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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gevora Sep 07. 2021

달려라 중년 하니

본격 달리기 영업글.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의 몇 가지 타입이 있다.

일단 금수저를 넘어선 다이아수저나 축복받은 몸매나 외모를 타고 난 자, 아이큐가 한  200정도 되는 넘사벽 '그사세'는 너무 뻔한 이야기이기에 차치하고,

내 말인즉슨, 평범하지만 아무런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나와는 다른 행성에서 사는 자들이다.


 이를테면,

흙과 식물을 너무나 사랑해서 화초나 텃밭을 가꾸는 자. (벌레랑 지렁이 무서움)

아이는 안 낳아도 강아지나 고양이는 6마리쯤 키워야 직성에 풀리는 자.(동물 안 좋아함)

교회에서 예배 시간에 하늘로 손을 쳐들고 울면서 찬송을 부르는 자. (집에 우환있는 자는 예외)

뜨개질과 같은 수예를 좋아하는 자. (이들 상당수는 미싱도 가지고 있음)

앉으나 서나 아이들 교육에 여념이 없는 자. (솔직히 부럽다)

처음 본 사람에게 '언니' 라고 부르면서 팔짱을 낄 수 있는 자. (동갑하고도 말 못 놓는 편)

시간대별로 일거수일투족을 애인,배우자,상사 등에게 보고하고 또 보고 받으려는 자.(안물안궁)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를 보면서 입이 귀에 걸린 자 (feat. 우리 남편)

사흘이 멀다하고 까페, 식당, 쇼핑센터 등을 무리지어 다니길 좋아하는 자. (일대일 만남 선호)

유행하는 가방이나 악세사리 정보에 빠삭한 자. (순수하게, 어떻게 아는건지가 궁금함)

네일아트와 속눈썹 연장을 정기적으로 하는 자. (귀찮음)

고기에서 나는 냄새가 싫다고 채소만 먹는 자.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좀 부럽기도 하고)

골프나 낚시 등의 스포츠나 취미에 미친 자. (어떤 포인트에서 즐거운 건지가 궁금.)

등등.... 이상의 것들은 결코 좋다 나쁘다의 가치판단적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공감이 안되는 타입' 목록이니 오해는 않으셨으면 한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잡다하게 열거하자면 수십가지도  나열할  있지만 그중에서도 일곱번 죽었다 깨어나도 저런 짓은 안할 텐데 하는 인간 중에 나의 사촌 남동생 '자니' 있다.


 몇 년 전 4월에 사촌여동생의 결혼식이 시애틀에서 있어서 간 적이 있다.

밴쿠버와 기후가 비슷한 4월의 시애틀은 당시 비가 많이 오고 몸이 으실으실 떨릴 정도로 무척 추웠다.

개인적으로 봄의 추위는 한겨울의 추위와는 다르게 뼛 속까지 스며들어 더 힘든 것 같다.


 당시 따뜻한 LA에서 살던 '자니' 누이의 결혼식 때문에 며칠  일찍 와서 근방 호텔에 머무는 중이었는데  녀석의 '기행'이란 것은  육상선수들이 입는  같은 '난닝구랑 빤스' 입고 이른 아침부터  주변을 비를 맞으며 달리는 것이었다.

 

 비도 싫고 추위도 싫고 뛰는건 더더욱 싫은 나로서는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저렇게까지..쯧쯧쯧...

하면서  혀를 찼는데,  아이는 무슨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좋아서' 짓이라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

하루라도 달리기를 안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근질근질하니  수가 없다는데 이정도면 달리기뽕에 취해도 단단히 취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로도 녀석의 인스타그램에 참여할  있는 마라톤이란 마라톤은 죄다 출전하는 모습이 포스팅되면 나는  0.1% 호기심이나 부러움도 없이 어디 

사바세계에서  기인을 보듯하며 영혼없는 '좋아요' 누르곤 했다.


  이런 나를 '달리기'에 대해 강한 뽐뿌를 느끼게 만든 어떤 대단한 글이 있었다.

 요는 글쓴이가 건강검진을 했는데, 특정 수치가 안좋게 나와서 재검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예전같으면 온갖 불안한 생각에 시달렸을테지만,

정작 지금은 하나도 걱정이 안된다면서

매일같이 5~10키로를 달리면서 하루하루가 최상의 컨디션인데 자신의 몸에 무슨 문제가 있겠냐는,

혈액검사따위....... 그런 내용이었다.


  이야기는 ' 달만에 5키로가 빠졌어요','복근이 생겼어요' 등보다 내게는  유혹적이고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나는 얼마전에도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고, 수시로 기분이 다운되며, 걷잡을  없는 식곤증으로 인해 패밀리닥터에게 졸라 피검사를 하기도 했다.

필시 어딘가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기 때문인데, 검사상 문제가 있으면 걸려오는 전화가  달이 되어가도록 없는  봐서는 다행히도 별일 없나보다하고 안도했다.  


