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8-3
추모 박물관에서 나와 점심을 먹으려고 남편이 미리 찾아놓은 다이닝을 찾아 이스트 강 쪽으로 걸어갔다. 로어 맨해튼은 허드슨 강과 이스트 강이 만나는 곳이어서 가로질러 가기가 편했는데, 고층 빌딩들이 밀집해 있는 증권가 월 스트리트가 있는 곳인데도 도로가 매우 협소하고 골목길이 사이사이 얽혀 있었다.
작고 긴 삼각형 모양의 공원인 '루이스 네벌슨 플라자'라는 곳을 지나는데 한 무리의 기자단들이 모여 있었다. 혹시 트럼프? 하고 있는데 남편이 이미 포진해 있는 뉴욕 경찰관(NYPD!!)에게 물어보니 트럼프 때문이라고 친절히 답해줬다. 성추문으로 기소된 트럼프가 형사법원에 마지막으로 출두한 날이었던 거다.
가려던 식당이 문을 닫아 할 수 없이 되돌아와 기자단이 몰려 있는 그 공원 옆 피자 가게에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도로변까지 나온 식당 자리에 앉아 혹시 트럼프 머리라도 볼 수 있을까 싶었던 거다.
천천히 다 먹었는데도 별다른 상황이 일어나지 않아 슬슬 걸어가 보기로 했다. 우리가 서 있는 쪽에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과하다 싶을 만큼 하얗게 분칠하고 거의 벗겨질 듯한 옷차림에 양갈래 머리를 한 흑인 여성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떠들고 있었다. 유튜버인 듯했는데 경찰과 경호원들은 그저 웃기만 하다가 그 여성이 선 넘는 액션을 취하면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시민들에겐 한없이 친절했으나 허리춤에 꽂혀있는 권총을 보니 여기가 미국이구나 싶었다. 거의 2시간 동안 사람들 틈에 서서 구경했으나 트럼프는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발길을 돌린 지 30분 후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그날 방송으로 알게 됐다.
뉴욕의 역사적인 명소가 한데 모여있는 월 스트리트에 드디어 입성했다!! 유서 깊은 성공회 교회이자 묘지인 '트리니티 교회'가 보였는데 여기에 뮤지컬로 더욱 유명해진 '알렉산더 해밀턴'을 비롯한 초기 미국인들이 묻혀있다.
미국 경제의 상징인 '뉴욕 증권거래소'와 조지 워싱턴이 지키고 서있는 미국 의회 구 의사당인 '페더럴 홀'이 서로 마주 보며 서있다.
'두려움을 모르는 소녀(Fearless Girl)'가 증권거래소를 향해 기세등등하게 서있다. 소녀의 얼굴은 생각보다 겉늙고 표정도 그리 당돌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뒷모습에서 기개가 느껴졌다. 직장 내 성별의 다양성을 향한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는 이 소녀 동상은 원래 '돌진하는 황소' 앞에 세워졌었으나 2018년 11월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소녀가 바라보는 쪽이 증권거래소가 아닌 세계로 향해 있으려면 과연 어디일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