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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시쭈와의 만남

내 눈엔 시쭈밖에 안 보이는 이유 1

by 돌팔이오

1992년 12월 10일, 대학원 합격자발표가 있던 날. 4학년 2학기 기말고사를 마치고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있던 나를 오**이가 깨웠다. '대학원 합격자 발표 났더라. 가서 확인해 봐.' 합격자 발표를 보고 교수님과 대학원 선배들에게 인사를 하러 갔더니 대학원 선배 왈, '그래, 축하해. 오늘부터 나와'라는 말로 나의 대학원 생활은 시작되었다.


아침 8시부터 일과가 시작되어 낮에는 진료와 수술이 있고, 이런저런 뒷정리를 마치고 저녁이 되어야 개인적인 공부를 할 수 있었다. 4학년 2학기 학부생이 졸업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1993년 1월에 예정된 수의사국가시험은 그 어떤 공부보다 발등의 불이었다. 게다가 낮에는 몸을 움직였고 저녁식사를 하면서 '오늘 하루 고생했다'며 닭볶음탕에 소주를 곁들이고 나서 벌게진 얼굴로 연구실로 돌아와 책상에 앉아 졸다보면 어느새 새벽이었다.


그렇게 제대로 시험준비를 하지 못하다가 1주일의 허가를 얻어 다른 곳에서 공부를 한 후, 시험을 치르고 온 연구실에는 한쪽 뒷다리를 수술한 시쭈가 앉아있었다. 교통사고로 내원하였는데 뒷다리 수술비용 부담으로 보호자가 포기하였고 대학원 선배들이 수술한 후, 연구실에서 수술 후 관리를 해주고 있었다. 문제는 밤에는 연구실에 난방이 되지 않다 보니 수술을 하기 위해 한쪽 다리의 털을 모두 깎아버린 시쭈를 그냥 둘 수 없었다. 한 대학원 선배가 자신의 품에 넣어 집에 데려갔다가 다음날 다시 데려오기를 반복하면서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빈 연구실을 지키다가 누군가 들어오면 꼬리를 흔들며 서툰 발걸음을 옮기던 녀석은 모두의 귀염둥이가 되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안아주고, 무릎에 앉혀서 토닥여주다가 녀석의 다리에 털이 조금 나기 시작하면서 입양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녀석은 귀엽고 착한 시쭈였던 덕에 금방 선배 지인에게 입양되어 떠났다. 내 생애 첫 번째 시쭈와의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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