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아포칼립스의 보이후드

최소여의 오늘 본 영화

by 최소여의 모험

28년 후: 뼈의 사원(2026) | 28 Years Later: The Bone Temple | 니아 다코스타 | 2026

★★★★☆

포스트아포칼립스의 보이후드

대니보일이 <28일 후>를 통해 분노바이러스가 세상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보여줬다면,

<28년 후>는 그 무너진 세상에서 소년소녀들은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가죽을 쓴, 지독하게 잔인한 성장 드라마인 셈이죠.


지미는 바이러스 창궐 당시 아마 8살 무렵, 문명의 끝자락을 희미하게 기억하는 세대입니다.

텔레토비로 대표되는 유아적 파편에 머물러 있지만,

생존을 위해 누구보다 영악해지고, 결국 악을 자처하게 되는 인물이죠.

그리고 지미와 비슷하거나 더 어린 아이들이 지미의 손가락들이 되어 그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게 됩니다.


스파이크는 아포칼립스 이후 태어난 세대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세상이 이미 망해있었던, 말하자면 포스트 아포칼립스 네이티브라 할 수 있겠네요.


이들에게 허락된 교육은 아마도 적자생존뿐이었을 겁니다.

28년 후 시리즈는 이들이 겪는 [결핍의 보이후드]를 통해

인류의 미래가 얼마나 기묘한 방향으로 뒤틀리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아포칼립스가 견디기 힘든 것은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28년이라는 긴 고독의 시간, 켈슨 박사는 용케(?) 미치지 않고 자신만의 여가와 루틴을 지켜왔습니다.


이 황폐한 세계관에 기묘한 활력을 불어넣는 그의 플레이리스트는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특히 Iron Maiden의 The Number of the Beast가 흐르는 순간은 압권입니다.

지미와 켈슨이 서로의 패를 읽으며 벌이는 긴장감 넘치는 심리적 데스매치이면서,

동시에 텔레토비 세대에게 내려진 헤비메탈의 세례라는 강렬한 유희가

켈슨박사를 영화사에 다시 없을 독보적인 캐릭터로 만들어 버립니다.


감독 니아 다코스타는 <28일 후>의 대사를 전부 외울 정도로 영화의 열혈팬이라고 하죠.

대중적인 감각으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 이번 작품은

28년 후 트릴로지의 든든한 교두보이자

기존 28 프랜차이즈의 전체를 잇는 훌륭한 가교 역할까지 해냈습니다.

성덕으로 인정합니다.

아주 재미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