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8-2
원월드에서 내려와 출구로 나가니 지하철과 연결된 긴 복도가 나왔는데 천정이 생선가시 같아 물고기 뱃속에 들어온 듯했다.
바로 오큘러스(Oculus : 눈, 둥근 창)라는 지하철역이었는데,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과 펜 스테이션에 이어 뉴욕시에서 세 번째로 큰 교통 중심지다. 그 이름답게 매년 9월 11일이면 2시간 동안 천장의 채광 창이 열린다고 한다.
밖에서 보면 거대 로봇의 투구 같아 보이기도 한다.
오큘러스 앞에 '그라운드 제로'가 있다. 테러 공격으로 무참히 무너진 쌍둥이 빌딩이 서 있던 위치에 건립됐다.
검은 대리석에 새겨진 희생자들의 이름이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검고 네모난 구덩이 속으로 씻겨 들어가는 것 같은 엄숙한 분위기에 잠시 압도되었다.
추모 박물관의 입장 예약 시간이 1시간 정도 남아 주변을 서성이며 둘러보다가 오큘러스 건물 바깥에 앉아 잠시 쉬기도 했다.
박물관의 메인 홀로 들어서니 붕괴된 건물의 마지막 기둥과 거대한 나사 볼트가 튀어나온 듯한 벽이 보였다.
세계 무역 센터 부지의 대부분을 둘러싼 'Bathtub'을 건설하기 위해 세워진 'Slurry wall'이라는데 건물이 무너지면서 다 드러난 거다.
쌍둥이 빌딩 중 왼쪽 건물(1WTC)에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된 비행기가 충돌하고 난 후 30분도 채 안 되어 오른쪽 건물(2WTC)에도 또 다른 피랍 비행기가 충돌해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 후 1시간도 안 되어 워싱턴에 있는 국방부 청사인 펜타곤에 역시 피랍 비행기가 충돌했다.
2001년은 울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었고, 나는 대학강사를 그만 두던 해에다 9월은 2학기가 막 시작돼 마음이 한창 바쁜 때였다. 밤새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이었지만 성수대교처럼 부실공사로 무너진 게 아닌 테러 공격으로 당한 거라 섬뜩하니 무서웠었다.
No day shall erase you from the memory of time.
어떤 날도 당신은 시간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 Virgil -
한쪽 벽에 고대 로마 시인인 '베르길리우스'의 명언이 쓰여있었다.
아비규환 속에서 이 계단으로 탈출한 사람들은 생존했다. 반대로 올라가는 소방관들에게 응원을 보냈으나 서로의 생사는 갈려버리고 말았다. 전혀 예상을 못 한 채 내려갔었는데 다 내려간 후 이 글귀와 사진을 보고선 머리털이 곤두섰다.
남겨진 잔해들이 그날의 처참함을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