 아니, 나는 혈액검사니 초음파니 뭐니 하고 나면 결과 나올 때까지 일단 '불안하고 보는' 편인데, 누구는 피검사 결과가  좋아도 자신의 몸을 믿는다?


 그순간 나는 그 글쓴이가 너무나 부러운 나머지 강한 시기 질투에 휩싸였다.

그리고  시샘은 옆집 아줌마가 샤넬백을 샀다는데, 나라고  사라는  있어?하며 충동적으로 온라인 쇼핑몰에 로그인하듯 곧장 달리기 코칭 어플을 다운받게 만들었다.


 생전 운동하고는 담을 쌓은 몸이기에 변변찮은 츄리닝하나 없지만 일단 무릎이 튀어나온 추리닝 바지를 입고 민방위 훈련에 참석하듯 어색하게 야구 모자를 쓰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워킹화를 신고 나가서 어플속의 코치님이 시키는대로 뜀박질을 했다.


 고요한 아침, 새소리와 운동부족인의 헉헉대는 소리를 들으며 걷는건지 뛰는건지   없는 몸짓을 하며 나는 그토록 멀게만 느껴졌던 사바세계에 입문했다.


 나가서  몸으로 뜀박질만 하면 되는   알았는데, 왜이리 사야할 , 아니 사고 싶은 것이 많은지...

 

러닝 양말, 러닝화, 스포츠 브라, 러닝탑, 러닝바지, 스마트폰 거치용 암밴드, 우천시에 대비한 방수바람막이(어익후..  때도 뛰시려고?), 땀밴드,  배출을 위한 매시 소재 모자, 자외선 차단을 위한 스포츠 선글라스, 블루투스 이어폰, 스마트 워치 등등... (벌써 이걸  샀다는 이야기는 아님.)


 어느덧 나는 그동안 공감대 형성이 불가한 인간 목록  하나인

<스포츠매장에서 운동복을 고르는 > 되어 있었다.


 애초에 달리기를 안 했다면 안써도 되는 돈이지만 나는 하나도 아깝지가 않다.

내가 마지막으로 '운동용품'  것은 16년전 둘째 아이 출산 후에 구입한 엄정화X이소라의 '우린 요기'라는 요가비디오 (10 재생이 처음이자 마지막) 요가매트가 전부였기에, 16 동안 운동에 돈이란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러닝용품에 지갑을 여는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다.


 ,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만 순차적으로 구매하고, 30 연속 달리기 성공과 같은 마일스톤의 시기에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으로 하나씩 장비 업그레이드를 해주는 것이 재미있고 후회없을 소비라고 생각하다.

 

 생초보인 지금은 당장 필요한 러닝화와 양말, 암밴드와  가지  개를  것이 전부이다.

 러닝 어플 속 코치님의 가르침을 더 잘 듣고저, 귀에 꽂는 일명 '콩나물 대가리'가 필요한 것 같긴 한데,

아침에 나가봤자 사람도 없기 때문에 어플은 그냥 내 귀에 들릴 정도로 틀어놓고 달린다.


 그렇다면 왜 하필 달리기인가?

달리는 것은 단순하며 직관적이다.

 일단 나는 '누워서 어깨와 골반을 일직선으로 하고 시선은 왼쪽 팔꿈치를 향하며 오른쪽 무릎을 왼쪽 정강이의 45 방향으로 튼다음 호흡은 배로 깊게 들이마시고...' 따위의 디렉션이 있는 운동은 몸이  따라하는  물론이거니와 독해부터가 안된다.

이에 비하면 달리기는 이른바 '복잡한 동작과 순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뛰면 된다'.  


 내가 의외로 재밌어 하는 것이 자전거 타기라 만약 내가 운동을 한다면 자전거가 그나마 현실적이라는 생각을  정도였는데, 자전거는 코스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비나 , 도로 등의 조건이 받쳐주지 않으면 매일같이 운동삼아 자전거를 타는 것은 웬지 엄두가 안난다. 자전거는 아직 나에게 '운동'이라기보다는 '놀이'  적합한  같다.

 

 언제나 혼자가 편한 나는 당연히 파트너가 필요한 테니스나 배드민턴은 사절이고, 회원님을 마이크로 매니징하는 헬스 트레이너도 불편하다.

 조금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혼자서 뜀박질을 하는 것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라는 내가 좋아하는 경전의 글귀와 닮아있다.


 조던 피터슨은 <12가지 인생의 법칙>에서 남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어제의 나하고만 비교하라고 했다.

그런데 어제의 나와 '비교'한다는 것은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라 무척 추상적인 개념이다.   

그나마 1 달리기로 시작해서 30초씩 늘어가는 퀘스트를 완수하는 여정이 어제의 나보다 0.00001%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  그래도 '숫자' 보여지는 행위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달리기를 통해 도대체 어떤 유익을 봤는지가 궁금하실 것이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살이 얼마나 빠졌는지...랄까?

 살은 하나도 안빠졌다. 아니  빠졌을 것이다.

아예 체중을 재보지도 않아서  모른다.

