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등대에 서서)
어느 미련한 기억
가을은 아름다운 시인을 만든다고 했던가?
하늘은 아낌없는 여백으로 그네들의 노트가 되어주고, 이는 바람 한 점에 마음은 한참이나 지난날의 일기들을 거침없는 필체로 담아내고들 있다.
가을이라는 계절, 주변 공기는 이미 충분한 색바람으로 어눌했던 폐부를 가득 채워주고 낙엽으로 떨궈지는 지난 기억 한 점은 또 다른 계절의 흔적이라도 되어줄 요량으로 다소곳이 가슴을 향한다.
아름답다고, 그래서 많이 감사하다는 말로 때론 계절의 빚을 갚지만 항상 모자란 구석이 남는 오늘, 바로 그날이다.
그런 여유가 항상 이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너무 미련한 ‘채움’으로 시절을 보낸 것이 아픔으로 멍들어 남기도하고, 방향을 잡지 못한 허망한 욕심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마음에 담고 살았는가?
헤일 수 없는 미련함에 사방을 둘러보고, 실타래로 감긴 기억을 풀어도 보지만 거기엔 이미 나 스스로 걸어 잠근 자물쇠가 ‘체념’이란 이름으로 채워져 있었다. 잠시 벗어나고픈 마음으로 홀로 자리를 박차고 길을 나섰다.
오랜만에 찾은 소록도였다.
다소 쌀쌀한 날씨에 늦은 가을날은 곳곳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그곳 언저리에 자리한 남녘의 바다도 어김없는 파도의 물결로 또 다른 계절을 맞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무심한 마음으로 찾았던 작은 사슴을 닮은 섬 소록도, 오늘은 무언지 모를 아쉬움을 품은 체 하늘이 익어가고 있었다.
어느 소설가가 그렸던 ‘당신들의 천국’ 같은 이념의 대립도 이미 구태의 구절이 되었고 그 자리엔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결코 변치 않는 어느 미련한 기억만이 파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한센병의 아픔도, 그런 치욕적인 삶의 모습도 이미 끈 풀린 연으로 날려 보냈고 제법 모습을 갖춘 관광지의 모습만이 거리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어딘지 모를 서러움의 그림자는 여전히 오늘의 가을날과는 어울리지 않는 비대칭으로 놓인 듯했다. 유물로 남겨진 건물들, 그런 기억에서 묻어나는 그네들의 눈물들, 이젠 서로 잊으려 그래서 없었던 것으로 하자며 각종 시설물로 잔뜩 호사를 부렸지만 오늘 하루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참을 둘러보고 돌아선 그 섬, 작은 동산 한편에 오래 됨직한 등대가 있었다. 한참 전에 세워졌을 법한 등대에 이미 사람의 흔적은 빛바랜 이끼가 대신하고 있었고 무심코 지나쳤을지 모를 그 자리에 작은 안내판이 홀로 썰렁하게 세워져 있었다.
보통의 상식으로 생각하기엔 등대의 위치는 이런 곳이 아니었다. 바다와 어깨동무를 나란히 하고 놓인 등대들은 바다를 친구 삼기 좋은 곳에 자리했어야 했고 그곳엔 갈매기 몇 마리와 빨강으로 혹은 코발트의 기운이 가미된 흰색의 옷을 입은, 멋지거나 고즈넉한 그림들이 그려졌어야 했다.
‘소록도갱생원등대’라 이름 붙여진 6미터 남짓한 등대의 오랜 적 사연이 안내판에 새겨져 있다. ‘등록문화제 72호’라는 폼 나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벽돌로 지어진 것이 그것도 바닷바람과는 멀찌감치 떨어진 위치에 을씨년스럽게 놓여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다가오는 친근감에 안내판을 끝까지 챙겨보기로 했다.
1937년, 그러니까 일정시절 한센병 환자들의 강제노역으로 지어졌다는 사 엔에 어딘지 모를 의연한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아픈 몸은 그렇다 치더라도 인간의 대접이라곤 손톱만큼도 없었던 그 시절, 그를 세웠던 그네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남들의 도움이 절실했들 그들의 상처 입은 몸과 마음으로 지어졌을 이곳의 등대는 녹동을 향하는 수많은 배들의 안내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 어떤 위로를 받기는커녕 억지노역으로 등대를 완성해야 했던, 그래서 남의 길을 밝혀야 했던 그네들의 가슴엔 또 어떤 것들이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겨져 지금껏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까?
등대는 본시 그런 것이다.
예전 오고 가는 길을 살뜰히 반기던 어머니의 품 같은 것이었고, 굳이 말씀은 없었지만 항상 주위를 품으시던 아버지의 의연함 같은 것이었다. 해서 모든 걸 품어 감싸야했고 모진 풍랑에도 그만의 품위를 지켜야 했던 것이다.
