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코치 Oct 15. 2015

2편: 파워포인트를 만들기전에 종이에 밑그림을 그리세요

2편: 파워포인트를 만들기전에 종이에 밑그림을 그리세요

팀장님이 기획서를 작성하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이번에 멋진 보고서를만들어서 내 능력을 보여줘야지’하는 마음 가짐으로 PC에앞에 앉습니다. 파워포인트 슬라이드에 멋진 배경, 고급스러운폰트, 거기에 멋진 그림까지 곁들인 완벽한 기획서를 만들어서 팀장님에게 자랑스럽게 보여드립니다. 팀장님이 보고서를 보는 동안 내심 ‘이야~ 잘 만들었네.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어!’라는 말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왠걸 팀장님은 얼굴을 찌 뿌리더니 ‘보고서가 이게 뭐야!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잖아. 다시 작성해’ 하며 보고서를 던져버립니다. ‘왜 저러지?’하는 답답한 마음에 보고서의 내용에 대해 이것 저것 설명을 더해보지만 여전히 팀장님은 싸늘한 반응입니다. 내가 볼 땐 정말 완벽한 기획서인데 ‘팀장님은 왜 저런 반응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무엇이 잘못 된 것일까요?

 


PPT, 초보일수록 슬라이드에 집착한다


초보자들은 기획서를 만들 때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부터 먼저 만듭니다. ‘내용은일단 채워야 하지 않을까?’라는 조급함에 슬라이드에 여기 저기서 복사해둔 자료들로 슬라이드를 가득 채우죠. 일단 채운 후 정리하는 방식을 취하게 됩니다. 물론 슬라이드부터만들 경우 문서를 빨리 만들 수 있다라는 장점도 있지만 직장상사에게 ‘제가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라는 것을 암시하는 무언의 신호일 수도 있겠습니다. 


필자는 회사 업무 상 다양한 보고서나 기획서를 접하고 있습니다. 간결하고명확한 보고서를 만들 수 있는 동료들의 공통점을 뽑는다면 바로 슬라이드를 만들기 전에 먼저 노트에 그려본다는 것입니다. 머리 속의 논리를 먼저 종이에 표현해보고 슬라이드로 만든다는 것이죠. 제경험 상으로는 미리 노트에 그리는 사람 치고 기획서를 어설프게 만드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슬라이드부터 먼저 만들 때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을 잘 알기 때문이죠. 



PPT, 한번 만들어지면 왜 바꾸기 어려운 것일까


슬라이드를 만든 후 그것을 바꾸기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를 뽑는다면 바로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라는 ‘빈 백지의 압박감’ 때문일 것입니다.‘텅 비어있는 이 슬라이드에 무언가를 채워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이죠. 왜냐하면 좋은 기획서를 만들기 위한 시간과 논리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자료는 언제나 그렇듯 늘 충분하지 않기때문입니다. 


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해 초보자들이 저지르는 실수는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복사와 붙여넣기”의 유혹입니다. 슬라이드에출처를 알 수 없는 자료를 빼곡히 채워 넣으면서 뭔가 내용이 채워져 가고 있음을 느끼고 안심을 하게 됩니다. 적당한분량이 되면 슬라이드를 보기 좋게 꾸미게 되죠. 배경색이나 컬러, 폰트, 사진까지.. 좀 더 있어 보이도록 슬라이드와 애니메이션 효과를 넣습니다. 


‘먼저 많은 양의 내용을 채워 넣은 다음에 핵심 내용으로 줄여나가면된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 PPT는 다른 문서 양식에 비해 줄이는 작업이 용이하지 않습니다. 슬라이드대부분은 페이지 내에 구조적인 형식을 갖추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즉,슬라이드의 상하나 좌우 영역을 구역으로 나눈 후 타이틀과 내용을 넣게 됩니다. 이때, 슬라이드 내 일부 영역이 중복되어 삭제해야 할 경우 그 공간이 텅 비어버리기 때문에 문서가 대칭을 잃게 됩니다. 결국 또 다른 내용으로 빈 공간을 채우려 들게 됩니다.


