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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노라면

어느 졸업생의 이메일

2020-12-23 (수), 2025-07-02 (수)

by 돌팔이오

연말이라 점심 먹는 것도 잊고 밀린 일을 속도전으로 해결하고 있는데 익숙한 이름으로부터 이메일이 도착했다. 오~? 오랫만인데...



보낸사람: "임**" <k*b**i*@snu.ac.kr>

받는사람: 디스달 <inhyunglee@snu.ac.kr>

받은날짜 : 2020-12-23 (수) 12:33:41


제목 : 안녕하세요 교수님


안녕하세요 교수님~


12학번 수의대 졸업생 임**입니다.


졸업하고 바로 미국와서 학교 다니고 임상수의사로 일 시작한지 어느덧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네요.


일하다가 가끔씩 강의노트랑 책 찾아볼 때면 학교 다닐 때 생각도 나고 그때가 그립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특히 수술 전 프로포폴 투여할 때 자꾸 교수님 수업시간의 한 장면이 떠오르면서 교수님 음성지원이 되어요... (왜 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너무 빠르게 투여하지 말라고 강조 여러 번 하셔서 그런거같기도하구요...). 카테터 잡을 때마다 너무 테이핑 세게 하지 말라고 발이 부어서 왕발된다고 하신것도 생각나구요... ㅎㅎ


여러모로 학교다닐 교수님께서 잘 지도해주신 덕분에 큰 무리없이 여기까지 온것같습니다.


오랜만에 안부 여쭙고 싶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연말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임** 올림


얼굴이 하얗고 말할 때 톤이 높았던 여학생이다. 이메일을 읽으면서 그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무엇보다 빠른 답변 ! 타다닥...



임 ** 닥터님께,


메일 감사합니다.


오랫만에 연락이 되었네요.

그러게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나갔네요.

미국에서 잘 적응하고 계신 것이지요? 2년이면 이제 완벽하게 적응해서 제 실력을 발휘하고 계시겠군요.


수업에서는 늘 노파심에 반복해서 얘기하게 되죠.

그런 일들이 수의사로 일할 때 기억에 남아서 떠오르면 다행이구요.

요즘은 IT 기술의 발달로 음성지원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죠? ㅎㅎ


제가 잘 지도한 것이 아니라 학생분들이 잘 하신 결과이죠.

우리대학교를 졸업하는 분들은 다 능력이 출중하시니까요.


오랫만에 연락되어 반갑고, 뿌듯하네요.

이전에 졸업한 여학생이 제주도 아라동에 개업을 해서 지난 달 제주도에 갔다가 잠시 얼굴만 보고 왔습니다.

학부 4학년 때 애기가 있던 여학생이었는데 지금은 자녀가 3명이라고 합니다.

나아라동물병원. 나름 제주도에서 잘 운영되는 병원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졸업생이 잘 하고 있는 것을 보니 딸 시집보낸 아버지같은 느낌이랄까 뭉클했어요.

어느 졸업생이든 건강하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잘 하고 있으면 저도 기분이 저절로 좋아져요.


코로나로 여러가지 상황이 좋지 않지만, 건강 유지하시고, 이후에 반갑게 만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이 인형 드림.




궁금한 것도 많고 할 말도 많지만, 간단하게 안부를 묻고 마무리했다. 학교에 있으면서 늘 가르친 학생들이 졸업 후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잘 찾아가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가끔 이렇게라도 연락이 되면 흐믓해진다. 다들 코로나로 힘든 상황이지만 나에게는 소소한 행복이다. 현재 배우고 있는 학생들도 다시 한 번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게 된다.




2025년 7월 02일, 아침 이메일을 확인하니 미국에서 온 메일이 눈에 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12학번 졸업생 임**입니다. 잘 지내시죠?


작년에 한국에 갔을 때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또 근처에서 짜장면까지 사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때 먹은 짜장면이 정말 잊히지 않을 만큼 맛있었습니다. 제가 워싱턴 DC 근처에 살고 있는데, 이 지역에는 한국인이 많지만 짜장면만큼은 한국에서 먹은 그 맛이 잘 안 나더라구요. 그래서인지 여기서 친해진 동문 친구들도 가장 그리운 음식으로 짜장면을 꼽을 정도예요. 그래서 저는 교수님이 작년에 한국갔을 때 짜장면 사주셨다고 자랑했습니다.


저는 이번 여름부터 Texas A&M에서 실험동물의학 레지던시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또 열심히 해보려 합니다. 짧게나마 인사드리고 싶어 메일 드립니다.


더운 여름 건강히 보내시고, 항상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임** 드림



맞다. 작년에 한국에 들어왔다고 연락이 와서 얼굴을 보자고 만났다. 미국에서 사는 이야기와 미래의 이야기를 하면서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했더니 짜장면을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오랫만에 같이 먹었던 기억이 난다.



임 ** 선생께,


메일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시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더군다나 College Station에서 실험동물 레지던시를 시작하신다니 새로운 시작이군요.


저는 College Station에서 3시간 거리에 있는 Galveston에서 Post-Doc을 약 3년간 했습니다.


Texas는 덥지만 여러가지 면에서 살기에는 좋았던 것 같습니다.


건강하게 새롭게 일하시고 Galveston에서 해수욕이나 blue crab 낚시도 경험해보시기 바랍니다.




졸업한 학생들의 새로운 시작은 나의 꿈의 시작이다. 내가 그려본 미래를 학생들이 실현하고 있다. 이것이 교육의 효과일 것이다. 사회는 그렇게 발전하는 것이고, 시간이 흐로면서 역사는 기록되는 것이다.



바로 답장이 왔다.


교수님,


Galveston에 계셨었군요! College Station에 계신 분들이 휴가가기 좋은 곳이라고 추천하던데 꼭 한번 가보겠습니다. 학부시절에 교수님이 학부생들에게 읽게 하셨던 '장미와 찔레'라는 책, 돌이켜보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런 배움이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늘 감사드리고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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