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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팔이오 Nov 27. 2023

요리사 자격증 5개를 가진 수의사

요리사 김 선생 편

  2010년 경부터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록도 없고 기억이 안 남) 매달 진행하는 이안동물의학센터와의 정기 세미나에 어느 날 본과 2학년 학생이라며 자신을 소개한 학부생이 참가하기 시작했다.  우리 학부생인데 주말에 이안동물의학센터에서 테크니션으로서 아르바이트를 한단다.  각진 얼굴, 짧은 머리, 새파랗게 깎은 수염, 땅땅한 체격...


  매달 한 번씩 세미나를 마치고 일정이 가능한 사람들이 모여서 담소를 즐기다 보니 이런저런 얘기도 하게 되었고, 서로 주고받는 얘기 속에서 편린으로 듣리는 정보를 취합할 수 있었다.  성장과정과 입학과정, 그리고 현재의 이야기까지.  


  초등학교 때부터 요리가 좋아서 요리사 자격증을 공부했고, 한식, 양식, 제과, 제빵, 쇼콜라티에 기능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단다.  모든 요리를 전부 다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주로 주말 혹은 저녁에 출근하는 방식으로 요리와 학업을 병행하다가, 고2 때부터 요리를 그만두고 공부에 전념했단다.  첫 수능에 희망하는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재수를 하여 의대 2곳과 수의대를 합격하였고 그중 수의대를 선택하여 오게 되었다는 스토리였다. 


  그 얘기를 듣고는 옆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이 '와~! 진짜?  대단하다~!'며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요리가 더 쉬운지 공부가 더 쉬운지, 요리를 잘하기 위한 비법은 무엇인지, 각자 좋아하는 요리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 등 주로 다른 사람들이 해주는 것을 먹는 사람들이 직접 만들어 볼 기세로 적극적으로 질문했다.  


  학부생인데 매달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학교에서도 만나면 안부를 묻고, 마취통증의학과 대학원생들과도 자주 어울리다 보니 이 요리사 학생이 학부생인지 대학원생인지 헛갈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보니 그냥 대학원생이 되어 있었다.  다양한 이력의 대학원생들이 모여 있는 마취통증의학과에 또 다른 독특한 커리어를 가진 대학원생의 입학이었다.     


  오랫동안 보아 온 요리사 김 선생은 대학원생들과도 오래전부터 시간을 같이 해 온 사이라서 그런지 적응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같이 잘 어울렸다.  또한 '마취를 잘하려면 체력을 유지해야 하고, 체력을 보강하기 위하여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며 매번 회식장소 섭외를 담당하게 되었다.  


  본인의 핸드폰 앱에는 본인만의 맛집 리스트와 장소가 기록되어 있었고, 나도 잘 모르는 지역에 가게 되면 요리사 김 선생에게 전화하여 추천맛집을 물어보곤 한다.  그러면 이러이러한 맛집과 특징, 그리고 추천사유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며, 꼭 가볼 집과 취향에 따라 추천할만한 집으로 구분해 준다.  역시 전문가의 조언답다.  


  오랫동안 같이 일 해오다 보니 입맛이 요리사 수준에 맞추어진 듯하다.  오늘도 또 다른 요청을 해본다.  


  "요리사님, 올해 송년회는 어디가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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