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죽여 쓴 사랑시가 네게 들렸으면

최소여의 오늘 본 영화

by 최소여의 모험

햄넷 | Hamnet | 클로이 자오 | 2025

★★★★★

할 말을 잃어 고요한 마음에 기억처럼 들려오는 목소리

숨죽여 쓴 사랑시가 네게 들렸으면 해 - 아이유<love poem>


죽은 연인을 되살리기위해 지옥까지 내려갔던 오르페우스는

'지상에 이를 때까지 절대 돌아보지 말것'이라는 단 하나의 약속을 어겨 에우리디케를 영원히 잃고 맙니다.

지옥조차 두렵지 않은 사랑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그토록 절대적인 것이니까요.


아들을 잃은 아내에게 위로의 말도 건네지 못한채

비극의 현장인 집에서 도망쳐 버립니다.

"말로 무언가를 전하는 것"이 서툴렀기 때문일테죠.

대신 자기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하기로 하죠.

"이야기"


윌리엄은 집과 가족을 떠나 혼자서 슬픔의 심연으로 내려갔을 거예요.

오르페우스가 지옥으로 내려갔던 것처럼요,

그 지옥에서 아들 헴넷을 다시 지상으로 데려오기 위해,

무대 위로 불러와 영원히 살게 하기 위해,

못 다 나눈 작별인사를 전하기 위해.

무대 뒤편 홀로 무너져 내리듯,

그제야 비로소 울 수 있게 된 윌리엄의 눈물은

그만의 방식으로 가장 치열하게 아들의 죽음을 마주하고 있었음을 항변하고,

윌리엄과 아네스의 엇갈림 슬픔의 방식이 마침내 해소되는 정화의 순간이었고,

그 자체로 예술의 존재 목적이었습니다.


결국 그런 것이죠.

우리가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는, 내가 혼자가 아님을,

이 상실의 아픔을 알아주는 이가 있음을 확인하기 위한 것인거죠.


원작소설도 재미있지만,

햄넷을 보고 나서 문득 떠오르는 책이 있었습니다.

과달루페 네텔의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


출산,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상실과 연대와 위로에 대한 이야기라는 지점에서요


많은 사람들이 자식을 잃는 것은 처리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는 슬픔이라고 믿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도 계속 살아가는 것이 마치 부당하거나 염치 없는 일이라는 듯 말이지요
하지만 아시나요?
저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_95p,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


살아가는 것이 때로 염치없는 일이 되어버린 이들에게

425년 전의 목소리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나지막히 위로해주는 것 같아요.

그 어려운 일을 해내며 계속 살아가도 괜찮다고,

거대한 상실의 파도를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이들을 위해 대신 울어주는 것도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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