기껏해야 1분 달리고 2분 걷기만 반복하니 칼로리 소모도 적다 (어플에서 결과가 나온다)

만약에 체중감량을 목표로 달리기를 했다면 별 재미가 없어 아마 한달도 못되어 포기할 것이다.

살을 빼는 것이 주 목표라면 차라리 죽음의 타바타같이 몸의 라인을 직접적으로 슬림하게 해주는

지옥훈련이  보람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원한 것은 나를 달리기로 영업한 자의 

 '자신감'이었다.

거의 매일 달리기를 하면서 복리이자처럼 저절로 불어나는 나의 삶과 몸뚱이에 대한 믿음.

내 몸과 삶에 대한 믿음 보다는 불안이 더 많은 나에게 달리기는 체육 이전에 멘탈훈련이다.

아무것도 안해서 아무것도 기대할  없는 상태가 주는 공허함과 불안이 땀으로 녹아져 내리는  같은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체력 증진에 의한 생활의 활력이다.  

 밧데리로 비유하자면 밤새 충전을 해도 한시간이면 방전이 되는 오래된 밧데리같은  몸뚱이가 점점 새로운 밧데리로 교체되는 변화이다.

에너지 창고 역할을 해주는 근력이 제로에 가까운 상태에서 나는 금방 금방 방전이 되는 편이다.

 그래서  봐온 재료 정리하기, 일주일치 밑반찬 주말 동안 준비하기, 대청소하기, 식구들 케어하기 등과 같은 주부로서의 필수업무(?)들에 무척 소홀하다. (물론 적성에  맞는 이유도 있다.)

그러다보니 삶의 질도 낮아지고, 이는 자괴감으로 이어진다. (내가 이러려고 결혼했나... 그냥 혼자 살 걸.)

그런데 아직 만땅은 아니지만, 조금씩 체질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움직이는 몸은 계속 움직이려는 경향이 있고 쉬고 있는 몸은 계속 쉬려고 한다는 마치 뉴턴의  1 법칙과도 같은 '생활의 관성' 분명히 존재한다.

달리기로 하루를 시작하면  뇌가 오늘은 '계속 움직이는 ' 인식하여  게으른  다리에게 움직이라고 명령하는 기분이 든다.

 

 또한 나에 대한 자아상의 긍정적인 변화이다.

숨쉬기가 유일한 운동인 . 운동과는  쌓은 .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제일 힘든 ...라고  십년동안 스스로에게 찍어왔던 낙인을  손으로 지우는 느낌이랄까.

 기세로라면 어쩌면 내년엔 텃밭 가꾸기도 가능성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동안 나를 둘러싼 투명 울타리가 조금 허물어지는  같은 기분이  설레인다.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캐나다 이민자'로 살면서 그동안 조금 억울했던 부분도 조금 해소되는 느낌이다.

캐나다에 살면서 비싼 세금 내가며 골프,스키,등산,조깅,캠프,낚시 등등의 특혜(?) 나는 전혀 누리지 않고 산다는 점에서  아쉬웠더랬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비싼  내고 5성급 호텔 부페에 갔는데 남들은 킹크랩에 갈비를 뜯는 동안 나는 볶음밥이랑 잡채로 배를 채우고 있는 기분이랄까.

 

 아침에 경적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곳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새소리를 듣고 

지천에 널린 나무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다람쥐를 바로 눈 앞에서 보며 달리고 있노라면

제법 내가 킹크랩까진 아니어도 새우젓에다가 돼지머릿고기를 찍어 먹는 정도는 되는구나 싶다.


 '밴쿠버리안'으로서 기나긴 우기와 밤 4시부터 어두컴컴해지는 그 우울한 시기를 견뎌내는데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나는 겨울만 되면 온수매트에서 헤어나오질 못한다.

허리가 부러졌나...내가 도대체 왜 이러지 하면서 온갖 부정적인 상념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그렇게 온수매트는 빠져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나를 더 끌어당기는 늪이 되고야 만다.


 유튜브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우울은 수용성'이라고 한다.

즉 울거나 땀을 흘리거나 샤워를 하면 좋아진다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방구석에만 있다가 콧바람을 쐬고 나면

땅굴을 파고 기어 들어가다가 바깥 공기를 마시고 정신차리는 기분이 든다.

올 겨울에는 악천후만 아니면 부슬부슬 내리는 비 정도는 맞아가며 뛰어야겠다.

밴쿠버의 칙칙한 겨울이 처음으로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고 기대해본다.     



  아침에 써늘해서 긴팔 집업을 걸쳤는데 조금 뛰다가 보니 몸이 후끈 달아오른다.

문득 시애틀의 꽃샘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헐벗고 뛰었던 멋있는 사촌 동생 자니가 생각난다.

내년 봄에는 브라탑을 입고 11자 코어 근육을 뽐내며 5km정도는 연속으로 달리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러너에게 필수품이라는 스마트 워치는 뭘로 사면 될까 갤럭시? 애플? 가민? 이러면서

김치국을 사발로 드링킹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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