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본 삶
1
열두 번째 계단이 삐거덕 거린다.
누군가 다가오는 조짐을 알아차리고 몸을 피했다
아래와 이어지는 헤아릴 수 없는 계단,
유독 열두 번째 계단이 그리된 건 아주 오래전 일이다
부딪혀 아파야 할 상처와
피하고 싶은 것들의 발걸음이
이쯤에서 걸러진다는 것,
얼마나 다행한 삶의 前兆던가?
2
눈부신 햇살의 긴 호흡이 잦아들고
머나먼 지평선,
눈먼 사내가 걷기를 시작한다.
보이지 않았던 걸까? 때론 거친 풍랑으로
보고 싶지 않았음 일까? 잔잔한 파도로 남은
마지막 하루,
태엽 풀린 시간의 벽에 하늘 구멍만 빼곡히 남기고
높게, 그리고 넓게 주변을 에워싼다.
열린 하늘로 새가 난다.
지난 삶을 토해낸 비행,
세상 밖으로 깃털이 쏟아져 내린다.
3
하루를 살다가 떠날 꽃이 핀다.
모호한 전제,
거의 다 온 것 같은 발걸음에 계단이
아래로부터 무너져 내린다.
실상 이보다 더 슬픈 건 없겠지만
얼마나 현실적 전조던가?
부득이함에 어쩔 수 없이 지나쳤을 날들,
그리워할 수 있다면
사모할 수 있다면
먼발치서 눈물 흘릴 수 있다면
단 하루를 살다갈 지라도
내 다시 그 꽃으로 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