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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보미 쬬이마마 May 02. 2023

최고의 효도

세상에 둘도 없는 나의 편이 되어 준 엄마에게

"엄마,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드라이브와 산책을 엄마는 참 좋아한다. 밖에서 밥 사 먹는 게 돈 아깝다 하시면서도 웃으며 잘 따라나선다. 이렇게라도 콧바람을 쐴 수 있어 참 다행이지 싶다. 가끔 친구처럼 엄마와 외출을 즐기지만, 친구처럼은 절대 즐기지 못하는 게 있다. 엄마에게는 그 방법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큰 것은 엄마와 함께 음식을 먹을 때는 각자 한 그릇씩 음식을 시켜 먹는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음식을 주문해서 테이블의 가운데에 놓고 그 음식을 뷔페처럼 앞접시에 담아 나누어 먹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다. 음식의 접시가 뚝배기처럼 온전히 한 사람을 위해 준비된 것이라야 가장 좋다.  

그래야만 엄마는 눈 앞의 음식을 기꺼이 비우시기 때문이다.









어릴 때 집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운 적이 있다. 어느 날은 학교에 갔다가 집에 오니 새끼를 뱄다고 했다. 무엇보다 엄마는 먹이를 전보다 훨씬 더 신경 쓰셨다. 그런 메리의 배는 점차 불렀고 그 작은 몸에서 다섯 마리의 새끼가 나왔다. 나는 작은 생명이 귀엽고 신기하여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달랐다. 어미인 메리를 기특하게 생각하며 극진히 돌보았던 것이다.


메리에게 주는 출산 특식이 그중 하나였다. 미역에 북어를 넣고 뽀얗게 국물을 낸 국, 큼직한 소고기를 푸짐하게 넣어 끓인 국, 평소에는 아껴주던 애완견용 소시지까지. 엄마의 모든 특식이 출산을 마친 메리에게 향했다. 메리는 자리에 누워 젖을 물리다가도 엄마가 끓인 특식이 나올 때는 벌떡 일어났다. 녀석이 허겁지겁 먹이를 먹을 때면 새끼 다섯 마리는 어김없이 따라 나와 낑낑거렸다. 그때 엄마와 나의 태도 또한 달랐다.


나는 '우리 메리는 모성애가 부족한 것일까? 새끼들이 낑낑 거리며 따라오는데 어찌 쟤입에 음식 들어가는 게 우선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먹이를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메리가 얄밉고 야속하기까지 했다. 어떤 마음인지 엄마는 좀 달랐다. 새끼들이 낑낑거리며 따라와도 기어코 다시 자리로 돌려놓고 돌려놓고를 반복했다. 엄마는 메리가 잠시 먹을 동안만이라도 편히, 마음껏 쉬기를 바랐던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벼운 몸으로 뒷동산을 맘껏 누비던 메리였다. 메리로서는 영문을 모른 채 몇 주를 무거운 몸으로 지냈을 것이다. 온몸이 찢어질 듯한 산고의 고통 후에 마주한 것이 다섯 마리의 새끼. 메리는 동물적 본능으로 새끼를 품었다지만 홀로 자식을 품는 메리의 모습이 엄마는 안쓰러워 보였을 것이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 경험한 만큼 알 수 있다.


오래도록 그 깊은 마음을 알지 못한 채 메리에게서 새끼를 떼어놓던 모습을 매정하다 기억했다. 야속하다고, 야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생각은 한참이 지나서야 바뀌었다. 내가 임신과 출산을 거친 후이다. 갓 태어날 생명보다 딸아이를 더욱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을.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을 견뎌낼 딸아이를. 시작된 출산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져 잠못이루며 새벽 내내 병원으로 전화를 하셨을 엄마의 마음을 알고 난 후에야 말이다.  출산을 마친 딸을 위해 절뚝거리는 아픈 다리로 딸이 좋아할 음식으로 한상 가득 차리던 엄마의 모습을 보고 난 후에야 말이다. 눈물 젖은 첫 술에 모든 오해가 풀렸다.  갓 태어나 연약한 아기보다, 홀로 산고의 고통을 겪었을 딸에 대한 안쓰러움이 먼저인 엄마가 이제서야 보였다.



엄마는 여전히 내 앞에 내가 좋아할 만한 반찬을 밀어놓으신다. 집에서는 솥에 있는 밥을 그릇에 수북하게 담아 딸에게 내민다. 고기반찬이 아직 많이 남았지만 '이제 남은 것은 네가 다 먹어라' 하신다. 밖에서는 산해진미를 눈앞에 두고도 밥에 물을 말으며 '너는 먹어라. 나는 많이 먹었다' 하신다. 이제야 낑낑거리던 새끼를 밀어내던 엄마의 모습이 이해되었다. 세상에 둘도 없는 너의 편이 되어 주겠다는 단호한 태도가 아니었을까. 내가 앞으로 누구에게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이런 귀함을 어디에서 경험할 수 있을까.


엄마의 지독한 헌신을 부정하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바보같이 살았어도 지금 남은 게 뭐가 있냐고,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 다짐이 가시가 되어 서로에게 참 많은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그 상처가 다 아문 것 같지 않은데, 아직 엄마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엄마의 기억은 지워지고 흐릿해지고 있다.


야속한 엄마의 아픔이 이번에는 나를 밀어낸다.


  






"엄마 그동안 양보는 충분히 하셨어요, 나 잘 먹고 있으니 이번에는 엄마가 많이 좀 드세요"



엄마와 뜨끈한 돌솥비빔밥을 각자 한 그릇씩 시켜 먹는다. 나 잘 먹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고 방긋 웃어 보인다. 엄마는 앞에 있는 한 그릇의 음식을 남김없이 모두 드신다. 그걸 보는 내 마음도 맑게 개인다. 함께 할 수 있어 다행이다. 따뜻한 밥 한 끼로 마음을 나눌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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