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나물 Sep 09. 2024

장난감에 아이용 어른용이 어딨어요.

있음 말고.


  나에게는 어렸을 적부터의 취미가 있다. 바로 인형을 모으는 것인데, 내가 기억이 닿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바비인형들을 상자에 차곡차곡 모았다. 옷도 가끔 사주고, 어느 순간부터는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박스도 뜯지 않았다. 부모님은 좋아하시지 않는다. 나의 부모님은 취미생활은 좋지만 언제까지 이러나 보자는 심보로 잔소리를 하시곤 했다. 바비인형에 대한 공주취향은 디즈니 인형으로까지 뻗치고, 나 나름대로 카피 제품은 취급하지 않는다던가, 공식제품만을 취급 하는 등의 나름대로의 오타쿠 철학이 생겼다. 부모님은 이런 딸을 어디에 내놓기 부끄러웠는지, 남편과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친정집에 머무르게 되었을 때 공주방이었던 내방의 침대 시트와 인형들을 싹 치워놓으셨다. 나도 내 방에 뭐가 어딨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지냈던 것 같다. 정작 내 남편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남모르는 취미가 있다. 장난감 굿즈, 만화의 굿즈를 모으는건 뭐 숨기는 것도 아니고, 바로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건 다 해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슬라임은 뭐..올타임 넘버원 나의 최애템이고, 스퀴시라던가, 유행하는 장난감도 아이가 있는 집에 가면 놀아 준다는 명목하에 만지작 거리고 갖고 놀기도 한다. 작은 인형에게 작은 가구와 음식들을 사다주면서 혼자 낄낄거리기도 하고, 가루쿡은 보이면 무조건 구매한다. 지금도 나의 사무책상은 그런 인형들과 여러 장난감 문구류들이 정리되어 있다. 얼마 전 미국에 방문하신 부모님은 그것을 보고 아주 노하셨지만, 나는 부모님이 오시기 전에 충분히 치울 수 있음에도 숨기지 않았다. 내가 재밌게 놀았으면 됐다. 물론 내가 어느 순간부터 꺼내 놀지 않고 박스에 고이 모셔 놓은 바비인형들과 디즈니 공주들에게 미안하지만, 적어도 그들을 보면서 나는 행복했다. 물론 결혼하기 전에 짐을 정리하면서 엄마가 이제 진열장의 인형들도 다 팔거나 없애는 게 어떻냐고 물었다. 불현듯 마치 토이스토리 처럼, 아이들이 갖고 놀아야하는 장난감인데, 내가 박스를 뜯고 놀아주지 않으면 인형들이 슬플까 싶어서 당근마켓에 판매하니..판매 후기로 인형과 소품을 박스에서 북북 뜯어 갖고 노는 아이의 사진을 보니 사실 내 마음은 아주 찢어졌다. 그냥 고이 갖고 있을 걸....하면서 말이다. 


  결혼하기 2년 전쯤, 남편을 보러 미국에 방문했을 때 일이다. 긴 산책을 하다가 들어가게 된 창고세일 중인 망해가는 마트에서 어떤 박스를 열어보는데 이게 웬걸… 바비인형이었다! 그것도 헬로키티 콜라보 바비인형. 우리나라에는 800개 정도밖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는 이 헬로키티 바비가, 반값세일이라는 거다. 남편은 네가 좋아하는 거면 사라는 반응, 나는 내가 지금 이 나이 먹고 바비인형을 사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고, 남편은 내가 얼마나 나이가 들었냐는 상관없이 좋아하면 사는 건데 왜 그런 말을 하냐고 했다.


  그 당시에도 결혼 이야기는 오고 가던 중이었지만, 이때 이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60살이 되어도 이걸 사서 행복하면 사라고, 이만큼의 행복을 주는 취미생활도 없다면서 말이다. 자신은 인형을 좋아하는 마음이나 모으는 것 자체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남 신경을 안 쓴다면 40살이 되어도 대학을 다시 들어갈 수 있고, 인턴을 할 수 있는 세상인데 ‘이 나이에’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내 나이는 20대 중반, 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건지.. 아마 여기저기 구박도 받고, 부모님이 시집가서도 가져갈 거냐고 잔소리하는 것 때문인 것 같다. 아무튼 그 인형은 반값 세일에 계산대에서 내가 모르던 추가 세일까지 붙어 거의 거저 주는 정도의 가격으로 구매해서 돌아왔다.


  고작 20대 중반에 내가 이 나이 먹고~라는 생각을 한 것을 지금은 후회한다. 내가 너무 늦었다고 생각한 20대 중반 시절, 그냥 실천에 옮겼다면 내 인생은 또 다르게 펼쳐졌을 것이다. 100년 사는 인생에서 고작 4년 공부한 게 아까워서 다른 공부를 시작하지 못하고, 고작 2년 공부한 게 아까워서 다른 미래를 꿈꾸지 못한 게 참 아쉽다. 근데 지금은 늦었느냐고 묻는 다면 그건 아니다. 이제 나는 이전에 살아온 내 인생이 아깝지 않다. 그냥 다른 게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 내가 새로운 것을 도전하게 된다면 다시 글을 통해 공유하도록 하겠다. 그러니 혹시나 새로운 것을 도전하기에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저 없이, 후회 없이 그냥 시작했으면 한다. 괜찮은 결과를 낳지 않아도, 그 시간이 다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이 나이 먹고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