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감에 따라 길어지는 수명, 혹은 줄어드는 수명
으레 해야 할 일을 해내는 걸 성공이라 칭하는 경우는 없다. 매일을 잘 보내는 것 이상으로 남들이 해내지 못한 성과들이 쌓여서 쟁취한 유형의 전리품이 있을 때, 비로소 성공이라는 수식이 가능하다. 경제적 성취는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이를 표현하는 지표는 간명하다. 백만과 천만, 그리고 억에서 조까지. 부의 축적으로 얻을 수 있는 윤택함을 떠올린다면 경제적 성취는 성공을 증명하는 극적인 수단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성공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고 너도 나도 인플루언서를 희망하면서 브랜딩에 몰두하고 드높은 꿈을 꾸는 요즘이다.
2021년에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되었고, 2023년 9월 ‘이숲’을 통해 한국에서 번역본이 나온 <그랑 비드>는 ‘존재감’을 잃게 되면 심장마비로 죽게 되는 어떤 세상에서 원래의 인생을 극적으로 바꾼, 존재감이 넘치는 ‘성공’한 삶을 쟁취한 ‘마넬 나에르’의 일대기이다.
쟁취와 만족 사이, 우린 그저 방향이 다를 뿐
수많은 종이에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다. 주인공 ‘마넬’은 종이의 이름을 2분씩 쳐다보는 일을 한다. <그랑 비드>에서 이름을 기억해 준다는 건 이름의 주인에게 생명력(존재감)을 부여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존재감이 곧 생명의 동력이자, 삶의 의미, 그리고 가치가 된 이곳에는 존재감을 의식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그랑 비드’라는 꿈같은 도피처가 있다. 책을 좋아하는 마넬은 ‘알리’라는 친구와 함께 그랑 비드로 가기를 꿈꾼다. 그러다 존재감을 잃고 몇 번이나 죽을 위기에 처하다,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셀럽의 반열에 오른다. 처음은 우연이었으나, 이후에는 실력으로 엄청난 존재감을 얻어 불사신이 된다.
하찮은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가 셀럽의 반열에 올라 성공을 꿈꿀 수 있게 된 나에르는 그랑 비드에 함께 가기로 했던 친구와 아래와 같은 대화를 나눈다.
“제발 그 존재감! 이미 있잖아. 충분히! 멍청한 광대 짓 좀 그만해!!”
“철 좀 들어, 알리. 그랑 비드는 루저들이나 하는 변명이야. 문제 회피하는 루저들. 똑똑히 봐. 네 존재감이 항상 얼마나 처참한지.”
서로 이어지는 대사는 아니며, 단지 여러 대사 중 일부이다. 하지만 이 대사들은 이렇게 읽히기도 한다.
“제발 그 돈! 이미 있잖아. 충분히! 멍청한 노예 짓 좀 그만해!!”
“철 좀 들어, 알리. (돈보다 사람, 돈보다 사랑 같은 말)은 루저들이나 하는 변명이야. 문제 회피하는 루저들. 똑똑히 봐. 네 사는 꼴이 항상 얼마나 처참한지.”
과연 못 가진 사람과 가진 사람이 온전히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무엇을 가졌느냐 가지지 못하였느냐 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앞서 서술했던 것처럼 돈이어도 좋고 지혜, 혹은 사과 한 알이어도 무방하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다른 생각을 하는 인간에게 그랑 비드의 허구성은 잔인하다. 만화적으로 과장이 섞여 있기도 하지만, 존재감이 곧 돈이라는 대입이 어색하지 않다는 측면에서 현실과 지독하게 닮아 있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다를 의미, 그러나 ‘우리’에게 남을 의미
<그랑 비드>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내세우면서 그 행동과 감정에 몰입하도록 하지만, 이는 어느 기점에서 힘을 잃게 된다. 건너가 본 적이 없는 세상의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랑 비드>에게 못 가진 사람과 가진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매개체로서의 당위성을 부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못 가진 자는 가진 자의 삶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한다. 가지기를 갈망한다면 가진 자의 동력을 확인하는 지침이 되어 주리라.
그렇다면 가진 자에게는? 그들이 가지지 못한,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필요가 없었던 영역에 대해 들여다보게 한다. 못 가졌지만 가지게 되었거나 가졌지만 잃은, 그래서 현재 못 가진 이들 모두에게 <그랑 비드>는 회고록이 될 것이다. 충실하게 상황에 반응하던 감정, 절박한 행동과 뜻 모를 조소는 우리 모두의 기록이다. 우린 언제나 가지지 못한 것을 갈망한다. 위로가, 도리어 상처가 될지도 모르지만 서로란 결국 우리로 묶이기에 <그랑 비드>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