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을 위한 마케팅’의 필요성을 체크하고, 방안을 살펴봅니다
악몽, 그리고 현재
1조 5천억 원 달성이라는 매출 규모의 성장세를 보이는 웹툰 산업 내 질적 저하와 양적 포화의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이에 양산형 웹툰의 팽배, 스튜디오 시스템을 표방한 공장식 제작 체제와 특정 플랫폼의 시장 독식 등이 주된 요인으로 손꼽힌다. 국내 만화계 몰락의 악몽(惡夢)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출판 만화로 일컫는 기존의 산업은 질적 개혁의 미흡과 공장식 제작의 폐해, 불완전 경쟁 체제와 유통 구조의 담합과 더불어 일본만화 복제 및 불법복제 만화의 팽배로 인해 쇠퇴의 길을 걸었다.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조직적 세력과 이로 인해 만화산업의 속성을 효율화하지 못한 채 과거의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다는 측면에서 역사의 반복이 예고되는 상황이다. 「한국 출판만화 유통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연구」(박세형, 1999)은 당시 산업의 성장세와 대비되는 질적 저하의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내 출판만화잡지의 매주 인기도 분석추이를 살펴보면 국내 작가들의 인기약진이 눈에 띄게 증가·확대되고 있으며, 일본 번역만화의 인기감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일본 만화를 제치고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고 있는 국내의 신진작가들 화풍이 일본 만화의 작화풍을 따르고 있다는 것과, 그러한 만화일수록 국내 독자들이 더욱 흥미를 갖게 된다는 것이 본래 더욱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웹툰 마케팅의 본질: 체험
노블 코믹스를 기점으로 웹툰 시장의 장르 중 하나로 자리 잡은 ‘회귀·빙의·환생’ 작품은 꾸준히 등장 중이다. 그 외에도 소재 혹은 장르, 구성, 주인공의 직업 등만으로 타 작품이 연상된다는 까닭에 등장과 동시에 외면받는 웹툰은 또 얼마나 많은가. 애초 런칭되었다는 내용조차 알지 못하는 웹툰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웹툰인사이트의 통계에 따르면 현 연재작은 1만 5천여 개에 달한다고 한다. 문제는 쏟아져 나오는 신작의 존재를 독자들이 알지 못하는 데에서 발생한다. 웹툰을 읽는 독자들의 84% 이상은 네이버 웹툰을 이용한다. 카카오 페이지/ 웹툰(전 다음 웹툰), 네이버 시리즈와 네이버 코믹스, 탑툰과 리디 등 수많은 플랫폼이 있으나, 작품의 인지도에 있어 플랫폼의 영향력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지표이다.
다채로워지는 문화예술 마케팅의 궤는 자본주의 경제 원리에 따른 과잉생산의 시대적 변화와 일치한다. 따라서 작품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조명받던 시대를 지난다면 마케팅의 시대로 넘어가는 것은 필연이다. 웹툰의 경우, 디지털 매체 그 중에서도 모바일 디바이스를 주요 지면으로 하며 주간으로 새로운 회차를 제공하는 철저하게 독자 중심의 ‘체험 상품’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품과 같이 구매 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 후 구매하는 것이다. 따라서 웹툰의 마케팅 행위는 어떤 체험을 제공하여 독자를 붙잡고 이끄는가에 달려 있다. 적게는 3화 분량, 많게는 10화 분량의 무료 회차를 베이스로 하여 유료 회차를 만들어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현재의 웹툰 제공 프로세스에서 1화의 중요성을 의식하고 압도적인 분량과 정보를 담아내고자 하는 것도 이 이유다.
마케팅은 단순한 판매 촉진을 위한 활동에 국한되지 않는다. 단어 자체의 정의를 살펴본다면 ‘시장(Market)’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시장의 요구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자원을 시장에 투입하여 목적을 위해 생산과 유통, 판매 등 모든 과정에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선행되는 건 상품의 핵심 가치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메시지를 발굴이다. 이른바 가치제안(Value Proposition)이다.
그러나 웹툰은 직접적인 효용이 발생하는 상품이 아니다. 물론 이는 거의 모든 문화예술에 해당하는 내용일 것이다. 수요가 발생하기 위한 기본 전제인 ‘필요’가 배제되니 웹툰이라는 상품의 고유성과 작품성, 즉 재미와 의미가 체험의 가치가 된다. 이에 따라 웹툰은 필요를 제하고, 재미와 의미 전달의 창구로서 마케팅을 진행해 왔다.
