 601억 달러(약 80조 원) 시장으로 13배가량 커질 것이라 예측하는 상황이다.
또한 네이버웹툰의 이용자 지표는 일본을 전 세계에서 이용자당 평균 매출(ARPPU)이 가장 높은 시장으로 분석한다. 일본에 서비스 중인 라인망가와 이북재팬의 ARPPU는 각각 3만 5000원, 4만 8000원으로 한국(9000원)을 훨씬 웃도는 수치이다. 글로벌 시장의 ARPPU 역시 1만 3000원으로 웹툰 종주국으로 불리는 한국을 상회한다. 유료 결제를 통한 수익 창출을 메인으로 하는 웹툰 산업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이는 해외 시장에 대한 전망과도 직결된다.
애플북스의 일본 이용자 대상 서비스 ‘세로로 읽는 만화’(縱讀みマンガ) 메뉴 신설, 아마존 플립툰의 웹툰 서비스 오픈은 글로벌 1위 만화 시장의 영향력과 웹툰의 가능성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일본 시장은 지난 2년간 전 세계 도서 카테고리 매출에서 43.6%의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각 사의 플랫폼을 통해 미국 시장 내 웹툰의 인지도를 확충하였다. 이에 뉴욕타임스는 웹툰의 인기를 조명하며 ‘웹툰은 Z세대와 여성들을 끌어모으는 새로운 콘텐츠 브랜드’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2022년 10월부터 본격적인 웹툰 편집 및 제작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기대되는 것은 연결성을 담보로 하는 신선한 스토리텔링의 영역이다. 막강한 팬덤은 비주류 문화를 향유하는 이들 간의 소속감에서 기인하지 않는다. 형식과 범위에 얽매이지 않고 재미와 감동을 주는 스토리텔링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IP는 단순한 소스로 남게 되고 말 것이다.
반다이의 건담은 독창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수많은 시리즈물을 양산하였다. 아울러 세대 친화적인 접근을 통해 <수성의 마녀>로 신규 팬의 유입을 도모했다. 건프라의 꾸준한 매출과 <수성의 마녀>의 성과는 43년 동안 글로벌 규모로 구축한 건담 IP 벨류체인과 이를 통한 선순환 효과의 일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반다이의 웹툰 사업은 비단 건담에 국한되는 게 아니다. 오리지널 작품 외에 반다이필름웍스가 보유한 IP의 리부트 작품도 계획되고 있다고 하니, 이후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