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코치 Apr 22. 2018

35편. 거절 당할 용기

직장생활백서

책상에 앉아 ‘내가 하는 일의 본질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명함에는 뚜렷하게 사업개발팀 팀장이라 적혀있기에 아이디어 발상이나 신사업 개발, 그리고 비즈니스 모델링과 같은 용어로 제 업무를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는 음성인식, 챗봇, 블록체인과 같은 최첨단(?) 용어들로 제가 하는 일을 설명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이런 방식의 정의는 시간과 상황, 즉 제가 어떤 일을 맡느냐와 어떤 아이템을 다루느냐에 따라 매번 제 일에 대한 정의가 달라지더군요. 그래서 좀 더 불변하며 본질적인 정의가 필요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바로 제 일은 ‘거절 당하지 않도록 애쓰는 일’이었습니다. 




거절 당하지 않도록 애쓴 일이 내 일이다 


기획이나 신사업 개발 업무를 왜 ‘거절 당하지 않도록 애쓰는 일’이라 정의했을까요? 물론 맡고 있는 직무나 전문용어로 적당히 포장할 수 있지만 제 일의 결과 중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이 바로 ‘거절 당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거절은 가까이에 있는 동료로부터 시작해서 직장 상사나 고객, 그리고 제휴업체에 이르기까지 매우 넓습니다. 거절의 대상이 넓은 만큼 거절의 내용이나 이유도 다양하죠.   



직장을 다니면서 수도 없이 거절을 당했지만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사례를 꼽자면 카카오톡 채팅으로 홈쇼핑 상품을 주문하는 ‘톡주문’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기 위해 제안하러 뛰어 다닐 때였습니다. ‘정말 탁월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에 너무 흥분한 나머지 동조를 기대하며 주위 동료들에게 들뜬 마음으로 아이디어를 설명했는데 막상 동료들은 ‘이것은 이래서 안되고, 저것은 저래서 문제가 있다. ‘라는 부정적 의견들만 쏟아내더군요. 거절로 인한 좌절의 시작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거절에 굴하지 않고 홈쇼핑 상품을 주문해본 적도 없는 제가 홈쇼핑 회사를 직접 찾아 다녔죠. 그리고 안면도 없는 홈쇼핑 담당자들을 만나 아이디어를 제안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담당자가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도 쉽지 않았고, 그들과 미팅을 잡는 것 조차 어려웠습니다. 막상 만나서 커피까지 사면서 톡주문에 대해 설명하면 ‘아이디어는 좋은데 저희는 당장 하기 어렵네요’라는 냉소 섞인 말로 거절당했죠.  


몇 번의 거절을 겪다 보니 규모가 작은 T커머스 업체까지 찾아 다녔습니다. 어떻게든 세상에 내놓고 싶다라는 간절함 때문에 홈페이지 주소만으로 T커머스 회사를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회사에 들어가 직원들에게 물어보면 분명 담당자를 만날 수 있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만으로 회사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건물 관리인이 제가 물건 팔러 온 줄 알고 의심의 눈초리를 주더군요. 또, 아직 설립되지 않는 회사를 홈페이지에 나온 주소만 보고 찾아갔다가 한여름 땡볕에서 3시간 동안 지도를 보면서 명동 거리를 헤맨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거절 아닌 거절을 당하다가 맨 마지막에 찾아갔던 GS홈쇼핑 담당자가 톡주문 도입을 추진했고 3년이 지난 지금은 대부분의 홈쇼핑이 카톡주문을 도입했으며 주문 비중이 10%가 넘는 중요한 채널로 자리잡았습니다. 또 운이 좋게 챗봇이 업계에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면서 각종 IT컨퍼런스에서 톡주문 개발과 운영 경험을 발표하는 연사로서 활동하는 기회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에서야 그때의 사업 개발 경험과 거절의 쓰라림을 미소 지으면서 회상할 수 있지만 거절의 쓰라림이 쉽게 지워지지 않을 만큼 참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아이디어는 100번의 제안에 99번은 거절당한다 


아이디어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저와 비슷한 상황을 많이 경험했을 것입니다.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설명했는데 정작 동료나 상사가 시큰둥하거나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별로인 것 같다고 말해버릴 때 답답하거나 서운해 했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부정적인 답변을 듣게 되면 불쾌한 기분마저 들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거나 소심한 복수로 상대방이 제안한 아이디어를 이런 저런 논리로 깎아 내리는 경우도 있죠. 이렇듯 무엇인가를 해보려 할 때 누구에게나 심리적으로 힘든 일이 바로 ‘거절 당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볼 때 제 일은 100번의 제안에서 1번을 받아들이도록 제안하는 것과 같습니다. 99번은 모두 부드럽거나 거칠게 거절 당하는 운명에 처하죠. 처음에는 제가 생각하는 아이디어들이 모두 받아들여질 것이라 착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것은 상대 탓이지 아이디어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죠. 그렇게 하는 게 스스로에게 위안이 되고 심리적으로 편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상대 탓이 아닌 미숙한 제안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면 의욕을 상실했을 것이기에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작동했던 것 같습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만약 3년 전 톡주문 아이디어를 거절 당하는 것이 두려워 제안하러 다니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만약 홈쇼핑 담당자들의 연속된 거절에 상대 탓 하며 포기를 했다면 그 이후에도 다른 아이디어를 실행할 수 있었을까? 그런 면에서 볼 때 수 많은 거절에도 불구하고 제안을 멈추지 않았기에 ‘거절 당하는 것을 받아들일 용기’가 생겼고, 아이디어의 본질적 가치는 아이디어 자체의 탁월함이 아닌 ‘거절 당할 수 있는 용기 속에서 실행하는 힘’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죠. 그래서 6년 째 이어온 대학생멘토링 모임에서 꼰대처럼 학생들에게 말합니다. 긴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젊음이 갖춰야 할 준비물은 바로 ‘거절 당할 용기’이며 거절에 굴하지 말고 끊임없이 제안해보라고 말입니다.  