웹툰 마케팅의 방법론 (온/ 오프라인)
현 지면에서 웹툰을 위한 마케팅의 변화와 흐름을 상세히 담아낼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독자군 확대에 주력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는 데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자들의 입소문(바이럴 마케팅)에 의존하던 시기를 지난 후 온라인 광고의 경우, 주로 작품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였다. 물론 플랫폼의 정체성을 포함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작품을 대표하는 대사를 넣은 썸네일 배너, 원고와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눈길이 가는 근사한 대표 이미지 등을 내세워 이목을 끌었다.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예비 독자군의 접속을 유도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진행된 마케팅은 원천 IP 작품 홍보이다. 영화 혹은 드라마화 등이 진행될 예정의 작품은 기존 웹툰을 소비하지 않았던 예비 독자군을 유혹하는 기회였다. (외에도 보도자료 배포, 무차별 배너 광고 등도 있으나 이들은 사회적 이미지 제고 측면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건으로 주된 마케팅 방안으로 분류하는 건 어렵기에 제외한다.)
작품을 통해 플랫폼의 유입을 도모하는 마케팅은 오프라인에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작품의 인상적인 인물을 전면으로 내세우거나(레진 코믹스 <그다이>), 꾸깃꾸깃한 종이에 글씨만 적어 놓는(네이버 웹툰 <내 남편과 결혼해줘> 등 지하철 전광판, 버스 옆면, 버스 정류장의 가림벽을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독자 유치를 진행했다. 또 리디의 경우, 코엑스 벽면, 기둥, 천장 등에 대표작을 걸고 별마당에 팝업 전시까지 특정 작품(리디 <상수리나무 아래>)을 중심으로 광고에 매진했다. “한 번 빠지면 출구가 없는 작품”이라는 캐치프레이즈의 TV 광고를 통해 그 파급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작품 런칭이라는 사건, 그러나 대체로 조용한
이처럼 다양한 마케팅이 진행되고 있으나,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란 ‘조명되는 작품만 조명된다는 것’이다. 앞서 거론한 <상수리나무 아래서>는 원작 웹소설부터 웹툰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팬덤을 구축한 작품이었다. 22년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 내 5개의 전광판을 차지하기도 했으며, 공개 7일 만에 누적 조회수 60억을 돌파할 정도로 높은 성과를 이룩했다. 네이버 웹툰 <화산귀환>, <세기말 풋사과 보습학원>은 삼성카드, 네이버 파이낸셜과 함께 상업자표시신용카드(PLCC)를 출시하며 다양한 혜택을 주기도 했다. 특정 작품을 통해 플랫폼 유입을 도모하고, 이후 플랫폼 내 타 작품까지 그 관심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플랫폼의 프로모션이 가지는 의미는 플랫폼 유입 이후 과정에서 생긴다. 기다리면 무료, 작품의 가격 혹은 서비스 화폐의 가격 세일, 열람권 제공 등의 리워드 서비스와 같은 플랫폼의 프로모션을 통해 존재를 알리는 것이다. 한정된 지면과 수많은 작품들 사이, 프로모션에 힘입어 생명력을 가지는 작품도 있다. 그러나 형형색색의 다양한 썸네일 사이에서 그 존재감을 내보이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웹툰의 진정한 가치제안은 01화의 감상, 즉 체험을 수반해야 하는데 썸네일과 제목, 대사 한 줄이라는 플랫폼의 작품 표시 정보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마케팅의 필요성: 경각심
2개의 상품이 진열대에 놓여 있고, 이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을 가정한다. 성능과 가격은 비슷하다. 그런 경우, 선택의 기준이 되는 건 디자인이다. 이는 취향의 문제일 것이나, 시장 논리에 따른다면 선택받지 못한 상품은 진열대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문화예술 상품을 단지 생산성과 경제적 가치 창출 여부에 따라 평가하고 솎아낼 수 있을까. 마케팅의 가치 제안에서 웹툰이 제안할 수 있는 가치가 단지 독자의 취향에 따른 순응과 변화뿐 일까. 영국의 사회학자 러스킨(John Ruskin)은 인간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생존 유지의 필수적인 조건으로서의 유효 가치와 함께 ‘고유 가치(Intrinsic Value)’에 대해 말했다.
