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그림 고민
정말 오랜만에 인체 수채화 스케치북을 꺼내 평소 마음에 둔 토르소를 그렸다. 형태도 명암 표현도 모두 마음에 안 들었으나 다시 시도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기로 했다. 그러며 여러 생각들이 꼬리를 물며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도대체 무슨 그림을 그리고 싶은 걸까... 전문 예술가도 아닌 아마추어 따위가 뭔 그림에 대한 고민을 그리도 하냐, 그냥 마음 가는 대로 그리며 만족하면 되는 거 아냐? 명색이 그림 선생이니 거기에 맞는 실력만 유지하면 되잖아. 게다가 수강생들이 원하는 그림 수준은 그 정도면 됐잖아.
친정엄마가 언젠가 그러셨다. 그 옛날 형편이 못 되었어도 미대에 보낼 걸 그랬다고... 하지만 나는 단박에 부정했다. 만약 내가 어찌어찌 미대에 갔더라면 미술에 미자도 꺼내지 말라고 진저리를 치며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거라고... 내 청개구리 기질은 만약에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그러니 취미로 그리는 지금이 너무 좋다고, 그러니 엄마도 너무 아쉬워하지 마시라고...
그렇구나, 나는 지금 '취미'로 그림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마음 가는 대로 그려도 괜찮다... 그럼 어떤 그림을 어떻게 그리고 싶은 거야?
나는 인체를 그리는 게 좋다. 사진 그대로가 아니라 좀 더 자연스럽게 다양한 포즈 표현을 말이다. 수많은 연습을 했으니 이제 될 수 있을 것도 같으나 사실 시도를 망설이고 있긴 하다. 남들에겐 시도해봐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망쳐도 그림일 뿐이니 못 그려도 괜찮다고 하지만, 정작 내가 그러지 못하고 있는 거다. 자연스럽고 살아있는 듯한 몸동작 그려보기!! 못 그리게 결과가 나왔다면 또 고쳐나가면 된다. 하나의 자연스러운 동작 표현을 위해 또 연습하는 거다.
색채 표현도 또 다른 고민이다. 오일파스텔이라는 훌륭한 도구를 알게 됐으니 그걸로 색채를 고심해 보는 거다. 게다가 풍경화에 제격이니 다양하게 표현해 보며 색감을 다시 익히는 거다. 뭉뚝한 도구로 세밀한 표현을 하느라 괜스레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릴 수 있는 것과 그리고 싶은 것에 더 집중하자. 모두 다 잘하려고 하는 그 마음 자체가 욕심이다.
그저 그림 그리는 게 좋은 아마추어의 열정만을 가슴에 품고 과정들을 온전히 즐기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