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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Apr 21. 2021

[일상단편] 일요일 아침이란, 무릇.

Excellent Adventure

                                                                    

내가 태어나고 교편을 잠시 내려두었던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복직했다.   

7-8년 만에 돌아간 학교에는, 그 사이 PC가 도입되고 영어교과가 포함되는 등, 여러 변화가 있었다. 

지금의 내 나이 무렵이었을 엄마는, 출퇴근에 적응하랴, 바뀐 시스템을 이해하랴, 이래저래 힘겨운 적응기를 보내는 중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충분히 쉬지 못했다. 워킹맘의 부채감 때문인지, 일요일 아침만큼은 갓 지은 밥과 김이 모락한 국을 준비했고, 그 앞에 온 가족이 모여 앉는 시간을 아주 중요하게 강조했다. 

(당시에는 주 6일제로 토요일에도 학교를 가고, 회사를 갔더랬다.)


그렇지만 어린 나는 나대로, 

모처럼 학교를 가지 않는 일요일 아침만큼은 내 맘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새우깡을 소리 나지 않게 입 안에서 녹여먹거나, 살짝 몰래 현관문 잠금장치를 풀고 밖으로 나가 그네를 타고 온다거나, 심지어는 냉장고 문을 살금하게 열고 괜히 총각김치를 소리 안 나게 집어먹는 등 아주 자그마한 일요 모험을 감행했더랬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시간> 같은 것에 굉장한 만족감이 있었다. 

큰 잘못은 아니지만, 그래도 들키면 한 소리 들을 것이 뻔한 일을 몰래 저지르고 좋아하다니, 지금 생각하니 <길티 플레져> 같은 것이었나? 그 묘한 행복감은 삼십여 년이 흐린 지금도 여전히 유효해서, 일요일 아침이면 유난히 일찍, 반짝 눈이 떠진다. 자고 있는 엄마 몰래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이 아직도 너무 즐겁다.


어제도 넷플릭스를 보다가 새벽녘에 잠들었는데, 역시 일요일 아침은 일찍 잠에서 깬다. 

얇은 이불을 덮고 옆으로 돌아누워 아직 잠들어 있는 엄마를 본다. 어제 밤늦게까지 손에 붙들고 있던 뜨개 작품을 머리맡에 두고, 렌즈가 두꺼운 다초점 안경은 이마에 얹은 채로다. 삼십여 년 전의 엄마와 똑같은 우리 엄마인데, 이제는 정년퇴직하여 교편을 놓았고, 조금 늙었다. 그 '온 가족이 모여 앉는 따뜻한 일요일 아침밥상'도 없어진 지 오래다. 내가 들락거리는 인기척에 엄마는 내 쪽으로 몸을 들어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빈 속에 있지 말고 따뜻한 차라도 한잔 마셔-'한다.  나는 손에 쥔 작은 컵을 들어 보이면서 '응, 먹고 있어-'했다. 


물론 내가 먹고 있는 것은 엑설런트지만.     



#일요 모험_성공적_낼모레마흔

#엄마 몰래_따뜻한 차인 척_엑셀런트 먹기_대성공

#프렌치바닐라가 좋아_바닐라가 좋아_묻지도따지지도말고_더블로가 

#엑설런트어드벤처_키아누리브스영화_옛날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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