이렇게 문서를 꾸미는 과정에서 특정 슬라이드에는 논리 전개와 무관한 내용이 과다하게 추가되고, 어떤 슬라이드에는 중복된 내용이 나오기도 합니다. 반대로, 내용이 너무 많다 보니 정작 중요한 항목이나 내용이 누락될 수도 있습니다.


초보자들은 자료를 수집하여 내용을 구성하는 과정은 거의 없고 내용을 채우고 슬라이드를 꾸미는데 대부분의 시간을할애합니다. 그리고 그런 꾸밈의 시간에 정성을 많이 들일 수록 PPT의슬라이드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러니 슬라이드를 삭제하거나 특정 내용을 과감하게 지워버리지 못하게 됩니다. 



PPT, ‘복사해서 붙여넣기’라는 은밀한 유혹


파워포인트에서 “복사해서 붙여넣기”를하다가 문서기 이상해지는 사례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강모대리가 파워포인트를 수정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강대리가 만들고 있던 파워포인트 문서는 제품의 AS 프로세스를 그리는것이었습니다. 제품 하자보수라는 A/S 프로세스의 경우 각단계별 절차와 담당 조직을 표시하면 되는 문서이기에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는 업무프로세스인데, 강대리가고민을 하고 있었던 부분은 바로 제품에서 유상 비용이 발생할 때 청구 프로세스를 그려 넣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강대리가 작성한 문서는 2장이었습니다. 첫 장에는 제품의 하자보수 프로세스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해당 업무를모르는 제가 봐도 이해되는 이상할 게 없는 일반적인 제품 하자 보수 프로세스였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장에 있었습니다. 페이지 상단에는 앞서 페이지에서 동일한 제품 하자보수 프로세스가 그려져 있었는데, 아래에는 유상비용 발생 여부를 표시하는 마름모꼴 판단기호 도형이 표시되어 있고 유상 비용이 발생 시 어떻게청구를 하게 되는지 프로세스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즉, 유상비용이 발생할 경우 판단 기호의 아래 부분으로 이동하여 비용 청구와 정산을 어떻게 하게 되는지를 그려 놓은 것이죠. 이해를 돕기 위해 강대리가 처음 작성했던 문서를 다시 그려보면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일본어로 되어 있어서 필자가 임의로 문서를 다시 만들었습니다).



얼핏 보면 문제 없어 보이는 듯 한 이 그림을 두고서 강대리는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유상 청구 프로세스는 이렇게 표시되는데, 무상일 경우는 어떻게분기시켜서 표현해야 하지?”라는 부분에서 막혀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제가 그 업무를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업무 프로세스를 이해도 할 겸 아래와 같이 그림을 그리면서 강대리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설명을 드릴 때 제가 재차 확인하는 글자도 보이고, 어떤부분은 필요 없는 영역이라 생각되어 삭제한 부분도 보일 것입니다. 



노트 위에 파워포인트 화면을 재구성하고 재배치를 하다보니 “왜 수리업무 프로세스와 유상 청구 프로세스를 한 영역 안에 왜 모두 표시 하려 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수리 업무 프로세스”와“유상청구 프로세스”를 구분해서 다시 그려보았습니다. 상하의 영역을 하자보수와 유상 청구로 나누고 좌우 영역에는 그것을 담당하는 주체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강대리는 그 그림을 보고서야 ‘아하 차장님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였네요!’라고 무릎을 탁 치며 바로 슬라이드를 수정했습니다. 그렇게 수정된슬라이드가 아래의 그림입니다.




