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엄마의 백내장 수술 이후 관리를 하던 중 왼쪽 귀에 간헐적으로 생기던 이명이 3월 중순부터 멈추지 않기 시작했다. 비행기를 탄 것처럼 귀가 먹먹해지더니 어지럼증과 두통까지 따라왔다. 오른쪽 귀에도 비슷한 증상이 느껴져 동네 이비인후과를 찾았더니, 이름도 생소한 ‘메니에르병’ 같다는 말을 들었다. 두 번의 청력검사에서 왼쪽 청력 저하가 뚜렷하게 나타나 대학병원 진료를 권유받았다.
급히 예약해 찾은 성모병원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고, 정밀검사를 위해 날짜를 잡았다. 마침 기존 약을 다 먹은 터라 새로 처방받은 약을 복용했는데, 그제는 그 약 때문에 온종일 힘이 빠지고 현기증까지 겹쳐 몸이 완전히 무너진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장기요양 등급 상향 신청을 위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다녀왔고, 봄 문화센터를 개강한 교회에 엄마를 모셔다 드렸다. 엄마 집에 가 신발장을 정리하고 신발을 재활용함에 넣어두고 나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조금 나아진 기운으로, 집으로 잘 돌아오신 엄마와 안양천 뚝방길에 벚꽃을 보러 나갔다. 밤벚꽃까지 보겠다고 고집 부리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나와 헤어진 엄마가 집을 못 찾아 밤길을 해맸지만, 그건 내가 제대로 배웅하지 못한 탓이다. 위치 앱으로 엄마를 찾아가니 엄마가 눈물을 글썽이고 계셔서 가슴이 아팠다. 그래도 감기 없이 무사히 다녀온 것만으로 다행이라 여겼다.
다음 날 아침, 내 상태는 다시 바닥이었다. 왼쪽 귀는 완전히 막혔고, 오른쪽 귀도 답답하게 조여왔다. 머리 전체에 웅~ 하는 소리가 퍼져 무겁게 눌렀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어지러웠다. 새벽에 남편 때문에 서러워 펑펑 울었더니 얼굴은 부어 있고, 입 주위 뾰루지는 더해졌다.
다시 동네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결국 내 몸에는 이곳에서 처방해 준 약이 더 맞는 모양이었다.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 간단히 요기를 하고 약을 먹은 뒤, 음악을 들으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어느 순간 잠이 들었고, 30분 남짓한 짧은 잠이었지만 몸이 조금은 풀린 느낌이었다. 오후에는 치매안심센터에 가지 않기로 했다. 대신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선유도공원에는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들이 살랑이며 사람들을 맞이했다. 벤치에 앉아 집에서 가져온 간식을 나누며 엄마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는 공원이 참 좋다며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 말들이 귀엽게 느껴졌고, 동시에 고마웠다. 엄마의 기억 한켠에 이곳이 편안한 장소로 남겠구나 싶었다. 그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충분히 채워졌다.
돌아오는 길, 라면 냄새에 이끌려 한강라면 하나를 사서 나눠 먹었다. 엄마는 몇 번이나 드셔보셨으면서도 마치 처음 먹는 음식처럼 맛있다고 하셨다. 그 모습을 보며 이상하게도 더 이상 속상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에게 유하게 대했고, 농담도 건넸다. 엄마가 내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았다. 서로 편하고 행복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이제는 ‘나만이 엄마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려 한다.
오래 돌보기 위해서는, 혼자서 버티기보다 제도의 도움을 받는 쪽이 맞다.
엄마가 더 이상 예전의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그렇지만 나는 조금씩, 그 방법을 알아가고 있다.
어쩌면 어제가 그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