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광대놀이

후회

by 최국환



7) 후회




어찌 마련한 회사인데, 어려운 집안 탓에 일찍 홀로 되었고 6년 동안 갖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렵사리 대학을 마쳤다. 전공과는 다른 작은 통신회사에 취업을 했을 때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신념과, 먹고살 수 있다는 기대에 만세를 부른 나였다. 남들 하는 미팅 한 번 해보지 않은 경력에 친구 소개로 중학교 국어교사를 하던 아내를 어렵사리 맞았다. 결혼 후 아내와 함께 2년여간의 시간을 고생하며, 기도하고 작지만 우리의 결실이라 감사해하며 마련한 회사인데 그토록 소중한 것이 한순간에 무너졌다는 사실에 그 어떤 변명의 여지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의 고백이 이어졌다. 아니 그보다는 나를 향한 아내의 희생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나의 작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거래처 여사장과의 하룻밤이 공개되었다. 어찌 보면 아내의 태도를 유도하기 위한 피치 못할 공개였기에 서로는 침묵 속에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보증물건으로 잡혀있던 회사가 분해되기 전 그나마 아내 명의로 되어있는 30여 평 아파트를 물려주기 위한 피치 못할 그날 밤의 그림들이 하나씩 벗겨지고 있었다.

“미안하다 여기까지 오려 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궁색한 나의 변명에,

“고마워 그리 말해주니 한결 가벼워지네.”

군말 없는 아내의 냉정한 대답이 이어졌다.

평상시 모든 것에 소극적인, 그저 광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남편에 대한 그간의 심정을 단 한마디로 표현하며 이혼서류에 서슴없이 도장을 찍었다.

나머지 일들도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10살 된 외동아들을 아무것도 모른 체 아내의 손에 잡혀있었다.

그런 아내도 여인이었다. 굳이 설명한다면 그럭저럭 세월을 살려는, 그리하여 남은 세월을 죽이려는 나와는 달리 스스로 삶을 개척하고 그 결과를 후회 없이 받아들이는 이 나라의 알뜰한 여인이었다.

돌이켜 보니 내겐 아내 외엔 여복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족적을 감춘 거래처 여사장은 하룻밤의 기억으로 나를 이리 만들었고, 요양원 사고가 있기 전, 요양보호사 실습현장에서 만난 담당사회복지사는 이미 기억 한 구석에서 서서히 지워지고 있었다.

“장 선생님 눈엔 무언가 알지 못할 연민의 정이 가득 자리한 것 같아요.”

삼 주간의 실습을 마치고 개인 면담이 시작되기 전, 내게 뱉은 그녀의 한마디 고백은 예전 여인들의 대한 선입견 탓에 귀에 담지도 않았었다.

사회복지사의 짝사랑은 이어졌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지 일주일 만에 그녀의 지극한 배려에 힘입어 이곳 노인요양원에서 일을 하게끔 되었다. 1m 50을 겨우 넘긴 키를 가진 얼굴이 갸름한 30대 노처녀인 그녀의 눈엔 훤칠한 키가 꽤 괜찮은 첫인상으로 심어진 것 같았다.

워낙 자신의 의지보다는 남의 지시에 충실한 행동이 맘에 들었고 비록 이혼은 했다지만 책임질 처자식이 없다는 면에서도 호감을 가진 것 같았다. 어디 그뿐인가? 그녀는 내가 건넨 이력서를 훔치다시피 하여 보았던 유명 점집에서의 사주마저 천생연분을 넘어 그야말로 하나 모자람이 없다는 점쟁이의 어리숙한 판단에 모든 걸 걸기로 했던 것이었다.

신입인 탓에 일반시급으로 정해진 주간 업무를 주로 해야 했던 내게 야간근무가 배정되었다. 곱절의 급여를 받는, 그래서 선임에게 주로 배정되는 야간근무는 그야말로 파격에 가까웠다.

하지만 연민의 정은 거기까지였다. 사고가 있은 직후, 그녀의 180도 달라진 태도는 삼 개월 동안의 구애에도 꿈쩍하지 않은 내게도 책임이 있었다. 그만큼 내 마음속엔 여인들이 차지할 그 어떤 자리도 마련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자식과 홀로 살아가고 있을 아내만이 내겐 단 하나의 여인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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