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엔 시쭈밖에 안 보이는 이유 2
1992년 12월 10일부터 1993년 2월 말까지 3개월이 조금 못 되는 대학원 연구실 생활을 잠시 중단하고, 기본군사교육을 마친 후 사단의무대 방역장교로 양평에 배치되었다. 방역장교가 하는 일에는 식품검사, 수질검사, 위생점검, 방역, 예방접종관리 등이 있었다. 식품검사는 매일 아침 7시부터 시작하고, 수질검사 및 위생점검은 분기 1회, 방역은 여름철 모기 및 파리가 있는 시기, 예방접종관리는 필요한 시기에 하게 되어있었다.
그중 방역은 사단사령부를 비롯하여 전체지역의 연막소독을 하는 것이었다. 하려고 한다면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해야 하는 일이고, 대충 한다면 한가한 시간에 불연소된 흰 연기를 부아앙~ 소리를 내면서 뿜으며 다니기만 해도 되었다. 더운 여름에는 낮에는 연막소독을 하더라도 바로 위로 날아가 버리므로, 대기가 안정된 상태인 아침과 저녁에 주로 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남들이 일하지 않는 시간에 일하고, 남들이 일하는 시간에 쉬고 있으면, 방역장교는 맨날 '농땡이 친다'는 인상을 주었고, 같이 일하는 계원들은 '힘들어 죽겠다'는 볼멘소리를 했다.
그날도 오전 연막소독을 마치고 행정실에 들어왔더니 행정계원이 말을 전한다. '반장님, 사단사령부 작전참모님이 전화 달라고 하십니다.' '작전참모? 인사참모 아니고?' 사단의무대는 인사참모와 관련된 일이라 작전참모가 나를 찾을 일이 없을 텐데 의아한 일이었다. 여하튼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눌렀다.
'여보세요?'
'충성, 사단의무대 방역반장 이 중위입니다.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아, 방역장교님? 한 가지 부탁드릴 일이 있는데. 안 바쁘시면 저의 집에 좀 가봐 주실 수 있을까요?'
'네? 참모관사를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네, 우리 집 개를 좀 봐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알겠습니다. 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연막소독기가 장착된 방역차를 타고 운전병과 함께 참모관사로 향했다. 벨을 누르니 사모님께서 문을 열어주시면서 한쪽 구석에 있는 시쭈를 보여주신다.
'얘가 아침에 나갔다 왔는데... 밖에서 큰 개소리가 나더니 애가 뛰어 들어와서는 저러고 있으면서 움직이지를 않아요. 그런데 다리에 상처가 있는 것 같은데. 무서워서 못 보겠어요. 한 번만 봐주세요.'
'네, 잠시만요. 제가 한 번 보겠습니다. 잠시 이렇게 잡아주시겠습니까?'
확인해 보니 뒷다리 안쪽 허벅지에 기억자로 피부가 5 cm * 5 cm 크기로 찢어져있었다. 출혈은 거의 없고 피부만 찢어진 것을 보니 철조망 같은 구조물에 걸려서 찢어진 듯해 보였다.
'다행히도 피부만 찢어졌네요. 이것은 봉합을 해야 하는데 지금 의무대에는 개를 마취할 약이 없어서요. 사모님, 양평시내에 있는 동물병원에 가셔서 봉합을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제가 갔다 올게요.'
다음 날 아침, 식품검사를 마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참모관사를 다시 들렀다. 당시 양평시내에는 동물병원이 2개 있었으나, 모두 대동물을 진료하시는 수의사분들이었기 때문이다. 벨을 누르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확인해 본 상처에는 굵은 장사 (catgut)로 수평매트리스 봉합을 1번씩 해 놓은 것이었다.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일단 봉합을 했으니 출혈이 없는 피부상처가 잘 붙으면 되기에 두고 보기로 했다.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작전참모 사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애가 상처를 핥아서 봉합한 부분이 풀어졌어요. 어떡하죠?'
'네, 제가 가서 한 번 보겠습니다. 곧 가겠습니다.'
작전참모 관사에 도착해서 확인해 보니, 굵은 장사로 수평방향으로 한 번씩 해놓았던 봉합이 모두 풀려있었다. 당시에는 상처를 핥지 못하도록 하는 넥카라 (Elizabethan collar)가 일반화되어있지 않던 시절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사모님, 제가 의무대에 가서 처치해 보겠습니다. 제가 잠시 데려가도 될까요?'
'아이고, 그래도 괜찮겠어요? 저야 감사하죠.'
우선, 양평시내에 있는 동물병원에 들렀다. 원장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마취제를 구매하였다. 지금은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되어 동물병원에서 구매할 수 없으나, 당시에는 수의사끼리 필요한 진료물품을 나누어 쓰기도 했다. 의무대로 돌아오면서 치료방법과 처치과정을 시뮬레이션해 보았다.
'수술팩이 하나 필요하고, 마취한 후에 털 깎고, 소독하고, 이물제거하고, 봉합하면 되겠다.'
의무대에 도착해서는 선임의무병에게 한 사람만 도와달라고 했다. 그리고 일반외과 군의관에게 일반수술팩을 하나 부탁했다. 그러자 '아니, 개 봉합하는데 웬 사람 수술팩을 달래?' '무슨 말슴이세요~. 사람이랑 똑같아요. 깨끗하게 사용하고 드릴 테니 하나만 빌려주세요.' 당시엔 그랬다. 그래도 궁금한지 이리저리 옆에서 지켜보면서 신기해하고 있었다.
상처로 건강상태가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으니 마취제를 근육주사하고 옆으로 뉘었다. 다행히도 상처가 곪거나 감염이 심하지는 않았다. 주위 털을 정리하여 깎고, 상처 내에 있는 털을 제거하고, 소독액으로 소독하였다. 피부를 원래의 위치로 가져가보니 약간 피부가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당겨서 봉합하면 가능할 듯하였다. 일회용 봉합사를 쓰려고 하니 일반외과 군의관이 한 마디 또 거든다. '이거 비싼 건데~.' '아이고, 사람이나 개나 똑같다니까요~.' 피부를 단순결절봉합 (한 번씩 봉합하는 방법)으로 봉합하니 깔끔해졌다. 핥아도 풀려서 다시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시쭈는 잠시 후에 마취에서도 잘 회복했다.
마취에서 깬 시쭈를 데리고 참모관사로 향했다. 사모님의 얼굴에 있던 근심이 환하게 바뀌었다.
'아이고, 다행이에요. 정말 감사해요.'
'네, 봉합은 잘 됐고요. 핥지 않게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맛있는 것도 좀 주시고요. 일주일 뒤에 상처 한 번 확인하고 상처가 잘 아물었으면 발사하겠습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혹시 중간에 필요하시면 연락 주세요.'
상처는 잘 아물었고 봉합사를 제거했다.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꼬리를 흔드는 녀석을 뒤로하고 인사를 하는데 사모님이 종이가방을 하나 주신다. '중위님, 너무 감사해요. 제 성의니까 받아주세요.' '어이쿠, 감사합니다. 할 일을 했을 뿐인데...' FILA 티셔츠였다.
내가 만난 두 번째 시쭈였다. 그리고 내가 혼자 집도한 첫 번째 수술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두 번째 시쭈를 두고 제대했다. 1995년 6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