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부모가 믿어주는 만큼 성장한다.
최근 큰 아이가 대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부모 슬하를 떠나게 되었다.
기숙사래봤자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곳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반찬과 빨래거리를 나를 계획이다.
아들은 '장남'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든든함, 성숙함, 믿음직스런, 뭐 이런 수식어와는 거리가 먼 놈이다.
최근에 유튜브에서 어느 교육전문가가
아이의 생일이 늦으면 늦을수록
그 아이는 어릴적부터 성취보다는
좌절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되고
이는 낮은 자존감으로 연결된다고 하는
영상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아들놈을 보며 나는 엉킨 실타래를 자주 연상했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느 부분을 먼저 풀어야 할까.
아들의 출산 예정일은 원래 1월 초였는데
예정일보다 10일 빨리 출산하면서
12월말에 낳게 된 것부터 잘못된 것이라면
이건 아주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어릴적부터 모든 면에서 또래들보다 뒤쳐졌더랬다.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2학년까지 다녔었는데
키 작은 순으로는 반에서는 1,2번째인데다가
축구라도 하게 되면 패인의 원흉으로
반 아이들의 원망을 한 몸에 받았다.
어린아이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약육강식 피라미드에서도
아이는 당연하게 포식자의 쉬운 타켓이 되기
일쑤였다.
공부도 물론 시원챦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나서 밤 9시가 되어서까지
시작도 안한 숙제를 붙잡고
우리집에서는 밤마다 곡소리가 울려퍼졌다.
때문에 캐나다 이민을 고려할 때
아들의 미래도 큰 지분을 차지했더랬다.
강한 놈만 살아남는 것 같은 한국사회에서
모든 면에서 뒤처지는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캐나다에 왔다고 한순간에 사람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아이는 여전히 얼띠고 작고 왜소했으며
3학년으로 들어간 초등학교에서 반에서
단 두 명 있는 한국아이로부터도 왕따를 당했다.
그나마 한국에 있을 당시 고질적으로 달고 살았던 천식이 한순간에 좋아진 것이
이민오길 잘했다고 겨우 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담임 선생님들로부터 아이에 대한 컴플레인도
여러번 받았다.
요는,
“이 아이에게 어떤 것을 설명하는 것이 무척 힘들다”
"야는 아주 단순한 지시사항도 따르기 힘들어한다" 등등이었다.
한 선생님은 나더러 아이를 전문가에게 보이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권유하기도 했다.
나는 이 아둔한데다가 사회성도 부족한 아이를
데리고 1차로 가정의를 만났고
중동계 의사 선생님은 아이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더니, 되려 나를 야단쳤다.
" 이 아이는 멘탈에 문제가 없다.
원래 동아시아 아이들이 대체로 수줍음이 많고
아직 영어도 편하지 않으니
학교 수업을 잘 못 따라가는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멀쩡한 아이를 두고 왜 엄마라는 사람이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에 현혹되어
자기 아이를 함부로 문제아 취급을 하느냐" 였다.
그러한 책망은 무척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와 겨우 몇마디 나눈 것 가지고
선생님이 섣불리 낙관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더랬다.
그런데 그 '대책없어 보이는 낙관'은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먹고 살기 바빠서 통 신경도 관심도 쓰지 못하는
시간 동안
이 '문제가 많은 아이'는 나름대로 별 탈 없이
성장했다.
내가 아이의 학교 생활에 무관심과 방임으로
일관할 수 있었던 것은,
딱히 걱정거리가 없었던 덕분이리라.
내가 얼마나 아이의 학교 생활에 관심이 없었냐면
초등학교 때부터 C로 도배했던 성적표가
7,8학년 즈음, A로 뒤바뀌고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이후 아이는 학업성취도면에서 우직하게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원하던 대학교에 입학했다.
물론 공부가 다가 아니다.
나는 아들에게서 '조용한 ADHD' 내지는
‘아스퍼거 증후군'이라고 일컬어지는 자폐스펙트럼 성향을 느낀다.
그럴때마다 몇년전 나를 책망했던 그 이란계 의사선생님을 떠올리며,
모든 부모들이 이상적으로 꿈꾸는 자녀의 덕목인
'항상 명랑하고 공감능력이 높아 사회성이 좋고,
언변이 뛰어나며 도전의식이 강한 자존감 높은 아이'와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내 자식의 성향을 부정적으로 낙인찍고 있는 것을 아닐까하고 돌이켜본다.
