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결말로 이어지려나
용사물의 범람
회귀와 환생, 루프 등을 통해 용사(혹은 영웅)가 된 이들을 다루는 작품이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혹자는 현생에 대한 불만과 체념에 의한 현상이라고 합니다만, 어쨌든 용사물은 일관된 문법이 있습니다. 동료를 얻어 모험을 떠나고 마왕을 물리칩니다. 모든 용사가 정의감으로 임하는 건 아니지만, 결국 나름의 신념을 관철하며 평화를 거머쥡니다. 이에 핵심은 어떻게 변화하였느냐로 귀결됩니다. 모험에 위험이 따르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나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작품의 방향성은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작품을 통해 확인하는 용사의 모험은 대개 여기까지입니다. 원래의 삶을 1막으로 본다면, 용사의 삶을 2막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용사물 제3막. 다시 찾은 원래의 삶
용사물 <용사가 돌아왔다>는 평화를 쟁취하고 용사로서의 할 일을 끝낸 '전직 용사'의 삶, 3막을 다룹니다. 검의 용사였던 '김민수'는 이세계로 소환되어 약 8개월의 시간 동안 모험을 용사의 의무를 다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원래의 세계는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가족은 죽고, 친척, 학교와 친구들은 ‘실종’을 비행 내지 일탈로 치부하며 김민수는 갈 곳을 잃습니다.
돌아온 용사에게 남겨진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용사에게 ‘희생’은 당연하고 무조건적인 의무이자 사명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이에 김민수는 세계를 구했으나, 다시 찾은 일상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받고 배척당합니다. 희생의 결과가 이런 것이라면, 그 누가 희생하려 할까요. 김민수는 쉽게 눈물을 보입니다. 물론 그 눈물 이후의 폭력은 무자비하고 처절합니다. 가족과 친구를 모두 잃고, 곧장 도시 하나를 날려버리는 압도적인 무력으로 흩어져 있는 용사들을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합니다. 김민수의 눈물은 회한과 절망, 체념의 상징입니다. 희생 뒤에 기다릴 것은 안락함이어야 했습니다.
“나는 세상을 구했는데...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렸는데... 나를 찾는 그 순간에 나는 돌아오기 위해 목숨을 걸었는데... 왜 나는 버려졌지?”
용사가 되어 다시 돌아온 건 검의 용사 김민수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창의 용사와 골렘의 용사, 흡혈의 용사, 무협의 용사 등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장르의 세계가 별도로 존재하여 그들은 각각의 세계에서 마왕을 무찔러 용사가 되었습니다. 이런 용사들이 김민수를 중심으로 모여 자신들의 세계를 파괴하기 시작합니다.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그들은 한반도, 나아가 세계에 재앙으로 인식됩니다. 물론 이에 저항하는 이들의 편에 서서 용사의 정의로운 이미지에 걸맞은 신념을 보여주는 용사들도 있습니다. 반격의 용사로서, 김민수에게 가족을 잃자마자 이세계에 소환되어 복수귀가 된 창의 용사 박정수는 반역의 용사라는 이름으로 김민수의 대척점에 서게 됩니다. 이러한 용사 내전의 전개는 다소 신선하게 와닿습니다. 이세계에서 마왕을 물리쳤던 용사와 용사의 격돌, 그리고 그 안에서 태어나는 마왕까지. 마치 세상이 용사와 마왕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일종의 순환성을 가지고 있는 듯 보입니다. 작품의 제목 <용사가 돌아왔다>처럼 말입니다.
순환의 저주, 각자도생의 결말
<용사가 돌아왔다>는 용사 모두의 사연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돌아온 용사들의 행동 동기와 목표를 세심하게 보여줍니다. 생과 사의 경계에 선 전장이니만큼 너무나 분명하고 뚜렷하게 드러나 연극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사실 일생이란 무대에서 ‘나’를 연기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무대란 배우에 의해 실현되고 관객의 존재로 의미가 생깁니다. <용사가 돌아왔다>는 용사물의 무대에 ‘회차’라는 시공간의 개념을 도입합니다. 이에 회귀의 용사 이성준과 작품을 지켜보는 독자만이 무한 루프의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반복은 사람을 지치게 합니다. 일상이라 통칭하는 매일의 삶도 사실 조금씩 다르며, 미래를 모르기에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법이 아닐까요.
그들의 다른 삶, 이성준이 회귀를 막기 위해 짜놓았던 무대 위에서가 아닌 오직 정의를 위해 몸을 던질 때는 모두의 활로를 모색했습니다. 진정한 지옥은 각자도생(各自圖生)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자기 살 길은 자기가 찾아야 한다는 각자도생의 풍조가 팽배합니다. 모두의 상황과 환경이 다를 텐데, 전제는 반영되지 않고 도태되면 지는 것이라는 등의 결과론적인 비난이 난무합니다. 일부 뛰어난 이들은 어떤 환경에서든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성공이야말로 상대적인 가치 아닌가요. 앞서 말했던 바와 같이 <용사가 돌아왔다>는 전직 용사의 삶을 다룹니다. 파괴를 위한 용사들과 파괴를 저지하기 위한 용사들의 격돌은 누구의 승리로 돌아갈까요. 그러나 그 승리가, 성공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이 각자도생의 비극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