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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보미 쬬이마마 Nov 28. 2022

삶에의 욕망

당신의 이름이 슬픔이라면 나는 살아있는 생명의 언어가 되겠어요


"네 엄마가 나도 못 알아보더구나.

그래도 어쩌겠니. 자식이니까 해야지. 그러다 시설에 보내야지."



이모의 고희연을 위해 모인 자리였다. 멀리서 오신 큰삼촌이 먼저 식사를 마치셨다. 차를 타러 가기 전에 나를 따로 불러한다는 얘기가 이거였다. 특별히 기대했던 것은 없었으나, 그럼에도 내 귀에 들려온 말에  얼어붙어 버렸다.


오늘의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 얼마나 애썼던가. 아침부터 엄마의 아픈 다리를 주무르며 이모들 앞에서 잘 걷기를 기도했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드라이를 해드리면서 엄마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직접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엄마의 이름으로 미리 주문한 커다란 꽃바구니와 답례품, 그리고 우리 형제들의 이름으로 준비한 고희 축하금까지. 

고희연에 도착해서는 어땠는가. 엄마가 혹여나 실수를 하여 주인공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긴장에 또 긴장을 했다. 식사를 무사히 마치면 다른 방문객들 보다도 일찍 자리를 비켜야지, 누군가와 대화를 하게 된다면 어떤 말로 시작하고 표정은 어떻게 지어야 할지 등을 미리 준비했다. 나름 치밀했던 계획이 모두 하나씩 척척 들어맞아 긴장감이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던 바로 그때였던 것이다. 



헌데 한마디 말에 흔들렸다.


생각해보면 연회장에 들어서며 마주친 삼촌과 당숙 아저씨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적어도 친절하진 않았다. 기억을 잃어가는 동생을 봤다면 응당 먼저 아는 체를 하고 안부인사를 나누는 것이 순서 아닐까. 기억을 잃어가는 동생에 대한 가여운 마음을 갖길 바라는 것은 무리한 바람일까. 칼날이 된 눈빛은 얼마나 견뎌야 하나.



기억해보면 삼촌의 그 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십 년 전 남편을 잃고 마음 붙일 곳을 찾아 엄마는 매년 3~4차례를 꼭 시골에 다녀왔다. 밥해주러, 일해주러 시골에 다녀온 엄마의 고운 손에는 늘 새까맣게 때가 껴있었다.


엄마는 치매라는 질병을 앓게 되면서도 자신의 고향인 지금의 삼촌집에 자주 찾아갔다. 길도 잘 찾았고, 시골 살림에 걱정도 하며 서울에서부터 하나 가득 장을 봐서 음식을 하는 건 여전했다. 때문에 바쁜 시골 살림에 일손이 되기에는 손색이 없을 엄마였을 것이었다. 엄마가 시골에 계실 때는 마음 놓고 평범한 일상을 누리기도 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시골에 때는  손을 무겁게 가져갔다. 


그런 엄마를 나는 꼬박 모시러 다녔다. 아마 작년이었을 것이다. 가슴에는 돈뭉치를 품고, 손에는 두유 박스를 들고 방문을 했었다. 나에게는 여느 때와 같던 그날, 삼촌은 이미 엄마를 <시설행 급행열차>에 태워 버렸다. 엄마의 어떤 모습 때문이었을까. 

요양원... 요양원...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속이 울렁거렸다. 우리 엄마가 그렇게 의지했던 사람에게 들을 말이 겨우 이런 거라니... 실망감이 컸나 보다. 삼촌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슬픔 중에 있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할까.



엄마와의 손을 생명줄처럼 잡고 있는 딸아이는 다정하지만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건넨다. 고희연을 마치고 갈팡질팡한 마음을 산책으로 달래고 있는 중이었다. 혼자 나오려는데 기어코 따라 나오겠다던 아이는 오늘 유독 참새처럼 재잘거렸다.


"엄마, 엄마는 왜 나를 보면 웃는 거예요?"

"엄마, 내가 웃는 모습이 엄마를 닮았지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느라 마음에 닿지 않았던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생명이 가득 담긴 살아있는 언어들이었다. 느슨하게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삶에의 욕망이 일었다.









엄마를 돌봄하며 내 마음도 함께 돌봐야함을 깨달았어요. 캘리그라피 중입니다. 


슬픈 사람들에겐       _이 해 인


슬픈 사람들에겐

너무 큰 소리로 말하지 말아요

마음의 말을 은은한 빛깔로 만들어

눈으로 전하고

가끔은 손잡아 주고

들키지 않게 꾸준히 기도해 주어요


슬픈 사람들은

슬픔의 집 속에만

숨어 있길 좋아해도

너무 나무라지 말아요

훈계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말고

가만히 기다려주는 것도 위로입니다

그가 잠시 웃으면 같이 웃어주고

대책 없이 울면 같이 울어주는 것도

위로입니다

위로에도 인내와 겸손이 필요하다는 걸

우리 함께 배워가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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