사람과 눈도 잘 못 마주치는 아이는 의외로
이스라엘 출신 룸메이트와 잘 지내는 것 같았다.
그 사실이 신기해서 어떻게 친해졌냐고 물어보니
그 아이가 워낙 외향적인 아이라 내성적인 자신을 잘 리드해 준다는 것이었다.
풀릴 것 같지 않던 문제의 해결은 의외로 평범했다.
아들은 나를 닮아서인지 연락도 잘 안하고
전화받는 것도 싫어한다.
그래서 기숙사 들여보내면서 여느때처럼
읽씹/안읽씹 했다가는
다시 집으로 끌고 오겠다고 엄포를 놓은 덕에
그나마 카톡으로 안부를 물어보면 단답형으로라도 회신을 보냈다.
그런데 며칠전, 반나절 내내 아들이 연락두절이
되었다.
카톡을 보내도 몇시간 동안 '1'자가 안 없어지고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대낮이면 바빠서 그러려니 하겠는데 이미 밤 10시를 넘어가는 시간동안 연락이 없자,
별의별 생각이 다 들면서 전전긍긍하게 되었다.
남편은 오히려 이런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놈이 낮부터 게임하다 지쳐서
초저녁부터 자빠져 자느라 연락이 안 되는 것일거다,
아니면 전화기를 잃어버렸을 수도 있다
놈이 워낙 주변머리가 없어서
우리한테 전화도 못하고 있는거다. 등등 예상가능한 모든 한심한 상황을 나열했다.
최근에 그 학교 캠퍼스 안의 숲 속에서
작년 겨울에 실종되었던 2학년 남학생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접한지 얼마되지 않아,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마트에 가다가 길을 잃어
캠퍼스 내 숲 속에서 조금 헤맸었다는 이야기가
퍼뜩 떠올랐다.
아이의 신변에 이상이 생겨을 때 바로 확인해 줄
사람도 주변에 없다고 생각하니
집에서 이러고 있을게 아니라 일단 기숙사로 쳐들어가기로 했다.
차로 이동하는 1시간 거리가 무척 길게 느껴졌다.
이러니 다른 주(Province)나 다른 나라로
아이를 유학보내는 부모들은
과연 자녀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어떻게 감내할까 싶다.
도중에 운전대를 잡은 남편이 아차하여 길을
잘못들었을 때는 극도의 짜증이 나기도 했다.
학교 도착 10분전, 자동차 스피커폰으로 아들래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이놈X끼야 너 왜 이렇게 연락이 안되고 GR이야!!!" 하고 다짜고짜 다그치려는데,
남편이 애써 침착하게 먼저 운을 떼었다.
"별일 없지? 니가 계속 전화를 안받아서 엄마 아빠가 걱정이 되어 너한테 가는중이야"
"올 필요 없는데.... 나 지금 알바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야"
아이가 알바하느라 전화를 못 받은 건 우리의
예상가능한 시나리오에 없는 것이었다.
아이는 캠퍼스 내 마트에서 캐시어로 파트타임 알바를 시작했다고 했다.
우리 부부가 너도 이제 곧 성인이니 통신요금과
식비 정도는 이제 니 힘으로 해결했으면 한다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는데,
철딱서니 없는 아들 녀석이 그 말을 당연히 귓등으로 들었을거라 생각했었기에 정말로 의외였다.
기숙사에서 도보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 알바 장소까지 아들은 자전거를 두고 걸어다닌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학교안에 자전거 도둑이 들끓어서 잘 묶어놓아도 안장이나 바퀴만 떼어간다며
나름 기특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왕 기숙사까지 간 김에 아들녀석을 얼굴을 보고 주섬주섬 빨랫거리를 챙겨
한층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나와 내 남편은 20내 중반에 결혼하여 아무 계획 없이 비교적 이른 나이에 덜컥 부모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부모 노릇에 무척 서툴렀고
평균보다 조금 약하고 예민하고 빠릿하지 못하고
명랑하지 못하고 똑똑하지 못한 아들에 대해
항상 이 놈은 우리에게 기쁨보다는 걱정을 더 많이 준다고 이야기해왔다.
