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 그 겨울여행

by 최국환

비움 그 겨울여행.


가을이라는 계절,

살가운 걸음으로 9부 능선을 넘고

이젠 지난 흔적들을 빛바랜 낙엽으로 찬찬히 덮고 있다.

한 장 남은 달력은 o. 헨리가 그려낸 마지막 잎새가 되어 놓치고 싶지 않아 끈으로 달려있고

작은 미틈달을 띄우는 초겨울 어둠마저 잔잔한 호흡으로 길게도 내려앉는다.

미련으로 시작한 그런 계절 가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 동무삼아 추억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풀잎으로 왔다가 어느새 풀꽃 향을 달고 살아온 지난 2년간의 귀농생활,

다 내리고 왔다고 그래서 풀잎으로 산다 하며 겸손을 외쳤건만 그것도 잠시,

빈 달에 달빛 채우듯 나만의 무언가를 채우려 또 다른 향을 피우는 건 아닌지

귀농인이라는 작은 간판을 달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나름 열심히 살려했지만

잔잔한 돌멩이 물결에도 서슴지 않고 신음하던 어설픈 농부의 지난날들,

마치 철없어 옷 벗었는지 모르고 나대던 어린 시절의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 같다.


가끔은 꽉 차서 넘치는 것보다

채우려 비워두는 것이 아름다울 때가 있다.

그간의 무거운 짐을 다 내리고 조용히 하늘 작은 그림자를 준비하는 옷 벗은 나무들,

무엇을 위한 비움인지 무엇을 채우기 위한 준비인지,

혹여 채우지 못하고 그저 무턱대고 비우는 건 아닌지

오늘 보름을 넘겨 둔한 모습으로 대지를 밝힌 달이 늦은 걸음으로 찾아왔다.

한참이나 먼발치에 그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집안 곳곳에 표정을 지어내고 있다.

초승으로 시작, 간혹 잔가지 그림자로 마음에 내린 것이 몸을 불리며 산을 만들고 너른 들판을 만들고 이내 농부의 마음속에 애잔한 그리움을 만들고 있다

서울에서 보았던 그저 시간을 지어내던 달이 아닌

부족한 내 마음을 조심스레 살피며 하룻밤의 모습을 정성으로 담아내는 그런 지음이었다.

어쩌면 그리 넘쳐나기 위해 보름을 준비하며 세상을 비춘 건 아닐까.

보름보단 그믐을 좋아하고 그것보단 비운 달을 기다리는 내 마음을 준비하는 건 아닐까?

채우려 비운다는 것,

오늘 떠나는 지난 기억과의 겨울여행,

그런 비워지는 것에서 출발하기만 바랄 뿐이다.


지난 며칠은 바쁘게 보낸 것 같다.

나름 겨울 준비로 나무꾼이 되어 장작도 마련하고 나의 꿈이 자라는 하우스 정리에, 그간 그림자 없어 여름 햇살에 신음하던 앞마당에도 멀쩡히 키가 자란 나무 하나 심어 놨다.

겨울을 그저 맞이하기 억울한 마음에 겸손한 여행도 다녀왔다.

작은 능선을 품에 안고 있는 동네 마실 마냥 이곳저곳을 다니며 작은 흔적을 남겨도 봤다.


낙엽 진 순천의 선암사,

길섶 갈대바람 동무삼아 햇살 한 점에 길을 내고 도착한 선암사의 돌담길,

기억들은 무거운 담벼락에 이끼로 내려앉고 나그네의 눈길을 담쟁이덩굴로 잡아매 한참이나 그곳에 머물게 한다.

간혹 바람처럼 들리던 스님들의 목탁소리도 돌담을 넘기엔 너무 무거운지 고요만이 자리하고 억겁을 불었던 산바람도 나그네를 맞을 요량인지 잠시 그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돌담과 나눈 기억 속의 대화들,

하나 둘 쌓이는가 싶더니 이내 돌부처의 눈물로 흘러내린다.


다시 겨울 여행을 준비한다.

지난 기억은 이쯤에서 보담아 얼른 보따리로 챙겨내고

풀꽃으로 살아야 할 내 마음의 다짐을 담기로 한다.


귀농 직후 아내와 달랑 두 식구가 사는 집 그곳에 야옹이 한 마리가 보태졌다.

이름은 군에서 잠시 휴가를 나온 아들 녀석이 지어 놨다.

‘상식’이란 이름이 붙여졌는데 군 복무를 하는 아들의 선임 이름과 같다.

‘몰상식’하게 후임을 막 대하는 선임에 대한 원망으로 지었다 하니 그 녀석 운명도 어지간하다.

‘러시안블루’, 시골에선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種의 고양이다.

공짜로 얻었기 망정이지 돈으로 사자면 몇십은 줘야 한다 하니 처음 들였을 땐 무척이나 망설여졌다. 밥도 혹시 서양식으로 먹지나 않을지, 시골생활을 적응하지 못하고 가출이라도 하진 않을지 고민 끝에 들여 논 자식이 이젠 제법 재롱에 요령이 붙더니 이내 아내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이름대로 파란 눈을 가진 녀석,

가끔은 엉뚱한 행동에 난리 블루스다.

거실 창가에 날고 있는 파리를 잡는다며 작은 체구를 유리에 비비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가까운 것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먼 산을 바라보는 녀석의 시선에선 이미 돈키호테의 부질없는 의연함마저 보여 지곤 한다.

날아가는 새를 잡기 위한 몸부림,

이젠 아예 몸 전체를 거실 유리창에 던지며 중세 유럽에서나 봄직한 이상한 마스크 쓴

전쟁터의 말들을 흉내 내고 있다.


상식이 조금 모자란 녀석 우리 집 야옹이 상식이,

아내는 가끔씩 말한다. “바깥주인 닮아 어찌 그리 막무가낸가” 하며 웃는 모습에 슬며시 따라 웃다가 조금은 서글픈 마음에 한참을 돌이켜 생각해 본다.

내가 그랬던가?

그리 멀리만 쳐다보며 바로 앞서 지나간 現狀들은 무심한 마음으로 흘려보냈던가.

그래서 여기까지 흘러왔던가?

그런 나의 행동과 사고가 누군가에 상처를 주고 혹여 다치게 한 건 아닐까?


나도 정답은 모르겠다.

아내의 눈에 비쳤다면 그것이 정답일 것이고 언젠가 그 답들을 내게 온전히 말해줄 것이다.

그때까지만 참기로 했다. 먼저 야옹이 녀석의 버릇부터 고쳐놔야겠다.

가까이 보고, 모든 일에 신중하고, 행동보단 사고를 먼저 하라고,,,

그래야 나도 고쳐진다고.


11월을 조금 남긴 가을의 끝자락,

겨울여행의 마지막 짐을 챙기고 있다.

기억으로 엉클어진 마음의 봇짐도 챙겼고 내가 살아가야 할 다짐도 구겨 넣었다.

두툼한 노트도 하나 마련하려 한다.

덧입혀진 것들을 그리자면 오래된 것도 상관없을 것 같다.


은은한 커피 향도 챙겨보고

오늘, 아직 건강한 가을의 표정도 조금은 담아가야겠다.

철없이 그저 한 해를 마무리하려는 부산한 마음,

그럼에도 넉넉한 미소로 보내주려 하는 계절의 여유도 보태졌으면 한다.


멀찌감치 부는 바람에 가을은 한창이나 앞서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