“고유가치란 삶을 유지하는 어떤 것이든 그것이 지닌 절대적인 힘이다. 어떤 주어진 성질과 무게를 지닌 하나의 물질은 그 속에 생명을 유지하는 힘을 지니고 있으며, 아름다움을 지닌 꽃 한 송이는 다양한 감각과 내부에 활력을 주고 생명력을 불러 넣는 어떤 힘을 지니고 있다. 인간이 이에 대해 거부하거나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 것은 꽃의 고유 가치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건 그들 나름의 힘은 그 속에 있고 그 특수한 힘은 그 밖에 어떤 곳에도 있지 않다.”
이는 웹툰의 존재 의미, 나아가 프로모션의 수혜와 거리가 있는 웹툰의 가치와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물론 경제적 측면에서 높은 성과를 올리고 있는 작품들이 고유 가치를 훼손하거나 제한한다고 단정지울 수는 없다. 흥미와 애정을 기반으로 한 생산성은 산업적 추구와 동시에 인간이 지향하는 가치를 내포한다. 그럼에도 편향성에 따른 질적 저하를 방지하며 산업적 가치 추구의 양립하는 사안에 대한 경각심은 필요하다. 지난 날의 악몽이 남긴 가르침을 상기해야 하는 시점이다.
웹툰 마케팅= 작품성+(특정 집단의 조명+활발한 독자 소통)
작품성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작품 본연의 재미와 가치를 갖지 못한 작품이라면 유입을 이루고 존재를 알리더라도 도태된다. 이는 웹툰의 주간 연재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와 더불어 재미와 의미를 포함한다. 애초 작가의 인지도가 높거나, 작품에 쏟아 붓는 막대한 자본, 가령 원고의 질적 향상을 위한 비용이나 대대적인 온오프라인 광고가 진행될 수 있다면 작품의 인지도 확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작품이 나오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 보통 완결 회차 다음으로 업로드 되는 후기에 담길 작품의 탄생 비화, 혹은 관련 사례 등을 내보이는 것이다. 수상 기록이나 누적 조회수 등의 정량적 접근보다 호소력 있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높은 화제성을 쟁취한다면 검증의 기회는 얻을 수 있으리라. 다만 이 또한 제한된다면 하기의 내용을 염두한 마케팅 구상이 요구된다.
먼저 독자들과의 소통이다. 블로그, 팟캐스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배포기사 등의 온라인 지면을 기반으로 활발하게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작가가 독자를 만나는 사건은 작품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 무엇보다도 인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꾸준히 작업을 진행하며, 런칭 전 과정을 공유하며 예비 독자와의 라포를 형성한다면 특정 작품의 작가이자, 그 자체로 일종의 브랜드가 된다. 작품 홍보의 일방향성을 근황 소통의 쌍방향성으로 치환하는 행위이다. 플랫폼, CP사 등에서 지원되는 프로젝트성 이벤트도 있으나, 개인 규모에서도 진행 가능하다는 측면에서도 무척 매력적이다.
그리고 특정 집단의 조명이다. 작가와 독자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소통이 가능한 SNS의 확산으로 영향력이 다소 줄어들긴 하였으나, 질적 성과에 대한 사회적 지표라는 측면에서 유의미한 역할을 한다. 특정 집단이란 산업의 방향성을 관리하고 계획하는, 관계자이면서도 관리자인 기관이나 연구 조직 등을 의미한다. 이들은 산업 네트워크 내 담론의 생산자이자 확산자로서 자리한다. 특히 작품 자체의 질에 주목한다는 측면에서 작품의 생명력 확보에 유의미한 역할을 가진다. 웹툰 산업에서 플랫폼이 가지는 막대한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오늘의 우리만화상”, “부천만화대상”은 작가와 독자를 잇는 또 다른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고 볼 수 있다. 작품의 장단기적 판매로 이어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완벽한 대응 방안과 해결책은 없다. 마케팅의 성공은 쏟은 시간과 열정에 비례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수많은 작품이 런칭되고 완결되지만 존재조차 모르는 작품이 태반인 현 시점에서 마케팅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더 많은 작품들이 조명되어야 한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균형 잡힌 성장과 변화의 유기적 상호 작용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웹툰 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출처
홍병선, 「문화예술 활동의 가치 생산성에 대한 인문학적 근거」, 『철학탐구』 제43집, 2016.
박세민, ‘왜 웹툰 플랫폼들은 오프라인 공고를 하기 시작했을까? (1) 네이버웹툰의 경우’, WEBIN OPONION. 2023.
성상민, ‘지워진 작가의 자리: 출판만화는 왜 몰락했을까’, 슬로우뉴스, 2017.
* 본 글은 만화규장각 > 웹진 > 기획기사에 수록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