아이가 우리에게 기쁨과 걱정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이에 대해 덜 기뻐하고 더 많이 걱정을 '한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가 우리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이를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렇게 아이의 미래에 대한 기대 보다는 불안을 더 많이 가져서 얻어지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여전히 부모 노릇은 영 소질이 없어 아이를 이만큼 키웠어도 갈피를 잡지 못한다.
가뜩이나 이렇게 서툰 엄마 밑에서
아들은 어려서부터 늦된 아이가 느꼈을 초라한
성취감과
선천적으로 병약하고 성격적으로 예민한 아이가
겪었을 고단함과
자신을 보는 걱정과 불안에 가득찬 어른의 시선을 받으며 성장했다.
12월말일생이라는 디스어드벤티지와 그다지 유능하지 못한 양육자 밑에서도
여전히 왜소하지만 이제는 일년에 한번 감기에 걸릴까 말까로 다부져진 신체와
혼자 기숙사 생활을 하며 일곱군데에 이력서를 돌려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용기와
빡세기로 악명높은 대학교에 코로나 학번으로 입학하여
방구석 온라인 수업으로 원하는 전공에 맞는 학점을 취득할 정도의
자기 콘트롤 능력을 갖춘 청년으로 자라주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하고 대단한 일인가.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제와 생각해 보니..'라는 식의 결과론적인 감사이고,
진작에 아이에게 칭찬과 격려를 더 많이 해 주지 못한 아쉬움이 참으로 크다.
요즘 신세대 부모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라떼만해도 자식자랑은 '팔불출'이라는 말이 있어서 그런지 부모들은 자식 칭찬에 유독 인색하고 엄격하다.
예로부터 주변에 앉았다 하면 자식 자랑에 여념이 없으신 여사님들이 몇 분 계셨는데
훗날 그 '자랑'이 모두 허황된 것이었음이 드러난 것을 본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런지,
나도 누군가 내 아이에 대해 칭찬을 하면 기를 쓰고 그것을 부정해왔다.
이를테면 아이가 캐나다에서 소위 명문대에 입학하고 나서도,
주변에서 칭찬을 하면 나는 아이의 성취를 어떻게든 평가절하했다.
" 그래봤자 한국에서 인서울 대학 입학 가능 수준일걸요?"
" 운이 좋았죠. 도대체 어떻게 들어갔는지 모르겠어요"
등등.... 그것이 이른바 '겸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 와서 인상깊었던 것이,
누군가에게 칭찬을 하면, 그들은 그것을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예전 아이의 수영선생님에게 너무 자상하게 잘 지도해줘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며
내가 그녀로부터 예상했던 아름다운 대답은
" 뭘요,, 이제 제 일인거요"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그들은 칭찬에 이렇게 대꾸한다.
" 감사해요 저도 정말 많이 노력했어요"
나는 아이가 공부하면서 숱하게 지샜던 그 날밤들을
'겸손'이라는 미덕 아래 싸구려 도매금 취급을 한 것이다.
사방팔방 자식 자랑을 하는 팔불출과
아이의 노력과 성취에 칭찬을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인데,
나는 그 두가지를 잘 구분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한편 마트에서 캐시어 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빠릿함과는 거리가 멀고 일머리가 없는 아들놈이
어쩌면 머지 않아 지 돈 꼴아박고
잘하면 짤릴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해본다.
이런 재수없는 생각이 물론 객관적으로 아주 허튼생각은 아니다.
이것은 20년 넘게 사회생활을 한 어미의
아주 합리적인 시나리오이다.
그치만 나는 이 불길한 생각을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아들은 머리털 나고 처음 겪는 사회생활에서 좌절하고 혼쭐이 날 수도 있다.
근데 그건 아들이 어디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충분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그 과정에서 아이는 더 단단해질 것이다.
혹여, 현금계산이 틀려서 금전적 손실을 볼 수도 있다.
그치만 그것 역시 경제관념이 없는 아들에게 값어치 있는 수업료가 되어줄 것이다.
기숙사에서 가져온 아들의 빨래가 끝나서 건조기로 옮기는데 뭐가 툭 떨어진다.
놈의 현금카드이다.
아들에게 전화를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현금카드가 없어진 것도 모르고 있었다.
여느때처럼 "한심한 놈" 이라고 내뱉기 전에
나는 숨을 고르고 애써 다른 생각을 해 본다.
"괜챦아. 앞으로 기숙사 생활하면서 더 야무져질테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