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는 삶 속에서
저녁나절부터 시작된 잇몸 통증이 쉽게 가시질 않았다.
한동안 까맣게 잊고 지낸 치통이 시작되려나 보다.
치과 예약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어 치유를 위한 기도를 마치고 생각하니
왠지 가슴 한편이 허전함에 쉽게 잠을 청할 수 없었다.
그저 다급해져야만 기도로 간구하는 어리석음도 그랬었지만
내 삶 속 절실하지 않아 잊고 지냈던 그 무언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감에
더욱 그런 것 같았다.
배불러 잊고 지냈던 그 옛날 어머님의 소박하지만 따듯했던 도시락,
풍족함으로 잊혔던 수많은 이들의 애틋한 도움들,
무엇보다 얼마 전 읽었던 책 속의 질문들
편히 숨 쉬며 살아가기에, 아직까진 별다른 불편을 모르기에
내 삶의 터전 이 지구가 멍들어 가고 있다 말한 며칠 전의 기억조차 잊고 있음에
가슴이 턱 하니 막혀왔다.
교회 작은 지구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
세실 앤드류의 ‘소박하게 사는 즐거움’의 내용들이 생각난다.
이 책에서 저자는 말한다. “성공이라는 것은 당신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흡족하다.”
우리가 ‘더, 더, 더, 하고 외치는 동안
무엇을 얻었으며 무엇을 잃은 것인지 내게 질문을 한다.
그간 우리 인간들의 탐욕과 과한 소유욕으로
망가지고 있는 지구의 생태계를 생각할 때 소박하게 산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이제 우리 모두가 풀어야 할 숙제이자 덕목 아닌가 여겨진다.
언젠가 한 끼를 때울 요량으로 배달음식을 주문한 적이 있었다.
당장은 몰랐지만 식사를 마치고 식탁에 널브러진 포장용기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저 한 끼를 해결했을 뿐인데 그 대가로 버려야 할 플라스틱을 비롯한
유해한 쓰레기들이 속절없이 쌓이는 것을 바라보니
소화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던 기억이다.
행복의 척도는 무엇인가? 성공의 척도는 무엇이던가?
외적인 것에 의존하기보다는 살면서 느끼는 충만함일 것이다.
그저 많이 가져 만족하기보단 평안함을 누린다는 것이
진정 소박하게 사는 즐거움 아닌가 생각된다.
다급함에 순간 기도하기보단
항상 기도함으로 평안해지는 은혜가 절실한 심정이다.
밤새 내린 비가 그친 주말아침이다.
오늘은 작은 마실이라도 다녀와야겠다.
시원한 커피 한잔과, 사랑하는 아내와,
내 사는 터전을 위한 기도가 함께 했으면 좋겠다.
인내의 밤은 서서히 죽어가고
이윽고 볏단 주위를 맴돌던 바람에
비논리적 운명으로 시작한 아침
낯선 날갯짓에 살짝 기울어진 들녘,
그 아침의 주인공들
누군가는 악몽의 몸부림으로 깨우지만
누군가는 모나지 않은 순종으로 시작하는
나눠 가질 수 없는 숙명
애초부터 들판은 평평하지도 둥글지도 않은
무형의 칼날로 놓여
뿌려진 볍씨의 생각대로 생겨난 것
그 박재된 시작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소유인 것
풀려가는 하루가 햇살에 눈부시다
볏단 깊숙한 곳,
새 한 마리
창공을 가르며 아침태엽을 팽팽하게 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