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스케치

준비하는 삶

by 최국환

오랜만에 화창한 날씨다
요 며칠간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햇살이 가을바람에 더해져 한층 멋스럽게 떠오른다.

밝고 화창한 날씨를 좋아하는 아내의 입가엔 미소가 번지지만

사실 나는 구름에 비 오는 날씨를 좋아한다.

오래전 기억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탓도 있거니와

왠지 비에 섞여 내리는 비릿한 내음 속

무언가 표현하지 못할 아련한 미련, 그 속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탓에 나는 그림도 화려한 물감으로 덧칠해진 유화보다는

생각에 잠기지 않을 정도로 스케치된 단순한 그림들을 좋아한다.

물론 처음부터는 아니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어찌 화려하고 멋들어진 것들에 취하고 싶지 않겠는가?

명예에 목숨도 걸어보고

치장을 위해 피도 흘려보고

온갖 부귀영화를 위하여 하늘을 원망하고

때론 땡볕에 고개 숙이지 않은 해바라기 같은

처연한 마음으로 지낸 세월들,

그야말로 외나무다리를 걷는 심정으로 살아왔던 시절 아니었던가?


막 잠에서 깨어난 아침, 세상은 내게 세 가지 질문을 던져온다.

너는 무엇으로 살 것이며

어떻게 살 것이며

무엇을 남기려 하는가?

그것에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다만 스스로에게 던진 또 다른 물음과 선택!

향기로 꽃을 택하라시면 난 찔레꽃을 택하겠다고

그러나 어찌하랴!

다가서면 가시에 밟히고

멀어지면 그리움에 밟힐 덴대...


숙제를 마치지 못한 심정으로

봄을 준비하는 겨울 잿빛 하늘을 본다.

태양을 움직이려는 새벽의 팽팽한 긴장을 본다.

내일을 기대하는 오늘의 무모함을 본다.

그야말로 화려하진 않지만 모진 냉철로 버티고 있지 않던가

무언가 준비하는 것들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았다.

내 삶도 언젠가는 그리 보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을 준비한다

인생을 스케치하는 마음으로 살기로 한다.

나머지 공백은 훗날,

날 사랑한 누군가에 의해 약간의 색이라도 입혀지면

그것으로 만족하리라는 마음으로


사흘간 감춰졌던 태양이 곱게 물들어간다.

아내의 마음이 활짝 열리고 있음이다.

얼른 단장이라도 하고 인근 별다방이라도 함께 다녀와야겠다.





-인생스케치-


내일을 기대하는

오늘의 무모함

봄을 맞는 겨울하늘의

회색빛 냉철

태양을 움직이려는 팽팽한

새벽 긴장


그래

무언가 준비하는 것들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지


마치

우리는 인생을 스케치할 뿐

훗날

날 사랑한 누군가

덧칠을 완성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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