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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겸 Jan 09. 2020

[독서후기] 누운 배

제2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이혁진 장편소설

한겨레출판


몇 개월 전 독서모임에서 토론한 책을 이제야 읽었다.

같이 참여했다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야기다.


경영자와 주인공의 입장에 몰입해서 읽었는데 고구마 100개는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이 있었다. 어떻게든 회사가 잘 되게 노력하는 몇몇 사람들이 노력이 빛을 발해서 회사가 정상으로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는데 결국 삼류 조선소가 될 수밖에 없는 결론이 안타까웠다.


누운 배는 넘어간 순간부터 부패한 회사를 상징하고 있었다.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일으킨 순간 표면은 구멍이 나고, 속은 부러지고 녹슬어서 썩어버린 회사와 같다.

회사가 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든 부패의 교과서와 같은 소설이다.



중국의 한국 조선소에서 200미터의 배가 넘어졌다.

사후 처리과정에서 유능한 보험 사정사 덕분에 자연재해로 처리되고 회사는 손해를 보지 않아도 될 상황이 되었다. 이후 배를 세우려는 회장의 욕심으로 보험금 전체를 받지 못하게 되고 사장이 교체된다.

새로운 황 사장은 노련한 조선소의 리더의 면모를 보이며 강력한 권한으로 혁신을 일으키고, 정상적인 회사로 갈 수 있었지만 회장의 심복들의 방해로 혁신은 실패한다.

황 사장은 결국 누운 배를 일으켰지만 물속에 담긴 배의 표면과 내부는 썩을 대로 썩어서 활용가치가 없다. 더불어 새로 만든 배가 침수되는 사고를 일으켜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그래도 회사는 계속 유지된다.



회사는 정상적인 사업을 할 2번의 기회가 있었다.

첫 번째는 보험처리를 제대로 하여,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개선해야 했다.

그리고, 새로운 황 사장이 혁신(이라고 하지만 정상적인 회사 운영)을 추진할 때 모든 권한을 줘서 혁신을 완성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리고....

사업을 하면서 돈이 좀 된다고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 눈을 돌리면 안 된다.

회사를 정상화시켜 내부적으로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고 난 이후, 여유자금으로 다른 일을 해야 한다. 그것도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일의 연장선상에 있는 일을 추진해야 성공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본다.


주인공의 독백처럼.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돈벌이가 되는지 안되는지 어떤 질문보다 가장 앞서야 할 질문은 바로 그것이다. 그 질문을 하고 어떤 답이든 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른 채 이대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는 말에 길들여가며 세월만 보내게 될 것이다. 결국 지금 저 배처럼 다 썩은 채 일어선 것도, 누운 것도 아닌 것은 내가 될 터였다.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모든 사람은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이 되어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P. 54

일은 아는 만큼 할 수 있는 것이고 내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려줄 수는 없었다. 먼저 알아야 했고 알고 난 다음 기준을 세워 앞을 치고 나가야 했다.


P. 65

모든 주체가 책임을 회피하고 이익과 자기 보전만 좇았다. 얻어야 할 것을 얻기만 한다면 사실 따위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누운 배라는, 자명하고 육중한 사실조차 그랬다. 사실은 사실로 판가름 나지 않는다. 사실을 판가름하는 것은 힘이다.


P. 99

최종 보고서라는 것 역시 그랬다. 어느 날 갑자기 배가 쓰러졌다. 거짓 같은 참이다. 그 배는 천재지변으로 쓰러졌다. 참 같은 거짓이다. 결국 모든 사람이 그렇게 믿도록 만들었고 전손처리로 가닥이 잡혔다. 거짓 같은 참이다. 천재지변으로 일어난 사고라는 중간 보고서가 나왔다. 참 같은 거짓이다. 이 모든 참 같은 거짓, 거짓 같은 참이 모조리 참이라고 믿어야 하는 것으로 자리 잡았고 곧 진짜 보상금이 계좌에 찍힐터였다.


P. 123

매일 똑같은 생활이 이어졌다. 나는 요령을 익혀 나갔다. 일이 쌓여도 쌓이지 않게 하는 요령. 잽싸게 해치워야 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분리하는 요령, 금방 해도 시간과 공을 많이 들이게 하는 요령, 일도 아닌 일을 일처럼 보이게 하는 요령, 그리고 적당히 틈만 보이면 혁신이라는 단어를 붙어 넣는 요령. 요령을 익히니 일이 편해지고 회사 생활이 평화로웠다.


P. 177  : 혁신은 과거를 바꾸는 것

현재를 견디고 헤쳐나가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과거, 되레 우리 발목을 잡고 억압하는 과거, 인습, 껍데기뿐인 규정과 규제, 타성, 그런 것들이야 말로 바꿀 수 있고 바꿔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현재를 돌파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들, 전통, 통찰, 지혜라고 부르는 것, 아니 더 쉽게 말해서 지금도 쓸모 있는 것,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것, 많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옳고 올바르다고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것만 과거에 남겨둬야 합니다.


P.294

어느 곳에나 바담풍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있었고, 그 사람들이 바퀴벌레처럼 끝까지 살아남았다. 이것이 세상이었다. 내가 살고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도망쳐도 되돌아오고 그만둬도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P. 311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결국 회사에서 제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세 가지인 것 같습니다. 어려워도 전망이 있거나 아니면 제대로 배워서 내 기술로 삼을 교육이 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연봉이라도 세야 할 것 같습니다.


P. 326

분명한 것은 일을 일로 하지 않은 회사는, 야합과 담합으로 협잡과 인습으로, 사람에게 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에 사람을 맞춰가며 시키는 회사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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