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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팔이오 Oct 09. 2020

6.4.3.2. '이러다가 죽을 수 있겠다' 싶었다.

2019년 10월 22일, 평창에서 실습을 마치고

  사건은 2박 3일로 진행된 실습에서 이틀째 오후 실습을 마치고 발생했다.  학생들 숫자가 40명 이상이었기에 조를 나누어 절반은 실습장에서, 나머지 절반은 우사 안에서 실습을 진행했다.  내가 담당한 실습을 마무리하고 학생들을 우사 밖으로 내보내면서 소들에게는 맛있는 저녁식사 (건초)를 주기 시작했다.  우사에 있던 소들은 누가 말하기도 전에 자신들이 있는 칸에서 먹이를 먹기 위해 사료조 (먹이통)로 이동하여 머리를 내밀고 먹기 시작했다.


  이때 실습장에서도 실습을 마친 소들이 나오면서 통로를 거쳐 우사 안으로 들어오려고 걸어오고 있었다.  실습을 마친 소들은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친 장병들처럼 신나게 경쾌한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때 마침 우사 내에서 마지막 뒷정리가 진행 중이었기에 나는 두 팔을 벌려 폭이 2미터 정도가 되는 통로를 막아섰다.  갑자기 막아선 나를 보고 체중이 800 kg이 넘는 두 녀석이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너는?'이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안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있는 다른 친구들에게 눈빛이 옮겨졌고 머리를 들어 코를 벌름거렸다.  구수한 풀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뒤에서는 뒤늦게 도착한 다른 두 녀석이 '얼른 가자'고 밀어대고 있었다.   


  앞에 있는 두 녀석은 '얼른 가서 맛있는 풀 먹고 싶다'는 눈치를 보이며 제자리걸음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팔을 더 넓게 벌려 막아섰지만,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는 원초적인 본능이 소들을 움직이도록 했다.  두 녀석이 동시에 가운데 서 있는 나의 옆으로 걸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폭이 2미터 정도인 상황에서 배통이 80 cm가 넘는 녀석들이 동시에 들어오면서 나는 소들의 배 사이에 걸렸고, 밀리면서 뒤로 넘어졌다.  


  짧은 순간에 뒤로 넘어진 내 위로 소들이 두 마리씩, 네 녀석이 지나갔다.  밀려 넘어지면서 지나가는 소들의 발들과 몸통이 보였다.  영화에서처럼 슬로모션으로 지나가는 발들이 더 크게,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이러다가 밟히면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 안 당하게 평소에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하게 살걸'하는 생각도 들었다.  


  소가 지나가고 혼자 남은 나는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뒤로 넘어졌지만, 다행히 바닥에는 톱밥이 깔려있었기에 충격은 없었다.  얼굴과 몸통에도 아픈 곳이 없었다.  '다행이다 !'.  두 발로 일어서는데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오른쪽 발목 부분이 약간 뻐근한 느낌이 있었지만, 세 번의 골절 경험으로 보아 골절은 아니었다.  '천만다행이다 !'.  


  저녁을 먹고 씻으면서 보니, 발목 윗부분 안쪽에 멍이 들었는데 타박상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비껴 맞은 듯한 형태였다.  아마도 소의 발에 밟힌 듯했다.  소의 한쪽 발 발굽이 두 개로 갈라져 있어서 내 발목을 밟을 때, 발굽 사이가 벌어지지면서 발목이 부러지지 않은 것이다.  '이것도 천만다행이다 !'.  '정말 운이 좋았구나 !'.   '감사합니다 !'.  대상은 없지만 감사한 일이었다.   주위에 있는 모든 분들과 나를 알고 있는 모든 분들께 감사했다.    


  이 이벤트를 겪고 나니, 마음가짐이 바뀌었다.  '현재 내가 만나고 있는 분들과 내 주위에 있는 분들이 너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평창으로 오가면서, 또는 실습을 진행하면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현재 내가 만나고 있는 분들에게 최선을 다해야겠다.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겠다.  후회하지 않아야겠다.  부모님을 더 자주 찾아뵙고, 집사람과 더 많은 대화를 하고, 딸들과 더 자주 전화하고, 학생들과 더 충실하게 열심히 수업과 실습을 하고, 동료들과 더 자주 의견을 나누고......


  이번 주에도 실습을 진행하면서 신었던 안전장화의 오른쪽 발목 윗부분에는 소의 두 발굽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한쪽은 찢어져 작은 구멍이 옆으로 났고, 한쪽에는 발굽 안쪽의 바닥 모양 선이 남아있다.  매번 이 장화를 신으면서 다짐한다.  '오늘도 충실하게 아쉽지 않게 실습하자 !'  실습을 마치고 장화를 씻을 때, 찢어진 구멍으로 물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면서 생각한다.  '오늘도 무사히 실습을 마쳤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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