거절이라는 결과가 아닌 거절의 이유에 집중하라 


직장생활이 아니라도 거절의 현장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 흔한 현장 중에 하나가 전단지를 나눠주는 곳이죠. 지하철 입구, 출구, 회사 가는 길, 점심 시간, 퇴근 길에 우린 수 없이 많은 전단지를 받습니다. 이제 막 개업한 헬스클럽에서 식당까지, 젊은 학생부터 나이든 어르신까지 다양한 분들이 전단지라는 제안을 던지죠. 우린 대화를 나누다가, 음악을 듣다가, 멍 때리다가 갑작스럽게 그런 제안을 받게 되고 싸늘하게 거절하거나 어쩔 수 없이 전단지를 받습니다.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흔한 제안과 거절의 현장이죠. 



직장인이 하루 동안 전단지를 모두 받는다면 아마도 서른 장 이상이 될 것입니다. 대다수의 전단지는 제대로 읽혀지지 않는 채 쓰레기통이나 길거리에 버려집니다. 받는 이들 입장에서는 받은 전단지를 어딘가에 버려야 하기 때문에 전단지 자체를 받으려 하지 않죠. 이렇듯 전단지를 제안하는 입장과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입장 사이에 큰 간극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재미난 점은 제안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전단지를 뿌리는 것과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이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안하는 수 많은 아이디어도 어쩌면 길거리에 뿌려지는 전단지와 같은 처지라는 것이죠.  



아이디어와 전단지가 닮았다고 하는 것은 바로 다음의 세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우선 거절의 원인보다 제안의 결과에 더 신경을 쓴다는 점입니다. 전단지를 받는 입장에서야 ‘아휴 귀찮아’라고 모른 체 지나갈 수 있지만 전단지를 나눠주는 입장에서는 하나의 제안이기에 그 제안이 거절되면 심리적으로 좋지 않을 것입니다. 그 분은 꼭 뿌려야 할 전단지가 있고 그것이 개인 수입이나 사업 생존에 영향을 주겠죠. 그런데 그 분들의 절박함은 거절 현장에서 큰 영향을 발휘하진 못합니다. 왜냐하면 거절의 원인을 자신의 범위로 국한할 때 왜 거절하는지 그 이유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아이디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사람이 거절의 결과에만 신경 쓰게 되면 거절의 이유가 보이지 않게 되고 심리적으로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거절당한다 하더라도 전단지는 여전히 뿌려질 것입니다. 장사가 잘 되지 않거나 이제 갓 창업했다면 전단지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기 때문이죠. 가게 주인 입장에서는 전단지를 100장을 뿌려 전단지로 인해 단 한 명의 손님이라도 온다면 그것은 전단지의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99장을 뿌리다가 받은 거절은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죠.  



아이디어 제안도 마찬가지입니다. 100개의 아이디어에서 단 1개의 아이디어가 채택되어도 아이디어 제안 자체는 그것만으로도 높은 가치가 있습니다. 세상은 끊임 없이 문제가 발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루를 보내는 비즈니스 현장에서 아이디어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조직은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치 전단지가 계속 필요한 것처럼요.  



우리의 제안도 어쩌면 99장의 거절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막상 제안을 할 때 늘 거절 당할까 두려워하죠. 이걸로 충분할까? 할 수 있을까? 거절당하면 어쩌지? 쪽 팔면 어쩌지? 라는 지레 짐작들이 마음 가득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제안하는 것을 두려워하죠. 그리고 제안과 실행 대신 침묵과 회피하게 됩니다. 




거절로 상처받을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자 


긴 인생을 사는 동안 거절 당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면 ‘거절 당할 용기’를 애써 키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직장 생활에서 끊임없이 제안해야 하고 작은 장사를 하더라도 손님에게 제안을 해야 합니다. 그때는 늘 거절을 당하는 순간을 직면해야 하는 것이죠. 이왕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정면으로 부딪쳐보는 것이 어떨까요? 지금 이 자리에서 다음 무대를 위해 열심히 연습하는 것은 어떨까요? 



거절 당하면 정말 큰일이 나는 것일까? 하늘이 무너질까? 내가 더 이상 일어서지 못할까? 이런 생각들을 정면으로 부딪쳐 보는 것입니다. 일상 생활 속에서 우리가 종이 전단지를 받는 것처럼 여러분도 아이디어 전단지를 뿌려보시길 바랍니다. 정말 큰일이 나는지 두 눈으로 확인해보세요. 절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저도 거절당하는 일을 오래 하다 보니 거절에 내성이 생기게 되더군요. 그래서 동료든 고객이든 거절을 해도 좀처럼 상처받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 일을 오랫동안 했던 장점이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그런 거절의 경험 속에서 알게 된 중요한 진실이 있습니다. 바로 ‘거절 당해도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사실을 좀 더 빨리 알았다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그걸 좀 더 빨리 알았다면 이십대 청춘 시절에 짝사랑 고백도 제대로 했을 것이고,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해보고 싶은 일을 신나게 해보았을 테고, 인생을 바꿀 새로운 도전도 과감하게 시도했겠죠. 아마도 거절의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가 더 위축되고 어쩌면 다시 못 올 기회를 놓쳐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은 거절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생각만하고 거절이 두려워 안타깝게 흘려 보낸 제안들이 없는지요? 그런 아쉬움이 남는다면 작은 것부터 제안해보세요. 거절을 당해도 결국 성장하는 것은 바로 자신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34편. 직장생활을 변화시키는 노트메모 습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