강대리가 슬라이드 수정에 애를 먹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2페이지를그리기 위해 1페이지의 내용을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넣기”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제품 하자 프로세스를, 다른 하나는 유상청구 프로세스를 그렸지만 유상청구 프로세스도 각 조직이 제품 하자 프로세스 조직과 동일하다보니 제품 하자 프로세스 전체를 복사해서 붙여넣은 것이죠. 그러다보니 1장으로 표현 될 것을 2장으로 표현하는 실수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강대리처럼 파워포인트 슬라이드에 매몰되다 보면 빨리 만들기 위해 “복사해서붙여넣기”를 이용하게 되고 그런 습관은 문서를 다시 살펴볼 때 무엇이 문제가 있는지 제대로 찾아내기어렵게 만듭니다. 그래서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제대로 만들려면 우선 익숙한 습관부터 바꿔야 합니다. 쉽게 복사해서 붙여 넣을 수 없는 종이 그림을 활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PPT, 슬라이드를 잊고 종이 낙서를 하자


필자 또한 돌아보니 3년 전까지만 해도 노트북과 스마트폰 중심으로메모와 정리를 했습니다. 회의록을 작성할 때도 노트북으로 정리할 경우 시간도 절약되더군요. 그러다보니 파워포인트 보고서를 만들 때도 슬라이드를 바로 띄워 문서를 재빠르게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 회의록과 달리 보고서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서 작업 속도는 빨라졌지만 내용이 나아지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나중요한 기획서나 보고서의 경우 오로지 작성자인 나만의 관점에서 문서를 만들었고, 그것을 읽는 이에게납득을 강요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더군요. 


그러다가 문득 펜과 노트를 다시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업무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 주더군요. 특히나 보고서나 기획서를 만드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졸업한지 오래될수록 노트에 메모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을 겁니다. 일단보고서를 만들기 전에 PC를 잠시 멀리해보세요. 그리고 노트에내용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세요. 예쁜 글씨체를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신경 쓰지 말고 생각이 흐르는대로 글자를 써보고 그림을 그려봅니다. 



노트 필기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지저분한 글씨체 때문에 종이에 적는 게 더 짜증이 날 수도 있을 겁니다. 필자 또한 오랜만에 펜을 잡았을 때는 한동안 적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마음 편하게 낙서한다고 생각하니 종이에 먼저 써보는 습관이 저절로 베어지더군요. 여러분들도 이런 절차를따라서 해보세요. 



1단계: 생각을 무작정확장하기


l  틀이나 순서를생각하지 말고 생각나는 대로 내용을 적어봅니다. 

l  핵심이 되는키워드나 핵심 문장만 별도로 표시를 합니다. 

l  키워드 간의관계를 선으로 표시하고 메모를 적습니다. 순서를 표시하는 것도 좋겠죠.



2단계: 내용을 수렴시키기

l  이야기의전개 순서대로 문장으로 옮겨봅니다. 각 슬라이드의 핵심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l  문장의 계층구조를 만듭니다. 타이틀, 서브 타이틀, 내용으로 구분이 될 것입니다.

l  어떤 내용이포함되어야 하며 표현 방법을 적습니다. 



3단계: 문서에 옮겨 담기

l  거버넌스메시지나 타이틀 처럼 문장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미리 써봅니다.

l  콘텐츠가들어가는 영역은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l  프리뷰나카메라 촬영으로 이미지 전환 후 PPT에 삽입하여 순차적으로 정리합니다.



이 과정을 좀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면 ‘도해사고력’이나 ‘ 매일 매일 일러스트 트레이닝’ 같은 책을 참조하시는 것도 좋습니다 활용도가 높은 만년필과 저렴한 노트 한 권쯤은 항상 휴대하는 것도 좋습니다. 저는 이렇게 3개의 라미펜을 활용합니다. 가격 대비 글자가 잘 써져서 몇 년째 애용하고 있습니다. 



종이에 낙서하듯 적다 보면 어떻게 논리를 전개할 수 있는지 나름대로 정리가 될 뿐 만 아니라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기도합니다. 특히 문서를 읽는 사람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이죠. 데이터의 분석과 맥락을 찾아내는 것은 스마트 기기의 몫이 아닌 사람의 몫입니다.


---------------------------------------------------------------------------------------------------


필자는 LG그룹 블로그의 필진으로서 본 게시물은 LG블로그에 게시된 글입니다.  


글 ㅣ 강석태 차장 ㅣ LG CNS 블로거 [‘아이디어 기획의 정석’ 저자(타래 출판)] 




매거진의 이전글 1편: 피곤하고, 피하고 싶고, 초보 티 나는PP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