그런 등대가 오늘 이곳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들의 잊혀가는 상처를 품은 체 이리 세월을 고스란히 바다에 던지고 있었다.
아픈 상처가 여물기 전, 수많은 시련이 이어지고 버려진 몸은 조금의 인정의 접근마저 거부된 그들만의 고통이, 아니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인내의 한계가 오늘 이 작은 사슴을 닮은 섬에 미련한 흔적으로 남은 것 같았다.
오래전 내게도 시련이 있었다.
입대를 앞둔 학창 시절, 병을 앓은 적이 있었다. 폐병은 몸속 깊숙한 곳에 자리했고 3기의 판정을 받은 몸은 가누기 어려운 심한 기침으로 날로 여위어 갔으며 모든 것을 체념하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의 삶은 남은 세월을 죽이려는 마음으로 그럭저럭 이어졌고 그리 하루하루를 내 삶에서 지우고 있었다.
눈 내리는 추운 겨울날이었다. 버스를 타고 학교를 향하는 도중 심한 각혈로 학교를 몇 정거장 앞두고 버스를 내려 서둘러 골목길로 향했다. 눈이 무척이나 많이 오는 겨울날, 골목은 흰 눈으로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사람의 발자국마저 없었던 막다른 골목길에 버려진 탁자 하나가 하얀 눈으로 옷을 입고 있었다. 참았던 기침이 연신 이어졌고 그 탁자 위엔 흰색의 이파리를 달아낸 빨간색의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각혈로 만들어진 고통의 꽃은 처절하리만치 예쁘게도 피어났다.
서럽게 피어난 꽃, 김이 모락모락 나는 모습에 오기가 발동했는지 다 쏟으려 했지만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마지막으로 놓인 골목의 끝이 보였다. 더 이상 접근하기 어려운 곳, 체념으로 내려 한 송이 꽃을 피운 그곳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다시 병원을 찾았고 살려는 의지는 그리 서럽게 피어난 꽃보다 더욱 화사하게 피어났다.
마치 험한 항해 끝에 등대를 발견한 돛단배의 마음으로 방향을 고쳐 잡았다. 체념으로 향하던 길에서 우연히 발견한 나만의 등대가 눈꽃으로 피어난 것이었다.
이곳 소록도에는 그런 피비린내 나는 시련들이 겹겹이 쌓여있을 것이다. 세월 지나. 이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예쁘게 포장된 것들로 둘러져 있지만 선대로 물려받았을 몹쓸 병을 가지고 살아가는 많은 환자들이 아직도 그네들의 삶을 어렵사리 꾸리고 있을 것이다.
오늘 하루쯤은 그네들의 동무가 되기로 했다. 아니 등대가 되었으면 더욱 바랄 것이 업었다. 비록 모자란 마음이지만 조금이라도 아픔을 나누고 고통을 이해하고 보담아 주는 그런 넉넉한 마음을 품어보기로 했다.
하여 할 수만 있다면 소록의 품에 잠긴, 그래서 예전부터 지금까지 속절없이 이어지는 그네들의 심정을 등대의 마음으로 멀리까지 비쳐주고 싶었다.
먼발치에서 작은 깃발을 달아낸 배가 포구로 향하고 있다. 돌아올 곳이 있기에 떠났었고, 돌아올 방법을 알려주는 무언가가 있었기에 마음 편히 떠났을 것이다.
지금 이 자리. 비록 마음은 저만치에서 배를 바라보고 있지만 손짓 발짓을 다해 그네들에게 외칠 것이다. 이리 오라고, 내 마음은 이미 당신들을 향해 환하게 불을 밝힌 등대가 되어 있다고...
사슴을 닮은 섬, 소록도엔 마음을 담은 등대가 있다.
봄, 소록도
바람이 뱀같이 지난 오후,
떠밀리듯 게으른 걸음으로 봄이 왔다.
더디게 넘긴 묵은 달력
통증이 깨알 같은 숫자로 넘겨지고
作爲로 인해 길들여지지 않은 날들
안경 너머 건너편 사랑으로
아무도 다녀가지 않은
하얀 봄날이 그리 찾아 왔다.
사슴을 닮아 슬프다 했다.
아린 서러움이라 했다.
슬픔보다 먼저 핀 풀꽃이
그곳 언저리 파도마저 멈춰 세운다.
한번쯤 반듯이 누워볼 만도 한데
거친 파도에 성낼 만도 한데
아려움이 잠시 한눈팔던 이 봄날,
사슴을 닮아 슬픈 섬
그 곳 소록도엔
이름 없는 등대만 가지런히 봄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